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것 같아  쑥스럽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옛날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네. 이미 두터워질대로 두터워진 뱃살을 보면서 감히 꿈 꿀 수 없는 살 빠짐의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의 한 방편이 아닐까 하네. 각설하고  최근에 읽은 시 한 편을 올리네.
  바람맞은 자의 궁상거림이랄까 그렇긴 해두.

 태풍을 위한 연가
                                                               이경교
 우리 흔들릴까 흔들리며 뿌리도 뽑히며  단 한 번만 사랑해볼까 밤새  우리의 꿈을 적시던 저 하얀 선율은 무엇일까 사랑은 흔적  때문에 두려운걸까 선율을 따라가다 불협화음 우리가 잠에서  깨어난 새벽 새벽의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릴지 않는 불협화음을 너는 듣는지 슬픈  마음으로 스위치를 더듬거리나 성냥갑을 더듬는 손끝에 만약 불협화음의 한 소절이 문득 잡혀 있다면 새벽은 송두리째 조각나고 세상이 흔들리고 있는 걸 목격했다면 연인이여 너도 함께 흔들려 줄 수 있는지 내 가슴을 베는 너의 손을 본다 너울의 손 나의 가슴이 성큼 얇아진다 아른거리는 너의 잔영 나는 무섭다 발자국 의 지문 한 잎 내 가슴에 크게 남기고 가는 구나 가고 마는  구나 하얗게 떨던 내가 그 지문 하나 더듬을 무렵 연인이여 문 밖에 서 있는 내가 젖는다 소리도 없이 혼자 흔들린다.

 결국은 시를 읽으면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경교의 경우에서처럼 불협화음이었을까 ? 아아, 그 불협화음의 한 조각이 삶의 조각조각의 편린이었을까 ? 자신의 내면이 흔들리고 있음을 서서히  생각한다. 아,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폴 고갱의 유명한  화제를 뒤로 한 채로 그렇게만 현실에서의 가녀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

 2.
 방태산엘 갔었네. 과거에 보이던 아주머니의 따스한 웃음은  없었네. 보이는 것은 계절을 잊은 때늦은 눈들의 무더기가 삶의 거친 면을 감싸고 있었네. 지지하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삶의 한  습관처럼 그렇게 더덕더덕 붙어 있었네. 이 봄 날에.
 과거에 지나갔던 나의 발자국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생각하며 문득문득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삶의 흔적이란 이렇게 쉽게 지워 지는 것을.
 그리고 오늘 창암산엘 올랐네. 어제의 내리던  봄 눈 빛들은 이미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가깝고도 먼 산을 다시 오르네. 가슴 속에 실재하는  산. 가을 산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계절의 신산함도 있지만 진달래 꽃 무덤 속에서 봄은 오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네.  상대적으로 답답하게 우리가 느꼈던 계절의 실체는 이렇게 수군수군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면서 진달래 꽃 덤불 속에서 봄날의 기쁨을 미리 느끼는 것도 상상 속의 즐거움일까 ?

3.
  에구, 술기운이 오르네. 몇몇 사람들에게라두 이야기를 적어  보내려고 했던 것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슬퍼 해야만 하는 것인지 ?
  커피 스푼처럼 되새김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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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은 사진을 보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지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시금 그 때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방법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이 글은 86년 1월 초 강원도와 경상도의 어름인 고포에서 강릉까지 도보 여행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적인 감상의 기록이다.

  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고포로 향하면서 여러 상념에 빠진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적과 과연 계획대로 저 강원도의 끝인 통일전망대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고포에 내려 배낭을 꾸리고 귀마개에다 마스크를 쓰고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응시하며 발길을 옮긴다. 계절 탓인지 주변의 풍경은 더욱 황량하게 다가서고 첫날의 긴장감으로 인해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원덕을 지나며 지난 날의 회상에 잠긴다. 과거 이곳에서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젊은 시절의 추억이 묻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치는 주변의 경치 하나에도 그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가을 날 가지 끝에 여기저기 매달린 탐스런 감, 주변의 집 담장 너머로 보이던 모과들은 이제 계절의 영향으로 보이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 주변으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작은 웅성임만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호산 해수욕장의 커다란 해송은 바람에 웅웅 낮은 소리를 내고 철 지난 바닷가의 스산함이 함께 한다.

