이 글은 9. 13 - 14 양일간 설악산 등산에 관한 기록이다.

원래의 계획은 지인과 함께 공룡능선을 오르기로 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아쉬운 마음으로 마등령을 거쳐서

설악동으로 빠져 나왔다. 그간의 잡다한 기록들.

 

1. 운행기록

ㅇ 9. 13(토)

16:00 (춘천출발) - 17:55(백담사 매표소 도착) - 18:05 (백담사행 버스

승차) - 18:40(백담사) - 20:05(수렴동 대피소, 저녁, 휴식) -20:40(대피

소 출발) - 23:35(봉정암 도착, 비박)

 

ㅇ 9. 14(일)

05:00(일어남, 아침) - 06:20(봉정암 출발) - 07:00(길 잘못 들어 헤매다가

다시 봉정암 출발) - 09:00(오세암 도착) - 10:30(마등령) - 12:55(비선산

장) - 13:50(설악동 버스정류장)

 

2. 잡생각 

ㅇ 9. 13. 

떠나기 전 

  추석 연휴라 생각을 하니 마음은 넉넉하다. 예년에 비해 긴 시간이 앞에

기다리고 있었고, 며칠 전부터 늑대에게 산행대상지를 공룡능선으로 정하

고 함께 가자는 연락을 했다. 공룡능선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를 다른 분

을 통해서 얻고, 전 날부터 배낭을 들고 꼼지락거리고 있는 내 모양새가

수상한 지 마누하님이 옆에 다가와서 슬그머니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씩 웃으며 설악산 간다고 하니 누구랑 가냐고 재차 심문조로 묻는다. 대

답을 하고 별다른 말이 없기에 행복한 산행을 꿈꾸면서 시간이 다가 오

기를 기다린다.

  동행인은 원주에서 먼저 출발을 하기로 하고 오세암에서 만나기

로 약속을 하였다. 내가 밤 늦더라도 꼭 간다는 말에 늑대는 흔쾌히 산행

결정을 했고, 연락 수단이 없는 나는 동행인의 삐삐를 이용 약정된 기호로

연락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즉 백담사 매표소에서 버스를 타면 정상적인

진행(1234), 그렇지 않고 걸어 가게 되면 0000 으로 호출하기로 했으며 동행인이

오세암에 미리 가서 텐트를 치기로 했다.


떠남, 백담사 매표소

  토요일 오후, 마음은 바쁘고 시간은 더디 간다. 오후 4시에 집에서 나와

출발. 속초로 가는 길은 연휴 시작의 토요일이라서 인지 한가함 마저 느낀

다. 차의 창문을 내리니 가을바람과 언뜻언뜻 보이는 황금색의 벌판이 함

께 한다. 구불구불한 길과 여러 개의 다리를 지나니 백담사 매표소 입구다.

주차장에는 차들도 별로 없고 매표소에서 버스를 물으니 백담사 쪽에서 내

려오는 지금 버스가 마지막 버스란다. 그래서 이제는 백담사까지의 그 퍽

퍽한 길을 생각하면서 늑대에게 미리 약정된 0000으로 호출을 했다. 갈 길

을 생각하니 마음은 바쁘다. 걸어가려고 하는데 9명의 사람이 모여서 버스

가 내려오면 사정을 해서 타고 가 잔다. 해서 무료하게 입구 쪽에서 기다

리고 있었다. 각자의 행선지를 물어 보니 내일 대부분 용아장성능을 탄다고

한다. 이러는 사이 버스가 왔고 사정을 이야기하여 버스를 탔다.

 

백담사까지

  포장된 도로를 버스는 달린다. 왼편 계곡으로는 전 날 비가 온 이유로

인해서인지 탁류가 흐르고 있었고, 문득 과거의 일 들이 스쳐 간다. 십 수

년 전인 대학 2학년 때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직행버스를 타고 이곳 용대리

에 내려서 2박3일의 설악산행을 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버스에서 내려 배가 아파 화장실에 잠시 갔다 왔더니, 이미 각자의 배

낭을 풀러서 짐 배분이 다 된 상태였고 주인이 없었던 내 배낭에는 감자며,

쌀, 꽁치 통조림 등의 부식 거리가 가득 차 있었다. 배낭을 메 보니 그 무

게로 인해 다른 인간들이 원망스러워 졌고, 그렇게 생사 결단의 각오를 한

채 백담사까지의 멀고도 먼 다리 품을 팔던 그 퍽퍽한 과거의 흙먼지 길을

생각하며 포장되어진 오늘의 변한 길의 모습을 응시한다.

