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절 ― 영랑생가에서
 윤식은 30대 초  박용철 등과 함께『시문학』지를 간행한 시인이다.  이른바 대
구, 강진 등의 그 당시 서울에 비하면 촌놈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이 잡지는 여
러 사정으로 인해 불과  3호밖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세칭 "시문학"파가 끼친  시
사상의 의의는 자못 크다.
 대문을 지나 행랑채의 작은  방들이 보이고 벽면에 여기저기 걸려 있는 농기구
등이 눈에 익숙하다. 옛 집을 보면 과거  시절의 일들이 다시금 떠올라 친근하게
만 느껴진다.
 초가 지붕과 대청마루 조금 떨어진 사랑채 사이에 큼지막하게 서 있는 영랑 시
비. 그 많던 모란은 어디에 갔을까 ? 복원시 간혹 지나친 인위성이 눈에 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비를 읽으면서 그의 섬세한 감정과  미의식에 대
한 추구 열의를 엿 볼 수 있다.
 초가 지붕  사이로 한가롭게 쏟아지는 오전의  햇빛. 마루에 앉아서  가곡화 된
그의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을 나직이 읊조린다.

  백련사
 백련사로 향하는 산길을 오르면서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동백나무의 무리
를 본다. 굵은 한참씩은 나이를 먹었을 나무들의 탐스런 자태.
 천태종의 수행 결사.  요세의 중건 등 단편적인  지식을 안고 백련사에 오르다.
멀리 좁은 강진만이 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면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이 있어
가려 했지만 일행도 있고 시간 관계상 포기.

  다산초당
 백련사에서 조금  더 내려오다가 다산초당 들머리인  귤동마을에 차를 주차 했
다. 전 날 월출산의 몸부림 등산으로 인해  초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다들 무겁
다.
 입구 주변의 마디 굵은 대나무 숲. 지천으로 보이는 굵은 동백나무들.
 다산이 사학에 물든 죄로 18년간의  강진 유배 생활 중 10년 간 이곳에서 머무
르면서 후학들의 양성과 자신의 사상을 심화시켰던 곳.  다산의 외가 쪽이 그 지
역에서는 거족이랄 수 있는 해남 윤씨이고 보면 경제가 탄탄해야 사상도 나온다
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다. 복원된 초당과 그 주변의 경관.  다조, 연지로 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든다.  물 한 모금 축이고 서암, 동암,  천일각을 향하면서 강진
만을 바라본다.
 간척 산업으로 인해 변한 포구의 지형. 사람의  키보다 더 커 버린 갈대의 모습
을 보면서 초당을  나선다. 내려오면서 윤종진 묘 앞 동자석의  앙증맞은 모습을
사진에 남겼다. 마을 입구  가게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어렸을 적 우
리가 먹었던 상표 없던 가래떡을 썰어서 튀긴  과자를 사서 먹는다. 맛은 예전과
같지 않고.

  도갑사에서
 강진에서 영암으로 오르면서 목포 쪽의 길을 들어가야 하는데 별 생각 없이 월
남을 거쳐 풀티재를 넘어 영암으로 향한다. 사흘  사이에 여러 번 지나친 길이어
서 인지 단조로움이 앞선다.
 영암에서 도갑사로 향하는  길은 벚나무가 가로수이다. 죽 이어진  벚나무를 보
면서 꽃이 피었을 봄날의 모습에 대해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들어가는 초입의
마을. 정육점에선 소꼬리,  등 뼈 등을 밖으로 전시해 놓고  있었다. 아마도 장날
이라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상술이라 생각을  해 본다. 조그마한 장이 서
있고 장돌뱅이 몇몇만이 한가롭게 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저수지 주변을 빙글  돌아서 조금 더 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앞의 수백
년은 훨씬 넘어 버린 것같은 커다란 고목나무에 시선이 멈춘다.
 도갑사 초입의 해탈문(국보 50호)을 지나면서 사바세계에  찌든 나의 마음도 온
갖 번뇌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 여러  의문을 품는다. 대웅보전에는 선남선
녀의 불신도를  모시고 주지 스님의 설법이  한창이다.  신라 승려  도선에 관한
풍수 이야기, 조선 건국에  대한 이성계, 무학대사의 일화 그리고 현정권 초기의
불교 탄압에 관한 이야기까지 스피커를 통해서 들려 온다.
 사찰 주변에는  유적 발굴 작업 관계로  주변이 어수선하다. 석조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경내 주변을 배회한다. 뒤편의  석가여래좌상을 보고 불당이 나중에
지어진 것임을 유추해 본다.

  왕인박사 유적지. 2박 3일 남도 여행의 종착지.
 황량한 느낌의 잘  조성된 인위적 건물. 널찍한 터에 삼국  시대의 더구나 백제
의 유물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대에 지나간 역사에 대한 서글픔의 재인식인가
?
 스피커에서 울리는 전통  음악. 일대기를 담은 유화를 보면서  남원 광한루에서
본 춘향의 일생을 그린 그림을 떠올린다. 기대에 못 미침.

 기념 가축 사진을 찍고 남도에서의 짧은 여정을 뒤로하고 집으로 떠났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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