  임원항 주변을 낮게 나는 갈매기 무리. 어렵지 않게 예전에 묵은 적이 있는 여인숙을 찾아간다. 첫 면회 나와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이 술이었다. 그래서 맥주 여러 병을 사들고 가니 부모님이 놀라셨다. 이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마실 수 있느냐고. 호기를 부리며 나는 장담을 했지만 결국은 몇 병 마시지 못하고 이른 취기로 인해 취했던 기억과 다음 날 자식을 두고 마지못해 떠나가시는 부모님의 젖은 눈을 함께 기억한다. 방밖으론 밤바람이 지독하게 문을 두드린다.

  장호항, 용화 해수욕장 주변. 함께 한 오른 편의 바다로는 한 폭의 풍경화가 그려진다. 장호항을 통행하는 작은 배들의 분주한 움직임과는 달리 마음속으론 한편 한가하고 여유롭다. 주변의 풍광이 수려해서 일까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인다. 인접한 용화 해수욕장의 물은 맑아서 바닥의 모래가 환히 보인다. 이곳에서는 해안을 따라 북쪽 금강산으로 향하던 철길과 터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장호를 조금 지난 갈남리의 해신당. 원통하게 죽은 처녀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한 주술적 장치들. 거친 바다에서 풍어를 바라는 어민들의 기원이 이곳에 서려 있다.

  힘겹게 한치 재를 오른다. 오른편으로 늘상 함께 하는 바다와 왼편의 산자락이 죽 늘어 서 있는 재를 넘으며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배낭의 무게마저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죽서루에서 보냈던 한 때를 생각한다. 죽서루 주변의 바위에 붙어 있는 바다 생물의 흔적을 통해 먼 옛날엔 이곳까지 바닷물이 차올라 왔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바로 앞에 위치한 출렁다리 위에서 껑충 뛰면서 다리를 흔들리게 한다. 이내 흔들리는 느낌이 전해져 오고 아래로 흐르는 오십천의 물을 보니 어지럼증을 느낀다.

  북평 샘골(천곡동)에서 보냈던 원시의 여름 날. 자맥질하며 보았던 검푸른 물 속의 세계. 멀리 두타, 청옥산을 바라본다. 여름 내 훌쩍 커버린 나무들은 이제 성장을 멈추고 묵묵히 이 계절과 함께 한다. 시멘트 공장 주변은 흰 먼지만이 가득 내려앉아 있다. 묵호항 부근에서 사 먹어 보았던 고래 고기. 유리컵에 막소주 가득 담아 홀짝 마셔 버리고 우물거리며 씹던 그 고래고기의 맛이 다시금 생각난다.

  묵호 시내를 가다가 경찰 임시 초소 앞에서 우리는 불심검문을 당했다. 그 이유는 배낭 뒤에 꽂고 돌아 다녔던 빨간 깃발 때문이었다. 이 깃발은 눈 올 때를 대비해서 국도 옆에 쌓아 둔 모래 위에 꽂혀진 적사장을 표시하는 깃발이었고, 별다른 생각 없이 이 기를 꽂고 다녔던 것이다. 빨간 깃발을 꽂고 복장이 단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닌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들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행했던 한 분은 경찰 초소 안에서 배낭의 내용물을 모두 꺼내 일일이 확인을 하는 과정을 거쳤고 나는 버티기. 몇 가지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주민등록증 보이고 나니 배낭 확인 없이 그대로 통과. 길을 다시 걸으면서 경직된 사회의 한 단면을 생각하고 마음은 오히려 착잡하다.

  바람이 계속 분다. 겨울철의 시린 기운을 실은 이 바람은 우리의 앞길을 방해한다. 바람으로 인해 눈물마저 찔끔 나오고 귀도 시리고 손은 아예 호주머니 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허리를 숙이며 바람의 저항을 최소로 하며 나가려 하지만 불어오는 칼바람 때문에 바람을 등지고 걸어 보기도 한다. 발도 시리고 해서 잠시 바람 피할 곳을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계속해 불어오고 다시 바람결에 휘날리는 젊은 날의 꿈을 안고 걷는다.