  버스에서 내려 산악회에서 왔다는 3사람과 동행하여 이런저런 말을 하면

서 백담사를 향한다. 그들은 길을 아는지 두 모퉁이 지나서 산 쪽 길을 타

면서 이 쪽이 지름길이라 한다. 참 빨리도 걷는다. 나도 걷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지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마에서는 벌써 땀이 흘러 내리고

있었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거의 뛰다시피하며 무진 애를 썼다.

 

순간의 착각, 고통의 시작

   경기도 부천에서 왔다는 그들은 용아장성을 타기 위해 오늘은 수렴동까지

간다고 하며, 나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때 목적지인 오세

암이란 지명이 왜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별 생각 없이 봉정암이라고 말하

니 자기네는 수렴동까지 가니 동행하자 한다.

  주위는 점차로 어둑해지고 각자 헤드랜턴을 켜고 말없이 수렴동대피소를

향했다. 밤중인데도 정말 그들은 대낮 길가듯이 잘도 간다. 눈이 안 좋은

나는 조그마한 손전등 하나를 더 꺼내서 앞을 비추면서 죽기살기로 따라

붙어 간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흐린 하늘, 희미한 불빛들.

그렇게 수렴동대피소까지 갔다. 주위는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인해

서 소란스러웠고 허기가 밀려와서 나도 라면에다 밥 좀 넣어서 저녁을 먹

고 있으려니 같이 했던 일행의 한사람이 와서 소주 한 잔을 권한다. 봉

정암까지 가려면 3시간 이상이 걸리니 이 곳에서 쉬고 내일 일찍 출발

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를 한다. 반면 머릿 속으로는 동행인에게 늦더라

도 간다고 한 말도 있고 해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렴동 대피

소를 출발하였다. 오세암으로 가야 하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봉점암으로

가려 했을까?

 

밤길,달빛, 물소리 더불은 홀로 산행과 긴 시간더미들


  처음 30분간은 정말이지 다시 수렴동 대피소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

다.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내 배낭을 스치는 나뭇잎 소리에 스스로 놀라고

길을 잘 못 들었다 싶으면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리본을 찾았다. 달은

얼굴을 내밀었지만 달을 볼 여유가 어디에 있을까? 공포는 마음 속에서부

터 일고 철계단을 오르면서 퍼지는 계단 소리에 누군가가 뒤따르고 있다는

생각에 중간 중간 멈추면서 뒤돌아보지만 그것은 계단 뿐. 마음속으로는

어서 물소리가 멀어져라 하고. 옛날의 기억으로 봉정암 오를 때 가파른 언

덕길 생각이 나고. 반면 폭포와 계단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이마에선 김

이 모락모락하여 시야를 가린다. 쌍폭에서 구곡담 쯤일까. 급한 마음으로

올라서 인지 다리가 뻣뻣해져 온다. 잠시 쉬다가 다시 오르고. 머리 속에선

늑대가 봉정암에서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다시금 움직여야 했다. 물소리

멀어지고 언덕 너덜 길. 시간을 보니 어느덧 봉점암에 다가오고 있었다.

입구에서 혹시 동행인이 텐트를 치고 있나하구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수렴동

대피소 출발 후 정확하게 3시간이 걸렸다. 다리가 아파 온다. 아이구.

신도들이 기거하는 방문을 열고 불 비쳐 보니 여자들만 보이고, 옆방도

마찬가지고 해서 봉정암 처마 밑에 메트레스에다 침낭을 펼치고 힘들었던

오늘 하루의 일과를 반추한다.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고 목탁 소리, 불경

소리를 벗삼아 잠을 청했다.

 

ㅇ 9. 14.

 나약한 아침의 시작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뒤척이면서 다시금 살아 있음에 대한 확인을

해 본다. 어제 힘들게 올라 왔기 때문에 아픈 다리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

히 별 문제는 없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떨어진 남자 신도들 방을

기웃거리면서 동행인 있나 하고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아침 먹고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 스님에게 공룡능선 가는 길을 물었다.

스님이 그러면 오세암을 거쳐서 가느냐는 말에 비로소 나는 어제의 목적

지가 이렇게 애를 써서 오른 봉정암이 아니고 오세암이라는 사실을 우둔

하게 이 아침에 깨달았다.

  내가 내 입으로 오세암에서 만나자고 이야기를 해 놓고선 그걸 잊어버

리다니. 자신의 한없는 추락과 나약해져 버린 하루의 시작. 동행인이 밤새

껏 기다렸을 생각을 하니 못난 자신을 한탄하는 수밖에.

