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9. 13 - 14 양일간 설악산 등산에 관한 기록이다.

원래의 계획은 지인과 함께 공룡능선을 오르기로 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아쉬운 마음으로 마등령을 거쳐서

설악동으로 빠져 나왔다. 그간의 잡다한 기록들.

 

1. 운행기록

ㅇ 9. 13(토)

16:00 (춘천출발) - 17:55(백담사 매표소 도착) - 18:05 (백담사행 버스

승차) - 18:40(백담사) - 20:05(수렴동 대피소, 저녁, 휴식) -20:40(대피

소 출발) - 23:35(봉정암 도착, 비박)

 

ㅇ 9. 14(일)

05:00(일어남, 아침) - 06:20(봉정암 출발) - 07:00(길 잘못 들어 헤매다가

다시 봉정암 출발) - 09:00(오세암 도착) - 10:30(마등령) - 12:55(비선산

장) - 13:50(설악동 버스정류장)

 

2. 잡생각 

ㅇ 9. 13. 

떠나기 전 

  추석 연휴라 생각을 하니 마음은 넉넉하다. 예년에 비해 긴 시간이 앞에

기다리고 있었고, 며칠 전부터 늑대에게 산행대상지를 공룡능선으로 정하

고 함께 가자는 연락을 했다. 공룡능선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를 다른 분

을 통해서 얻고, 전 날부터 배낭을 들고 꼼지락거리고 있는 내 모양새가

수상한 지 마누하님이 옆에 다가와서 슬그머니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씩 웃으며 설악산 간다고 하니 누구랑 가냐고 재차 심문조로 묻는다. 대

답을 하고 별다른 말이 없기에 행복한 산행을 꿈꾸면서 시간이 다가 오

기를 기다린다.

  동행인은 원주에서 먼저 출발을 하기로 하고 오세암에서 만나기

로 약속을 하였다. 내가 밤 늦더라도 꼭 간다는 말에 늑대는 흔쾌히 산행

결정을 했고, 연락 수단이 없는 나는 동행인의 삐삐를 이용 약정된 기호로

연락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즉 백담사 매표소에서 버스를 타면 정상적인

진행(1234), 그렇지 않고 걸어 가게 되면 0000 으로 호출하기로 했으며 동행인이

오세암에 미리 가서 텐트를 치기로 했다.


떠남, 백담사 매표소

  토요일 오후, 마음은 바쁘고 시간은 더디 간다. 오후 4시에 집에서 나와

출발. 속초로 가는 길은 연휴 시작의 토요일이라서 인지 한가함 마저 느낀

다. 차의 창문을 내리니 가을바람과 언뜻언뜻 보이는 황금색의 벌판이 함

께 한다. 구불구불한 길과 여러 개의 다리를 지나니 백담사 매표소 입구다.

주차장에는 차들도 별로 없고 매표소에서 버스를 물으니 백담사 쪽에서 내

려오는 지금 버스가 마지막 버스란다. 그래서 이제는 백담사까지의 그 퍽

퍽한 길을 생각하면서 늑대에게 미리 약정된 0000으로 호출을 했다. 갈 길

을 생각하니 마음은 바쁘다. 걸어가려고 하는데 9명의 사람이 모여서 버스

가 내려오면 사정을 해서 타고 가 잔다. 해서 무료하게 입구 쪽에서 기다

리고 있었다. 각자의 행선지를 물어 보니 내일 대부분 용아장성능을 탄다고

한다. 이러는 사이 버스가 왔고 사정을 이야기하여 버스를 탔다.

 

백담사까지

  포장된 도로를 버스는 달린다. 왼편 계곡으로는 전 날 비가 온 이유로

인해서인지 탁류가 흐르고 있었고, 문득 과거의 일 들이 스쳐 간다. 십 수

년 전인 대학 2학년 때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직행버스를 타고 이곳 용대리

에 내려서 2박3일의 설악산행을 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버스에서 내려 배가 아파 화장실에 잠시 갔다 왔더니, 이미 각자의 배

낭을 풀러서 짐 배분이 다 된 상태였고 주인이 없었던 내 배낭에는 감자며,

쌀, 꽁치 통조림 등의 부식 거리가 가득 차 있었다. 배낭을 메 보니 그 무

게로 인해 다른 인간들이 원망스러워 졌고, 그렇게 생사 결단의 각오를 한

채 백담사까지의 멀고도 먼 다리 품을 팔던 그 퍽퍽한 과거의 흙먼지 길을

생각하며 포장되어진 오늘의 변한 길의 모습을 응시한다.

  버스에서 내려 산악회에서 왔다는 3사람과 동행하여 이런저런 말을 하면

서 백담사를 향한다. 그들은 길을 아는지 두 모퉁이 지나서 산 쪽 길을 타

면서 이 쪽이 지름길이라 한다. 참 빨리도 걷는다. 나도 걷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지만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마에서는 벌써 땀이 흘러 내리고

있었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거의 뛰다시피하며 무진 애를 썼다.