  옥계로 향하는 길은 두 가닥으로 앞에 섰다. 한 쪽은 쭉 뻗은 고속도로였고 다른 쪽은 산중턱을 오르는 비포장의 길. 고속도로는 터널이 뚫려 있어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저 편의 길이 뻔히 보였고 더구나 시간상 1시간도 못 걸릴 것 같았다. 바람 불고 날씨도 추워서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터널을 통과하자고 약속을 하고 도로에 접어들었다가 순찰 중이던 순찰대에 잡혀 쫓겨났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재차 진입했다가 또 잡혔다. 결국은 터덕이면서 흙길을 걷는다. 흙먼지를 폴폴 내면서 트럭이 올라간다. 편리함이 현대사회의 한 특성인가. 점점 더 편리해지는 것이 근대화 혹은 현대화일까. 편리함의 추구로 인해 우리는 추억과 낭만을 점점 더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힘들여 걷는 것보다 차를 타는 것이 훨씬 편한 반면 걷기를 통해 얻어 지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소나무를 지나는 바람소리, 새 소리, 바다의 파도 소리 등이 머리 속에 인식되어 그것은 기억의 저 편에 저장되고 어느 한 때 추억으로 재생되어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올 것이다. 한편으로 무조건적인 편리만을 추구했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산길을 걷는다. 아직도 고속도로 통행에 대한 잡념을 떨치지 못하고 힘들게 걷는다. 인위적이고 퍽퍽하게 다리를 울리는 아스팔트 길보다는 산길이 훨씬 운치가 있어 좋다. 오르막 내리막 길. 인생 길. 우리가 걸었던 길. 가지 말았어야 하는 길. 실재하지 않은 길. 여러 생각을 하면서 옛길을 넘어 간다. 과거 이곳을 다녔을 보부상의 모습을 상상하며 삶이 시작되고 하루의 삶이 마쳐지는 이곳 길에서 그들의 삶을 조용히 반추해 본다.

  명주군 옥계면의 팻말이 보이고 산길을 넘어 걸린 시간이 3시간 반이나 넘었다. 빠른 터널 길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걷는다. 정동진에 오면 군 시절이 생각난다. 부대에서 사격측정이 있어서 자동화 사격장이 있는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부대 내에 자동화 사격장이 없었던 관계로 처음의 사격율은 저조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기합을 받기도 했다. 또한 사격을 잘 하면 포상휴가를 보내 준다는 말에 헛된 욕망을 꿈꾸었던 그 초입의 이등병 시절의 모습이 어슴푸레 떠오르며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흘러나온다. 조그마한 어촌이었던 정동진의 희미한 기억. 이후로 변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동행한 분이 관절염으로 인해 다리의 통증을 호소한다. 계속 진행을 한다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이 되어 결국은 강릉에서 우리의 일정을 접었다. 안인 바닷가의 횟집을 지나 멀리 보이는 대관령. 팽팽했던 긴장감은 이제 해체되어 버리고 우리들의 꿈은 더 나아가고 싶다. 언젠가 다시금 강릉을 기점으로 하여 출발하기로 하고 갈 수 없음에 대한 빛 바랜 노래를 부른다. 잃어버린 기억의 저 편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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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바지를 하나 샀다.
지금은 입어 보고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본다.
다리도 올려 보고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흐른다.
 올 겨울은 따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
오늘 설산을 방황할 것 같은 꿈을 꿀 것 같다.

   jazz on cinemma를 듣는다.
자본주의 냄새와 자유분망의 역동성을 함께 느낀다.
영화를 많이 못 봐서 연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들을 음악이 있고 함께 할 책이 있다는 것은
분명 나도 행복하다고 자위한다.

  신현림의 "희망의 누드"를 읽는다.
각 장면 마다 나오는 사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군데군데의 현란한 수사학적인 기교도 보이긴 하지만
감칠맛 나는 그녀의 글솜씨 또한 다른 어떤 것을 생각나게 한다.
글을 읽으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은
아마 좋은 책일게다.
나도 좋은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인다.
잠재된 욕망이 아직도 생각만으로 존재함을 인식한다.