  해서 지도를 보니 봉정암에서 오세암까지 2시간 40분. 한 편으로는 공룡

능선이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대청봉에 오르고 천불동 쪽으로 빠질까 하다

가 오세암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평소 늦잠이 많은 동행인이 아직도 텐트 속

에 있기를 기대하며. 조금 가다 보니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 한 편으로는 조급증 마저 인다. 에구, 잘못 들어 섰구나. 다시 조급증.

봉점암으로 원점 회귀. 그곳에서 오세암을 간다는 분들을 만나 가는 방향

을 다시금 묻고 7시에 출발을 했다.

 

오세암까지의 길 찾기.

  그런데 사찰과 관련된 표지판은 국립공원에서는 안 해주는 모양이다.

산길을 가면서 제대로 길을 가고있는지 점점 의심이 들고, 만나는 사람이라

도 있으면 물어 보련만 주위는 적막하다. 몇 번의 산 오름과 내림을 통해 계

곡 주변에서 차를 팔고 있는 한 분을 만나 시간과 가는 방향을 물으니 1시

간 30분이 더 소요된다고 한다. 저 분도 얼마나 적막할까? 그 적막함을 덜

기 위해 주변을 보니 개들이 있고 낯 선 사람의 방문에 개들이 짖는다. 길

을 가는데 뒤까지 쫒아와서 짖는다. 내 참 산중에서 개에게 쫓기기는 처음

이고. 다시금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고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이 있어 오

세암을 물으니 30분 정도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힘을 내서 다시 걷는다.

아침부터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던 생각과 함께 다리가 다시금 무거워 진

다. 2시간만에 오세암 도착. 혹시나 동행인이 있을까 하고 경내를 돌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계획했던 일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느낀다. 아, 나는 왜 이럴까 ?


갈등, 혼란 그리고.


  이젠 오세암에서 백담산장 쪽으로 하산하여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 일

고, 다른 쪽에서는 이곳에까지 왔는데 계획대로 마등령 쪽에서 공룡 능선

을 타자고 부추기고 있었다. 지도를 보고 시간을 어림 잡으니 지금 이곳에

서 출발을 한다면 오후 5시경에나 휘운각 대피소에 도착할 것같고, 그리고

하산 시간... 어차피 이곳에까지 왔으니 우선은 마등령을 오르기로 결정을

했다. 전 일 내린 비로 고개 곳곳에선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오르다

보니 곳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아침의 시간인데도 허기가

느껴지고 발바닥도 아프고 해서 조그마한 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양갱에다

가져간 옥수수 통조림을 따서 먹었다. 맛도 모르겠고, 허기지기 전에 먹

어야 한다는 의무감. 조금 먹으니 기분 상 나은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오름. 그리고 갈등. 공룡을 타느냐 마느냐의 연속된 어지럽힘. 마

등령 고개 정상에서 배낭을 풀고 다시 갈등. 이때 주변의 날씨를 보니 운

무가 자욱하고 바람마저 인다.

  한편으로는 잘됐다하면서 날씨 탓을 하면서 포기하고. 다시금 목적지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공룡능선이 살아서 움직이지 않는 한 이 곳

에 다시 있을 것임을 생각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하산시의 무거운 발걸음.

   릿지화를 신어서인지 발바닥이 물집 잡힌 것처럼 아프다. 가고자

했던 곳을 지나쳐 버리는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며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띈다. 내리막 길 지루함을 느낀다. 의욕 부재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까? 멀리 천불동 계곡 쪽들의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다가온다. 사진

기 꺼내서 처음으로 한 장 찍구. 다시 터벅터벅 내림길.

  비선산장 앞에서 다시 휴식. 탁족을 하면서 발을 보았지만 멀쩡하다. 일요

일을 산에서 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비선대 쪽에서

누워 멀리 적벽에 붙어서 암벽 등반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불과 한

달 전에 이곳 비선 산장에서 머무르면서 적벽, 유선대, 울산바위에서 버벅

대면서 암벽 훈련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재미난 기억들.