 

순간의 착각, 고통의 시작

   경기도 부천에서 왔다는 그들은 용아장성을 타기 위해 오늘은 수렴동까지

간다고 하며, 나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때 목적지인 오세

암이란 지명이 왜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별 생각 없이 봉정암이라고 말하

니 자기네는 수렴동까지 가니 동행하자 한다.

  주위는 점차로 어둑해지고 각자 헤드랜턴을 켜고 말없이 수렴동대피소를

향했다. 밤중인데도 정말 그들은 대낮 길가듯이 잘도 간다. 눈이 안 좋은

나는 조그마한 손전등 하나를 더 꺼내서 앞을 비추면서 죽기살기로 따라

붙어 간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흐린 하늘, 희미한 불빛들.

그렇게 수렴동대피소까지 갔다. 주위는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인해

서 소란스러웠고 허기가 밀려와서 나도 라면에다 밥 좀 넣어서 저녁을 먹

고 있으려니 같이 했던 일행의 한사람이 와서 소주 한 잔을 권한다. 봉

정암까지 가려면 3시간 이상이 걸리니 이 곳에서 쉬고 내일 일찍 출발

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를 한다. 반면 머릿 속으로는 동행인에게 늦더라

도 간다고 한 말도 있고 해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렴동 대피

소를 출발하였다. 오세암으로 가야 하는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봉점암으로

가려 했을까?

 

밤길,달빛, 물소리 더불은 홀로 산행과 긴 시간더미들


  처음 30분간은 정말이지 다시 수렴동 대피소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

다.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내 배낭을 스치는 나뭇잎 소리에 스스로 놀라고

길을 잘 못 들었다 싶으면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리본을 찾았다. 달은

얼굴을 내밀었지만 달을 볼 여유가 어디에 있을까? 공포는 마음 속에서부

터 일고 철계단을 오르면서 퍼지는 계단 소리에 누군가가 뒤따르고 있다는

생각에 중간 중간 멈추면서 뒤돌아보지만 그것은 계단 뿐. 마음속으로는

어서 물소리가 멀어져라 하고. 옛날의 기억으로 봉정암 오를 때 가파른 언

덕길 생각이 나고. 반면 폭포와 계단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이마에선 김

이 모락모락하여 시야를 가린다. 쌍폭에서 구곡담 쯤일까. 급한 마음으로

올라서 인지 다리가 뻣뻣해져 온다. 잠시 쉬다가 다시 오르고. 머리 속에선

늑대가 봉정암에서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다시금 움직여야 했다. 물소리

멀어지고 언덕 너덜 길. 시간을 보니 어느덧 봉점암에 다가오고 있었다.

입구에서 혹시 동행인이 텐트를 치고 있나하구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수렴동

대피소 출발 후 정확하게 3시간이 걸렸다. 다리가 아파 온다. 아이구.

신도들이 기거하는 방문을 열고 불 비쳐 보니 여자들만 보이고, 옆방도

마찬가지고 해서 봉정암 처마 밑에 메트레스에다 침낭을 펼치고 힘들었던

오늘 하루의 일과를 반추한다.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고 목탁 소리, 불경

소리를 벗삼아 잠을 청했다.

 

ㅇ 9. 14.

 나약한 아침의 시작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뒤척이면서 다시금 살아 있음에 대한 확인을

해 본다. 어제 힘들게 올라 왔기 때문에 아픈 다리가 걱정이 되었다. 다행

히 별 문제는 없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떨어진 남자 신도들 방을

기웃거리면서 동행인 있나 하고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아침 먹고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 스님에게 공룡능선 가는 길을 물었다.

스님이 그러면 오세암을 거쳐서 가느냐는 말에 비로소 나는 어제의 목적

지가 이렇게 애를 써서 오른 봉정암이 아니고 오세암이라는 사실을 우둔

하게 이 아침에 깨달았다.

  내가 내 입으로 오세암에서 만나자고 이야기를 해 놓고선 그걸 잊어버

리다니. 자신의 한없는 추락과 나약해져 버린 하루의 시작. 동행인이 밤새

껏 기다렸을 생각을 하니 못난 자신을 한탄하는 수밖에.

  해서 지도를 보니 봉정암에서 오세암까지 2시간 40분. 한 편으로는 공룡

능선이 물 건너갔다는 생각에 대청봉에 오르고 천불동 쪽으로 빠질까 하다

가 오세암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평소 늦잠이 많은 동행인이 아직도 텐트 속

에 있기를 기대하며. 조금 가다 보니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 한 편으로는 조급증 마저 인다. 에구, 잘못 들어 섰구나. 다시 조급증.

봉점암으로 원점 회귀. 그곳에서 오세암을 간다는 분들을 만나 가는 방향

을 다시금 묻고 7시에 출발을 했다.

 

오세암까지의 길 찾기.

  그런데 사찰과 관련된 표지판은 국립공원에서는 안 해주는 모양이다.