  날씨는 추워지고 밤은 깊어 간다.
노혜경의 시집 "뜯어먹기 좋은 빵".
김정란의 평을 읽고 볼만한 책인가 했는데,
시를 한 때 전공했던 나도 난해하다.
불가사의의 언어 속을 헤매는 자신을 본다.
서평은 역시 포장 잘 된 질긴 끈이다.

  원성의 "풍경".
잠재된 원성 내면의 모습을 들춰 보기.
어머니에 대한 생각 부분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림에 나타난 동자승의 모습이 스님의 해맑은 눈과 같다.
어머니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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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태산엘 올랐네.

항상 가까이 있었지만 멀게 느껴지던 산을
 

이곳에 온지 1년하고도 수개월이 지난 오늘에 

오르다가 시간이 부족하여 내려왔네.  

현리 이 지역을 감싸고 있는  

푸근하고 넉넉한 산. 

1 시간 여 계속되는 오름짓을 하다보면 

어느새 1,000여 미터를 훌쩍 넘어 버리고

검푸른 혹은 짙은 녹색으로 

형형의 색들로 단장하는  

멀리서 다가오는 봄날의 산. 

 

몇몇 사람들을 만났었지. 

대부분이 이 산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50대 후반의 아저씨와 60이 훌쩍 넘어 버린 아주머니들. 

오늘도 힘든 삶만큼의 무게를 지고 

등이 굽은 눈으로 내려오는  

그들을 보았네. 

나물은 아직 철이 아니고, 

고비나 뜯어서 가지고 온다고 

나도 나물하러 가느냐고 

웃으며 그들은 물었다. 

 

  양말이 얇아서인지 아니면 신발이 잘못돼서 일까 

뒤꿈치가 아파 오더니 쉬면서 보니 

발이 사람 잘못 만나서 홀랑 까졌네. 

가야 할 길은 저렇게나 많은데  

훌훌 털며 다시금 일어선다.

   

폐막사를 지나며 

녹슨 철조망, 주변의 불타다 남은 나뭇조각 

을씨년스런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 잔해 

멀리서 봄의 진행을 알리는 새의 울음. 

봄은 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아무렇게나 뒹구는 과거의  

삶의 잔해들 속에 

내가 있었다. 

그해 봄날.

   

오르다 보니 움막이 있었네. 

비닐로 얼기설기 엮은 

아직은 철이 아니어서인지 

옛 흔적 - 냄비, 페트 소주병, 헌 옷가지, 국사발 등이 

주변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네. 

이곳도 나물을 하는 때가 오면  

이곳까지 쌀 등을 들고 와  

열흘이고 보름이고 기거하면서  

아침, 낮으론 나물 뜯고 

해거름 무렵엔 나물 삶고 

그후 비닐 깔고 말리곤  

걷고 말리고 하는  

봄날 일상의 삶이 시작되겠지. 

 

사진 좀 찍어 보겠다는 생각에 

카메라에다 그 무거운 삼각대까지 

가지고 올라왔는데 

황사 현상 탓인가 날이 흐리다. 

대신 봄꽃의 무더기를 보았다.  

꽃으로 위안을 삼으며  

1,000미터 이상 올라가면서는 

얼레지가 떼를 지어 살고 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앵초, 제비꽃, 벌깨덩굴, 용담, 민들레, 할미꽃, 현호색, 

노오란 동의나물, 뱀딸기, 산괴불주머니, 피나물 등 

꽃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책을 뒤적였다.

 

오히려 봄꽃은 야트막한 곳에 더 많이 무리 지어 있었다.