  암벽훈련 마지막 날. 일정상 울산바위 등반에다 비박이 계획되었는데 하

늘의 보살피심으로(?) 인해 아침부터 비가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그래

도 바위를 타는데 날씨를 가릴 거냐며 울산바위 밑에까지 갔다. 조금 수월하

다는 비너스 길. 도착하니 비는 조금씩 내리고 바위에선 물이 줄줄 흘러내

리고 있었다. 졸업등반인 관계로 선등을 교육생이 하였다. 바람도 조금 분

상태여서 아래에선 서로간에 덜덜 떨면서 이왕 등반을 하는거 인공 등반물

의 도움 없이 손가락 중지에 온 목숨을 지탱하는 하드프리 스타일로 하자

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그리고 강사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울산바위

철계단 앞에 모였다가 자유등반 스타일로 들어가려다 붙잡혀서 쭉쭉 미끄

러지면서 바위를 탔다. 한 장소에서 무려 8번이나 추락을 먹고. 위에서

확보를 봐 주던 후배가 나중에 팔에 펌핑이 왔다고 투덜댄다. 힘든 기억은

언제나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다가 생생하게 펼쳐 진다.

  완전 초보자의 상태에서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긴장으로 인해 부르르

떠는 팔, 비오듯 쏟아 지는 땀, 그리고 푹 쉰 냄새 나는 옷. 한 달 전의

일들이 아련하다.

 

하산 그 이후.

  설악동에서 버스를 타니 졸음이 밀려온다. 얼마쯤 졸았을까, 속초 시내에

나와 택시 붙잡고 흥정하며 차가 주차되어 있는 용대리 쪽으로 향하였다.

에구, 집에 빨리 가서 전 번에 거의 다 못 본 “쥬라기공원”이나 봐야 겠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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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날 따스한 봄빛에 끌려 가족들과 함께 88공원으로 나들이 나갔습니다. 주변은 봄빛이 완연하고, 꽃들과 함께 4월의 신랑, 신부들의화사한 야외 촬영. 즐거움이 지속되기를( ? ) 한편으로 빌기도 했고, 볼거리가 많다는 점에서 역시 나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관심은 인공암장 쪽 이었습니다.
외지에서 온 3명의 젊은 사람들이 수직벽을 오르고 있는 모습을 통해, 젊음의 살아 있는 열기를 확인 합니다. 암벽등반에 전혀 문외한인 나로서는 암벽 장비라든지 실제 오르는 모습이 가히 충격적인 하루였습니다.

  현재 관리는 강원산악회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련 직원의 말로는 암벽지도와 관련된 등산학교의 일정은 잡혀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반면 에 퇴근 시간쯤에 (17:00 -18:00 경 ) 나가면 5-6 명 정도가 배우는 사람이 있으니 같이 참석하면 된다고 합니다.

  일반 등산이야 혼자서도 다닐 수 있지만 암벽등산은 특성상 확보자가 필요하니 마음만 있는 상태 입니다.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일긴 했습니다만 비대해져 가는 자신의 슬픈 모습을 확인하고, 에구, 세월의 흐름을 한탄할까요 ?

  봄 꽃 향 기 를 전합니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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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시간이 좀 있구, 장비도 몇가지 구입할 일이 있어서 종로 5가에 갔었습니다. 비는 가기 전부터 부슬부슬 내리고, 오랜 만에 서울 나들이라 감회도 새로웠지요. 아, 나는 언제나 대한민국의 수부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서울 시민이 되려는지요.

   장비점에서 써미트 85리터 배낭에, 피츠로이 3 텐드 등을 구입했습니다. 이 정도면 이젠 집에서 집사람이 마음 놓고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지 못하겠지 하면서 마음은 오히려 아이들 만큼이나 부풀어 오릅니다. 단지 시간 관계상 서둘러 장비점을 나왔지만 기차두 놓치고 해서 상봉동에서 버스를 타고 춘천엘 내려 왔지요. 집에 와서 거실에다 텐트를 펼쳐 놓으니 아이들이 좋아라하면서 어딜 가려고 하느니, 얼마 주고 샀느니,아예 오늘은 여기서 잔다는 등의 기쁜 몸짓을 보았습니다. 나도 안에 들어 가서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가 확인해 보고,텐트 내의 휘발성 냄새로 정신은 혼미 해 집니다. 마음은 이 텐트 언제나 몇 번이나 써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고 , 작은 상념 속에 빠져 봅니다. 

최근 들어 지리산 지도를 보는 일이 잦아 졌습니다. 과거 성삼재를 거쳐 노고단에 까지 가 본 경험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겉햝기 식이었고, 이런 나의 행동에 대해 아내는 자꾸만 의심스런 눈빛을 보이고, 갈 때는 자신을 꼭 데리고 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목표가 있는 삶.
  그 자체가 행복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눅눅한 날에. 그럼..... 총총.

