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의 기록들(97.11.30)

  09:20 출발 --- 10:10 세렴폭포 --- 10:45 사다리병창 입구 ---12:20 비로봉 --- 13:00 정상주, 하산 --- 14:15 점심, 하산 ---15:20 산행 갈림길 --- 15:50 하산


2. 
산을 오르기 전 

  전 날 비가 온 이유로 해서인지 아침의 기분은 삽상하다. 계절에 맞지 않음을 탓할 수도 있었지만 엘리뇨현상 운운하는 세상에서 어찌하랴.우리들의 삶이.
 모인 사람들에 대한 확인. 돼지들 마리 수 세는 것같아
즐겁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아침. 그리고 한편으로는 날씨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호상간의 대화. 다시금 찾는 산이지만 한편으론 경계의 마음이 앞서고 다른 분은 산행에 대한 걱정부터 앞선다. 세월이 가면서 삶의 경륜은 숨길수 없는 것일까 ? 이것저것 생각지 못한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산이라
는 매개체로 인한 만남. 그리고 산이 없었다면 우리의 만남 그자체는 형식적인 것 아니 스쳐 지나가는 무의미한 그 자체가 되어 버리지 않았을까라는 원초적인 생각을 한다.

3.  오름짓 하면서

    과거의 기억은 늘 살아 움직이면서 판단을 어지럽힌다.
   옛날에 아이구
구체적으로 말하자. 내가 대학 2학년인 79년에 우리 과 학생들과 치악산에 오른적이 있었다. 그 이전에 2박3일로 설악산을 오른 적이 있었구. 다들 설악산에선 멀쩡 했었다. 산행이 끝난 후 속초에서 물갈이를 하는 바람에 배탈을 하는 것을 빼 놓구. 설악의 대청봉을 넘었다는 알량한 자존심에 치악산 쯤이야라는 자만심으로 1박 2일의 치악 산행을 했다. 결국은 1박을 하면서 밝혀졌지만 총 인원 12명에 무모하게도 텐트 3인용 1개만 가지고 갔었다. 시점은 5월 초순이었고 우습게 생각했던 가파른 사다리병창의 오름길에 다들 한숨짓기 시작했구. 그럭저럭 정상에까지 올라 갔다. 하산길을 잘못 택해서 정말 없는 길을 만들어 가다가 어쩔수 없이 1박. 그리고 나온 것이 텐트 1동. 그 때 비가 안와서 다행 이었지 마른 나무를 주어다가 때면서 등 시린 밤의 한나절을 보냈던 그해 여름밤 치악산에서의 기억들이 살아 움직인다.

  전 날 내린 비로 인해서 계곡의 물들은 퉁퉁퉁 소리를 내며 흐르고 발걸음마져 한가하다. 세렴폭포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이후 불규칙적으로 허덕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 있슴에 대한 가여운 확인을 한다. 나는 왜 이 힘든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을까 ? 겹겹의 잡생각들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4. 정상에서의 일들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산을 오른다. 가빠오는 숨과 마음만큼이나 따라 주지 못하는 팔다리를 의식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주변의 풍광에 눈을 돌린다. 가까이 다가서는 나무들. 오르면서 고도차이로 인한 얼음들을 보다가 급기야는 눈꽃더미를 보았다. 가쁜 숨에 이어지는 주변의 경광에 짧은 탄성이 어지고 산은 이렇게 많은 것을 감추어 두고 오직 오르는 자에게만 보여 주는 것일까 ?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찍었다. 찍으면서 노출이 30이하로 떨어졌던 것에 대해 내내 불안하다. 분명 흔들렸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11월의 마지막 날인데도 계절은 나이를 속이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상태에 기온마져도 계절을 우롱한다. 겨울일까, 아니 비 내린 봄 날일까 ? 포근한 날씨. 드디어 정상. 석탑 주변을 돌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올렸다는 석탑과 돌더미 속에 스며든 인간의 의지를 다시금 떠올린다.

5.  뒤풀이 하면서

    두부와 막걸리를 먹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것은 과거의 삶들이다. 어렸을 적 미군부대 쓰레기장을 뒤져서 나왔던 씨레이션 속의 커피 봉지. 커피를 어떻게 끓이는 지 몰라서 양푼 가득이 물 넣고 커피를 삶았던 과거의 무지하고 용감했던 일들이 칙칙하게 겹쳐 되살아 온다. 이불 속에 놓여진 술 익는 부글부글 거리는 소리들 속에서 설레이는 가슴. 어머니 몰래 맛 본 술맛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동네 막걸리 집에서 됫술을 받아 오면서 주위를 한 번 훔치면서 맛 본 막걸리의 맛.
 
 추억은 언제나 기억의 저편에서 오늘의 그리움으로 살아서 돌아 온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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