산길을 가면서 제대로 길을 가고있는지 점점 의심이 들고, 만나는 사람이라

도 있으면 물어 보련만 주위는 적막하다. 몇 번의 산 오름과 내림을 통해 계

곡 주변에서 차를 팔고 있는 한 분을 만나 시간과 가는 방향을 물으니 1시

간 30분이 더 소요된다고 한다. 저 분도 얼마나 적막할까? 그 적막함을 덜

기 위해 주변을 보니 개들이 있고 낯 선 사람의 방문에 개들이 짖는다. 길

을 가는데 뒤까지 쫒아와서 짖는다. 내 참 산중에서 개에게 쫓기기는 처음

이고. 다시금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고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이 있어 오

세암을 물으니 30분 정도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힘을 내서 다시 걷는다.

아침부터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던 생각과 함께 다리가 다시금 무거워 진

다. 2시간만에 오세암 도착. 혹시나 동행인이 있을까 하고 경내를 돌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계획했던 일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느낀다. 아, 나는 왜 이럴까 ?


갈등, 혼란 그리고.


  이젠 오세암에서 백담산장 쪽으로 하산하여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 일

고, 다른 쪽에서는 이곳에까지 왔는데 계획대로 마등령 쪽에서 공룡 능선

을 타자고 부추기고 있었다. 지도를 보고 시간을 어림 잡으니 지금 이곳에

서 출발을 한다면 오후 5시경에나 휘운각 대피소에 도착할 것같고, 그리고

하산 시간... 어차피 이곳에까지 왔으니 우선은 마등령을 오르기로 결정을

했다. 전 일 내린 비로 고개 곳곳에선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흐른다. 오르다

보니 곳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아침의 시간인데도 허기가

느껴지고 발바닥도 아프고 해서 조그마한 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양갱에다

가져간 옥수수 통조림을 따서 먹었다. 맛도 모르겠고, 허기지기 전에 먹

어야 한다는 의무감. 조금 먹으니 기분 상 나은 것 같기도 했다.

다시 오름. 그리고 갈등. 공룡을 타느냐 마느냐의 연속된 어지럽힘. 마

등령 고개 정상에서 배낭을 풀고 다시 갈등. 이때 주변의 날씨를 보니 운

무가 자욱하고 바람마저 인다.

  한편으로는 잘됐다하면서 날씨 탓을 하면서 포기하고. 다시금 목적지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공룡능선이 살아서 움직이지 않는 한 이 곳

에 다시 있을 것임을 생각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하산시의 무거운 발걸음.

   릿지화를 신어서인지 발바닥이 물집 잡힌 것처럼 아프다. 가고자

했던 곳을 지나쳐 버리는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며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띈다. 내리막 길 지루함을 느낀다. 의욕 부재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까? 멀리 천불동 계곡 쪽들의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다가온다. 사진

기 꺼내서 처음으로 한 장 찍구. 다시 터벅터벅 내림길.

  비선산장 앞에서 다시 휴식. 탁족을 하면서 발을 보았지만 멀쩡하다. 일요

일을 산에서 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비선대 쪽에서

누워 멀리 적벽에 붙어서 암벽 등반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불과 한

달 전에 이곳 비선 산장에서 머무르면서 적벽, 유선대, 울산바위에서 버벅

대면서 암벽 훈련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재미난 기억들.

  암벽훈련 마지막 날. 일정상 울산바위 등반에다 비박이 계획되었는데 하

늘의 보살피심으로(?) 인해 아침부터 비가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그래

도 바위를 타는데 날씨를 가릴 거냐며 울산바위 밑에까지 갔다. 조금 수월하

다는 비너스 길. 도착하니 비는 조금씩 내리고 바위에선 물이 줄줄 흘러내

리고 있었다. 졸업등반인 관계로 선등을 교육생이 하였다. 바람도 조금 분

상태여서 아래에선 서로간에 덜덜 떨면서 이왕 등반을 하는거 인공 등반물

의 도움 없이 손가락 중지에 온 목숨을 지탱하는 하드프리 스타일로 하자

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그리고 강사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울산바위

철계단 앞에 모였다가 자유등반 스타일로 들어가려다 붙잡혀서 쭉쭉 미끄

러지면서 바위를 탔다. 한 장소에서 무려 8번이나 추락을 먹고. 위에서

확보를 봐 주던 후배가 나중에 팔에 펌핑이 왔다고 투덜댄다. 힘든 기억은

언제나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다가 생생하게 펼쳐 진다.

  완전 초보자의 상태에서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긴장으로 인해 부르르

떠는 팔, 비오듯 쏟아 지는 땀, 그리고 푹 쉰 냄새 나는 옷. 한 달 전의

일들이 아련하다.

 

하산 그 이후.

  설악동에서 버스를 타니 졸음이 밀려온다. 얼마쯤 졸았을까, 속초 시내에

나와 택시 붙잡고 흥정하며 차가 주차되어 있는 용대리 쪽으로 향하였다.

에구, 집에 빨리 가서 전 번에 거의 다 못 본 “쥬라기공원”이나 봐야 겠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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