                                                                                      970702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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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지인 두어 분이랑 유명산 산행을 했습니다. 도착한 시각이 1시 45분 경이었고, 물 구해서 라면과 햄버거도 먹고 힘차게 산으로 올랐지요.
  오름의 과정은 수월했고, 유명산이란것이 별것 아니구나라는 자만심 마져도 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시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았고, 작년 겨울 이곳에 왔을 때 힘들게 오르던 생각이 아련했었고. 정상에서 잠시 쉬고 계곡 쪽으로 하산을 하였습니다.

  행복 끝 고통 시작.
  좀 전에 까지 내린 비로 계곡 주위의 물소리는 온통 귀를 어지럽혔습니다.내리막 길 자체가 작은 시내를 이루고 있었고, 물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포말로 부서지며 어디론가 흘러 갑니다.

  첫 도강 지점.
  막막했지요. 좀 더 얕은 곳은 없는가 하고 여기저기 찾아 보았지만결국은 남들은 등산화 끈 풀고 맨발로, 나는 샌달 신고 있었고, 샌달 덕을 보았지요. 첫 도강.
  계곡의 물 들이 소리를 치며 우리를 부릅니다.
눈 마져도 거뭇거뭇 혼미해지고, 뼈 속마져 시림을 느끼고 반바지를 입었지만 또 것어 올리고 히히, 나는 긴다리 덕분에 젖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히히히....

  두 번째 도강.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계곡을 건넜지요.
로프라는 것도 없었구. 무식한 자가 용감한 자라구. 긴 나무 구해다가 바닥에 대구 한 발 한 발 삶의 비극적 의미를 느끼면서, 돌아 흐르는 물을 보며 공무도하가를 불렀지요.

  공무도하 공경도하 타하이사 당내공하
  삶이란 이렇게 버거운 것일까요? 

  세 번째 도강의 시도.
 반면 물의 유속이 우리를 움추러들게 만들었고,
결국 우회. 너덜지대 위 능선 쪽으로 다시 우회. 내려 왔지만 다시 물은 우리의 눈 앞에서 기다리고 있고. 위로 아래로 다니면서 얕은 곳을 찾아서 결국은 그곳으로 건넜지요.
 
내려 오다 다른 팀을 만났습니다. 그 분 들은 아예 옷이며, 신발이 다 젖어 있었고, 잠시 내려 가더니 물에서 아예 몸을 담그고 있더군요. 

  네 번째 계곡 건넘. 희망이 보였지요. 이제는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그러나 입구 쪽에서 다시 물을 건너야 했었고. 이렇게 일주 오도하기가 마무리 된 시각이 3시간 20분. 총 4시간 20분이 소요된 유명산 산행이었습니다.
  공무도하가에 나타난 물이 이별의 심상이라는데 생각하면 조금은 아찔했던것 같기도 합니다.
                                                                     970705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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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평에서 북면 쪽으로 가는 도중 도로 가운데에서 쓰레기 수거료를 받는다. 앞차가 서지 않고 도망을 가서 아저씨의 얼굴이 험악하다. 더운 여름날 서로 간에 짜증을 내고, 돈을 내고 행선지를 물으니 대답해 준다.
 
잘가고 있는 것인지. 표지판이 없는 것이 오히려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1시 도착. 입구는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작은 돌들이 깔려져 있다.11시 5분 산행 시작. 입구 가게에 있는 사람에게 물으니 정상까지 3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입구내의 사찰. 번듯한 일주문. 사천왕문. 그런데 사천왕문 뒤로는 고추등을 심은 밭이다. 사찰의 경계를 알리기 위해 한 편으로 축대를 쌓았다. 입구마져도 문을 닫아 그것은 닫힌 공간으로 존재한다. 사찰 내 들어 갔을때 승려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김정한의 "사하촌"을 연상한다.

  지리한 계곡 길.
  훌쩍 커 버린 나무들로 인해서 주위를 볼 수 없다. 단지 물소리 뿐. 간혹 물을 만나면 한 모금씩 목 축이고. 계곡 끝. 좌우의 갈림길. 계곡의 물소리가 멀어지는 곳에 사람도 점점 멀어진다. 가파른 오름길. 헐떡거리면서 살아 있음에 대한 거친 확인.

  3봉. 몇 사람을 만났는데 모두가 물이 없느냐고 묻는다. 어떤 사람은 일행을 잃어 버렸다고 악을 쓰면서 부른다. 라면을 끓여 먹고 점심 해결. 하나의 즐거움 감소.
  2봉에서 1봉으로. 나는 왜 가고 있는 것일까 ? 정상이 있기 때문에 ?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데 나의 삶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독선과 교만으로 가득차는 것은 아닐까 ? 14시 30분. 정상에서의 조망.
  여름 산은 특유의 짙은 녹색을 띠며 가까이 다가온다.