 

오름 기록 

15:18 (산행 시작 425 미터) - 16:08 (깔닥고개 정상, 855) - 16:45 (폐막사 주변 1,015) - 17:30 (비닐 움막 주변 1,230) - 17:40 (멀리 보이는 방태산 정상을 보며 시간 관계상 하산 결정) - 18:18 (폐막사 주변 1,045) - 18:39(깔닥고개 860) - 19:12 ( 원점 하산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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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계 - 추억제

  어제는 도계에 갔었지요.
옛날 대학 다닐 때 절친한 후배가 있었지요.
도계 출신인 그는 결국 자기가 나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요. 변해 가는 주위의 환경에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후배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후배 집을 가면서 소위 광산촌에서의 생활이 슬며시 떠오릅니다. 과거 저도 태백에서 6 여년간 생활을 했었지요. 초임 교사 시절에.
인생의 막장에서 생활을 하는 광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의 삶은 사치스러운 것이 아닌가하는 자문도 해 봤었지요.
연속되는 탄광사고에 반 아이들 중 몇몇은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있고 그 다친 사유를 묻자 쉽게 허리를 다쳤다는 대답을 듣고 암울해지기까지 했지요.
  처음에 양계장으로 착각을 했던 광원사택.
갑, 을, 병방(갑방 08:00-16:00, 을 16:00-24:00 병 24:00-08:00)의 3교대로 나누어 근무하고 결국은 직업병이라고할 수 있는 규폐병까지  암담했던 그들의 삶을 다시금 느꼈지요.
그러다가 하꼬방같은 사택에서 아파트로 옮아갈 무렵 정부의 석탄합리화 정책이 발표되고 하나 둘씩 사람들은 떠나갔지요. 배워 온 것이라곤 땅속에서의 생활밖에 모르는 그들이었는데 다시금 지천으로 떠돌게 되었지요.
  옛날 우리 동네(태백 철암)에서 가장 현대식 건물이었던 광원APT는 몇 년 전 다시 찾았을 때 흉물로 변해있었지요. 광원 사택을 지나면서 판자집을 보고, 공동 화장실을 보니 옛날 철암에서 보낸 생활이 스멀거리며 떠오릅니다.
  최근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더욱더 힘들어하는 후배를 보고 몇마디 자조의 말을 함께 나누며 술을 마셨지요. 이렇게 서서히 세월은 가는 건가요. 그리고 헛되이 늙어 가는지요.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에 갔을까 ? 

2. 정동진

  정태춘의 신곡 노래 가사가 떠오릅니다.
군인 시절 이곳에 자동화 사격장이 있어서 와서 총쏘고, 박격포 쏘고 하던 곳이었지요. 총 잘못 쏴서 중대장에게 철모로 얻어 터지고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 보던 하늘.
  바닷가.
많은 사람들이 정동진을 찾아 오곤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는 이곳보다는 동해의 호젓한 곳이 더욱 많이 있지요. 얼마전 남근깍기 대회라는 요상한 것을 한 장호항 일대. 그림같은 풍광에다 어촌의 한가로움이 풀풀 밀려 드는 곳이지요. 그리고 삼척의 추암 일대. 추암에서의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보았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지요. 바닷가에서의 낭만은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철조망에 반감이 되지요.
  정동진 제가 생각하기엔 밋밋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로 인해 잃어 버린 인심이 항시 존재하는 곳이지요.

3. 잡생각

  어제 도계 가기전 주문진항에 들러 갓 잡은 꽁치를 샀습니다. 꽁치야 사철을 두고 나는 관계로 가격이 싸더군요. 60마리에다 덤까지 해서 4000원을 주고 샀습니다. 꽁치를 구워 먹으니 역시 생물 맛이 다르더군요.
  컴퓨터가 나오지 않았으면 인간의 삶이 조금은 편안해졌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서버 교육인 관계로 이젠 학교에 출근을 하면 컴퓨터가 밤새 안녕하신지 확인을 해야될 판입니다.
UNIX명령어 어쩌구, 저쩌구. 아, 싫다. 아이구, 머리야.

  지금은 황어철이라고 하는데 낚시나 나갈까.
오늘은 누구를 만날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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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가 말했다. 이번 산행은 막노동 산행이라고.
그러나 우리는 이번의 산행을 근력산행으로 부르고 싶다.