  하산.
  요새 수박은 이상하다니까.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모두 달고, 혹 그 속에 설탕물을 넣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지리한 내림길에서의 잡다한 생각. 그러다가 계곡 만나는 곳에 내려 왔을 때 그 밑에서 쉬고 있는 한 팀에게서 수박을 얻어 먹었다. 말은 해야지 제 맛인가 ?

  다시 지리한 내림 길. 이번에는 계곡이 오른 편에 있었고, 과거  제주도 한라산 길을 생각 했다. 그 돌 많던 퍽퍽한 길. 계곡의 웅덩이를 향해 들어 가고 싶다.
  산악 행군하면 좋겠어. 아니면 오리엔테어링이 더 나을 지도 몰라. 주위를 잘 볼 수 없거든.

  긴 그늘의 터널을 지나 빠져 나옴은
낡은 영화의 한 편을 본 것.
                                                         970713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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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의 기록들(97.11.30)

  09:20 출발 --- 10:10 세렴폭포 --- 10:45 사다리병창 입구 ---12:20 비로봉 --- 13:00 정상주, 하산 --- 14:15 점심, 하산 ---15:20 산행 갈림길 --- 15:50 하산


2. 
산을 오르기 전 

  전 날 비가 온 이유로 해서인지 아침의 기분은 삽상하다. 계절에 맞지 않음을 탓할 수도 있었지만 엘리뇨현상 운운하는 세상에서 어찌하랴.우리들의 삶이.
 모인 사람들에 대한 확인. 돼지들 마리 수 세는 것같아
즐겁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아침. 그리고 한편으로는 날씨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호상간의 대화. 다시금 찾는 산이지만 한편으론 경계의 마음이 앞서고 다른 분은 산행에 대한 걱정부터 앞선다. 세월이 가면서 삶의 경륜은 숨길수 없는 것일까 ? 이것저것 생각지 못한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산이라
는 매개체로 인한 만남. 그리고 산이 없었다면 우리의 만남 그자체는 형식적인 것 아니 스쳐 지나가는 무의미한 그 자체가 되어 버리지 않았을까라는 원초적인 생각을 한다.

3.  오름짓 하면서

    과거의 기억은 늘 살아 움직이면서 판단을 어지럽힌다.
   옛날에 아이구
구체적으로 말하자. 내가 대학 2학년인 79년에 우리 과 학생들과 치악산에 오른적이 있었다. 그 이전에 2박3일로 설악산을 오른 적이 있었구. 다들 설악산에선 멀쩡 했었다. 산행이 끝난 후 속초에서 물갈이를 하는 바람에 배탈을 하는 것을 빼 놓구. 설악의 대청봉을 넘었다는 알량한 자존심에 치악산 쯤이야라는 자만심으로 1박 2일의 치악 산행을 했다. 결국은 1박을 하면서 밝혀졌지만 총 인원 12명에 무모하게도 텐트 3인용 1개만 가지고 갔었다. 시점은 5월 초순이었고 우습게 생각했던 가파른 사다리병창의 오름길에 다들 한숨짓기 시작했구. 그럭저럭 정상에까지 올라 갔다. 하산길을 잘못 택해서 정말 없는 길을 만들어 가다가 어쩔수 없이 1박. 그리고 나온 것이 텐트 1동. 그 때 비가 안와서 다행 이었지 마른 나무를 주어다가 때면서 등 시린 밤의 한나절을 보냈던 그해 여름밤 치악산에서의 기억들이 살아 움직인다.

  전 날 내린 비로 인해서 계곡의 물들은 퉁퉁퉁 소리를 내며 흐르고 발걸음마져 한가하다. 세렴폭포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이후 불규칙적으로 허덕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 있슴에 대한 가여운 확인을 한다. 나는 왜 이 힘든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을까 ? 겹겹의 잡생각들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4. 정상에서의 일들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산을 오른다. 가빠오는 숨과 마음만큼이나 따라 주지 못하는 팔다리를 의식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주변의 풍광에 눈을 돌린다. 가까이 다가서는 나무들. 오르면서 고도차이로 인한 얼음들을 보다가 급기야는 눈꽃더미를 보았다. 가쁜 숨에 이어지는 주변의 경광에 짧은 탄성이 어지고 산은 이렇게 많은 것을 감추어 두고 오직 오르는 자에게만 보여 주는 것일까 ?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찍었다. 찍으면서 노출이 30이하로 떨어졌던 것에 대해 내내 불안하다. 분명 흔들렸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11월의 마지막 날인데도 계절은 나이를 속이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상태에 기온마져도 계절을 우롱한다. 겨울일까, 아니 비 내린 봄 날일까 ? 포근한 날씨. 드디어 정상. 석탑 주변을 돌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올렸다는 석탑과 돌더미 속에 스며든 인간의 의지를 다시금 떠올린다.

5.  뒤풀이 하면서

    두부와 막걸리를 먹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것은 과거의 삶들이다. 어렸을 적 미군부대 쓰레기장을 뒤져서 나왔던 씨레이션 속의 커피 봉지. 커피를 어떻게 끓이는 지 몰라서 양푼 가득이 물 넣고 커피를 삶았던 과거의 무지하고 용감했던 일들이 칙칙하게 겹쳐 되살아 온다. 이불 속에 놓여진 술 익는 부글부글 거리는 소리들 속에서 설레이는 가슴. 어머니 몰래 맛 본 술맛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동네 막걸리 집에서 됫술을 받아 오면서 주위를 한 번 훔치면서 맛 본 막걸리의 맛.
 
 추억은 언제나 기억의 저편에서 오늘의 그리움으로 살아서 돌아 온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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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날에

바람의 흔적 2008. 6. 17. 10:39

날씨는 더운데, 그래서 적막하다.

며칠 전 삼악산엘 올라갔다가 죽는 줄 알았다.

더위로 인해서. 땀이 옷에서 뚝뚝뚝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카뮈의 “ 이방인”을 연상한다.

 

요새하는 일이라곤 매일같이 퇴근시 비디오 한 편을 빌려다 보는 것이

일과다. 사흘간 본 목록을 보면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를, 마이크로 코스모스, 초록 물고기이다.

오늘은 뭘 빌려야 하는지 생각 중에 있다.

 

쓸데없는 생각들......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를.

금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우리 시대 공륜의 무서운 힘을 믿는다. 덕분에

공륜이 불가 판정을 내린 작품에 대해 더 찾는지도.

비록 정태춘님 등에 의해 무너지기는 하였지만. 비디오를 보면서 왜 이것이 상영

불가의 판정을 받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닫힌 시대의 주어진 자를 가지고 정해

진 치수만을 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뇌를 인정한다. 내용 면에서는 난해하다.

단순한 저급의 영화로 보기에는. 익명의 닫힌 공간에서의 그들의 탈출구가 과연

성적인 행위밖에는 없었을까를 생각해 보고 주어진 사물의 이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실재하지 않는 삶의 모습들.

 

마이크로 코스모스.

눈높이 학습이란 이야기도 한참 떠돌았었다.

작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촉구하고. 약육강식의 원초적인 논리가 지배

하는 사회의 삶. 사슴벌레의 삶에 대한 확인의 과정은 치열하다. 서로 부딪히면서

사는 격한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

원시시대의 인간이 가졌던 원초적인, 본능적인 삶을 꿈꾼다.

 

초록물고기.

한석규가 나오는 영화는 언제나 밋밋하다.

배우의 특성상 그렇기도 하지만. 정확한 표준 발음을 구사하는 이 시대의

연약한 표준 인간들.

삶의 전개 과정은 다소 도식적이다. 바닥의 불구적인 삶 들.

빛 바랜 사진이 가져다주는 아주 묵은 추억의 더미들.

시간의 창조성과 함께 그것은 흘러가고 새 의미를 언제 얻을 것인가 ?

 

에구, 한 5일간 부모님댁엘 안 갔더니

어제는 전화가 왔다. 밥 제대로 먹고 있는지. 섭섭해하시는 목소리가

들린다. 급기야는 오늘아침 7시에 오셔서 밥을 차려 주고 집안을 둘러

보신다. 나이 40이 가까운 아들을 두고 어머님의 눈에는 아직도 코흘리개

적의 아들이다.

밤새 마신 술로 인해서 머리가 아프다.

                                                            1997. 08. 01.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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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나절 ― 영랑생가에서
 윤식은 30대 초  박용철 등과 함께『시문학』지를 간행한 시인이다.  이른바 대
구, 강진 등의 그 당시 서울에 비하면 촌놈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이 잡지는 여
러 사정으로 인해 불과  3호밖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세칭 "시문학"파가 끼친  시
사상의 의의는 자못 크다.
 대문을 지나 행랑채의 작은  방들이 보이고 벽면에 여기저기 걸려 있는 농기구
등이 눈에 익숙하다. 옛 집을 보면 과거  시절의 일들이 다시금 떠올라 친근하게
만 느껴진다.
 초가 지붕과 대청마루 조금 떨어진 사랑채 사이에 큼지막하게 서 있는 영랑 시
비. 그 많던 모란은 어디에 갔을까 ? 복원시 간혹 지나친 인위성이 눈에 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비를 읽으면서 그의 섬세한 감정과  미의식에 대
한 추구 열의를 엿 볼 수 있다.
 초가 지붕  사이로 한가롭게 쏟아지는 오전의  햇빛. 마루에 앉아서  가곡화 된
그의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을 나직이 읊조린다.