 16일 18시40분에 오색관리소를 우회하여 대청봉으로 향한다.
하늘에서는 간간이 비가 내려 용아장성에 가기 위해 가지고 온 보조자일을 차편으로 보냈다.
그리고 내일은 공룡능선을 타자고 오르면서 이야길 했다.
날씨는 점점 어두워지고 짙은 안개로 인해 앞을  볼 수가 없다. 그 와중에 동행인 헤드렌턴도 없다. 큰  랜턴을 집에다 두고  왔다나. 게다가 김치, 비닐 등등을 미리 준비 안해서 이것 사느라고 출발 시간이  예전보다 늦어 졌다. 오르는 중 힘이 딸리고 해서  저녁 대신 치킨세트(김밥을 사려고 했으나 없었음) 산 것에다 4홉 소주를  나누어 마셨다. 술의 힘을 빌어 오르기로 계획을 바꿨다. 대청봉을 1킬로 앞 둔 지점에서는 힘이  부쳤다. 안개로 인해 앞은 볼 수가 없고 비가  오는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비박을 하기 위해 옛날 대피소 자리에 가보았으나 쓰레기만 가득하고 그래서 중청산장으로 가기로 했다. 24시 10분 도착. 산장 문은 이미 닫혀져 있고. 가엾은 두 중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물 떨어짐을 피해 취사장  쪽에 머리를 맞대고 비박.

 17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차 한잔 먹고 동행인이 잘 알고 있는 소청산장 쪽으로 내려갔다. 아침 밥 짓고 민생고  해결. 날씨는 어제에 비해 환하다. 그래서 용아장성행. 소청산장  아저씨에게 슬링  5m정도에다 몇가지 정보 얻고 출발. 봉정암을 거쳐 용아 입구에 들어선 시각이 8시 5분.  조금 가다 보니 한 아저씨가 온다. 이유를 물으니 가다가 쥐가 나서 온다나. 처음 번부터 벅벅 기고. 오른쪽으로 상단  부분은 구름에 가린 공룡능선이 보이고 왼편으로는 구곡담 계곡이 보인다. 간혹  부는 바람은 더위를 씻어 주고. 아직은 바위가 덜 마른 곳이 군데군데  있어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갔고 급기야는 근육통이 온다. 한 등성이 어기적거리며 넘으면 또 다른 등성이가 마주하고 오랜만에 릿지를 원 없이 해 보았다. 가다가 암릉의 평평한 곳에서 라면 끓여 먹구. 다리에 힘이 점점 들어가서 급기야는 버벅대다가 무릎을 비벼 버렸다. 동행인이가지고 온 대일밴드 붙이고 가다가 개구멍
바위를 만났다. 돌아갈 작정도 아니고 물어 볼 사람도 없고 해서 어기적대다가 슬링으로 배낭을 보내고 해서 어렵게 관문 통과. 햇살은 강렬하다. 오세암이 차차 보이기 시작하고.  가야동 계곡의 물소리가  가까워진 시간이 오후 4시. 휴. 8시간을 용아장성에서 보냈네. 수렴동 대피소에 거의 다와서 다른 팀들이 용아로 오르는 것을 만났다.
 수렴동 대피소에서 동행인과 작별을 하고 나는 버스를 놓칠까봐 부지런히 속보. 17시 40분 정류장. 리라 초등학교 스카웃학생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은 18시 40분에 버스를 탔다.

 용아타면서 느낀 것.
 다시는 85리터 배낭 매고 용아장성에 안간다. 그간 먹은 것이 부실한 표가 나타났다. 팔에 다리에 근육통이 왔다.