  백련사
 백련사로 향하는 산길을 오르면서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동백나무의 무리
를 본다. 굵은 한참씩은 나이를 먹었을 나무들의 탐스런 자태.
 천태종의 수행 결사.  요세의 중건 등 단편적인  지식을 안고 백련사에 오르다.
멀리 좁은 강진만이 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면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이 있어
가려 했지만 일행도 있고 시간 관계상 포기.

  다산초당
 백련사에서 조금  더 내려오다가 다산초당 들머리인  귤동마을에 차를 주차 했
다. 전 날 월출산의 몸부림 등산으로 인해  초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다들 무겁
다.
 입구 주변의 마디 굵은 대나무 숲. 지천으로 보이는 굵은 동백나무들.
 다산이 사학에 물든 죄로 18년간의  강진 유배 생활 중 10년 간 이곳에서 머무
르면서 후학들의 양성과 자신의 사상을 심화시켰던 곳.  다산의 외가 쪽이 그 지
역에서는 거족이랄 수 있는 해남 윤씨이고 보면 경제가 탄탄해야 사상도 나온다
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다. 복원된 초당과 그 주변의 경관.  다조, 연지로 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든다.  물 한 모금 축이고 서암, 동암,  천일각을 향하면서 강진
만을 바라본다.
 간척 산업으로 인해 변한 포구의 지형. 사람의  키보다 더 커 버린 갈대의 모습
을 보면서 초당을  나선다. 내려오면서 윤종진 묘 앞 동자석의  앙증맞은 모습을
사진에 남겼다. 마을 입구  가게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어렸을 적 우
리가 먹었던 상표 없던 가래떡을 썰어서 튀긴  과자를 사서 먹는다. 맛은 예전과
같지 않고.

  도갑사에서
 강진에서 영암으로 오르면서 목포 쪽의 길을 들어가야 하는데 별 생각 없이 월
남을 거쳐 풀티재를 넘어 영암으로 향한다. 사흘  사이에 여러 번 지나친 길이어
서 인지 단조로움이 앞선다.
 영암에서 도갑사로 향하는  길은 벚나무가 가로수이다. 죽 이어진  벚나무를 보
면서 꽃이 피었을 봄날의 모습에 대해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들어가는 초입의
마을. 정육점에선 소꼬리,  등 뼈 등을 밖으로 전시해 놓고  있었다. 아마도 장날
이라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상술이라 생각을  해 본다. 조그마한 장이 서
있고 장돌뱅이 몇몇만이 한가롭게 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저수지 주변을 빙글  돌아서 조금 더 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앞의 수백
년은 훨씬 넘어 버린 것같은 커다란 고목나무에 시선이 멈춘다.
 도갑사 초입의 해탈문(국보 50호)을 지나면서 사바세계에  찌든 나의 마음도 온
갖 번뇌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 여러  의문을 품는다. 대웅보전에는 선남선
녀의 불신도를  모시고 주지 스님의 설법이  한창이다.  신라 승려  도선에 관한
풍수 이야기, 조선 건국에  대한 이성계, 무학대사의 일화 그리고 현정권 초기의
불교 탄압에 관한 이야기까지 스피커를 통해서 들려 온다.
 사찰 주변에는  유적 발굴 작업 관계로  주변이 어수선하다. 석조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경내 주변을 배회한다. 뒤편의  석가여래좌상을 보고 불당이 나중에
지어진 것임을 유추해 본다.

  왕인박사 유적지. 2박 3일 남도 여행의 종착지.
 황량한 느낌의 잘  조성된 인위적 건물. 널찍한 터에 삼국  시대의 더구나 백제
의 유물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대에 지나간 역사에 대한 서글픔의 재인식인가
?
 스피커에서 울리는 전통  음악. 일대기를 담은 유화를 보면서  남원 광한루에서
본 춘향의 일생을 그린 그림을 떠올린다. 기대에 못 미침.

 기념 가축 사진을 찍고 남도에서의 짧은 여정을 뒤로하고 집으로 떠났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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