 다음 번엔 20리터에다 릿지화를 신고 무섭게 우회 길로 달려 볼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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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날 집안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삼악산엘 갔다 왔다. 마누하님은 서울 출장으로 인해 부재중이었고. 과거에는 이야기만 하면 별 다른 이유 없이 아이들이 따라 왔는데 요새는 커서인지 친구와의 모임, 약속 등을 운운하면서 요리조리  빼려고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한편으로 섭섭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럴 만한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대견스러운 생각을 가진다. 그러나 폭군인 이 아비의 엄명 앞에선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개 끌리듯이 억지로 따라오는 눈치가 역력하다. 급기야는 차안에서 구곡폭포 쪽으로 가자고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조심스레 입을 뗀다. 말인즉 구곡폭포 쪽으로 해서 문배마을을 가자고 하는 건데 삼악산 쪽으로 해선 몇 번을 올랐기 때문에 나름대로 생각에 구곡폭포 쪽이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4학년인 아들놈은 의견 제시는 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고. 그러나 딸의 의견을 묵살하는 몰인정한 아비. 그것도 매일 같이 오르던 의암댐 쪽에다 차를 세우고 상원사  쪽으로 올랐다. 산행의 목적은 가벼운 릿지등반(주로 슬랩)의 맛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는데  그 날 따라 바위가 미끄러워서 모두가 신은 릿지화의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더운 날씨로 인해서 땀은 축축이 옷을 적시고. 결국은 정상에  올랐다. 평상시처럼 다시 의암댐 쪽으로 하산을 할까  하다가 등선폭포 쪽으로 하산.
내려오면서 아이들이 배고프단다. 별다르게 먹은 것도 없이 오후 2시를 훌쩍 넘겨 버려서 뭐 좀 사달라고 한다.  반면 아비의 수중엔 천원짜리 지폐 한 장만이 달랑 남아 있고. 그래서 집에 가서 점심 먹자고 하니 도끼눈 뜨고 바라본다. 할 수 없지. 무전 유죄니. 게다가 등선폭포 입구에서 차가 있는 의암댐 초입까지 40여 분을 걸었다. 집에 와서 짜파게티 사서 아이들이랑 먹었다. 애덜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다음 산행시 가자고 하면 애들의 반응은 어떨까 ? 한편 걱정이 앞선다.

 오늘은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일찍 직장에서  나섰다. 그저 매일 같이 보았던 점봉산에 오르려 함이 주된 목적이었다.  귀둔을 지나 초입에 도착하니 오후 1시. 여름 산의 잡목들이 크게 성장을 했다. 길도 잘 안보이고. 가다가 초입부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길을 다시 갈 수도 없고해서 풀 숲 헤치면서 갔다. 전 번 날 산행했던 백두대간 구간 종주 생각이 막 났다. 반바지 입고 럴럴럴 가다가 도저히 안되어서 긴 바지 입고 올라갔다. 육수 길가에 엄청나게 뿌렸다.(비문임) 팔다리 긁히면서  올라갔다. 전 번 운 악산 갈 때는 반바지 입고 두 잘 갔는데 올라가면서 보니 목적지인 곰배골 쪽이 아니었다. 이미 시간은  가버렸고 계곡을 지나니 1시간이 지났고 다시 능선을 타고 1시간을  올라서 보니 저 멀리로 점봉산  정상이 보인다. 날씨도 흐릿하고 해서 하산.  내려오면서 계곡 물에 몸 좀  담글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꾹 참고 내려 와서 일하시는 분에게 물으니 내가 올라 간 곳은 오작골이란다. 으이구.  길눈이 어두운 자신을 탓하는 수밖에. 기린 시내(현리)에 와서 약국 하는  친구네 집에 들러 박카스  한 병 얻어 마시구. 저녁 때 소주 한 잔 먹자고 약속을 하였다. 집에  들어와서 찬물로 물만 끼얹고 방안에 있으니 땀이 줄줄  흐른다. 집수리에다 에어컨 설치한 모모님이 부럽다. 이어 전화. 집에 선풍기  샀다나. 아이구 내 신세 생각하면 배 아프고 덥다.
  으, 쉰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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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기 전 날의 설레임.

 언제쯤인가 우리들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

  가슴마저 아픈 유월의 하늘을 본다. 그리고 추적이면서 내리는 비.
시작이 두려워서 텐트 칠 엄두도 갖지 못하고 방에서 뒹굴뒹굴.
다음날 아침녘의 깨어 있었던 시간들.
계절의 순환은 이렇게 빨리 시작 되었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조침령 초입부터 들머리를 몰라서 헤메였다.
  전 날 내린 비로 인해 어깨의 높이만큼 성장한 풀들이 성큼 앞  길을 막아 선다.
 가야만 하는 길. 바쁘게 발걸음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바지는 젖어 오르고 있었고 등산화에는 물이 찌걱이고 다행이 바람은 불지 않는다. 얼마쯤이었을까. 대간을 향한 우리의 꿈들의 조각은.
뒤로 멀리했던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젖은  바지를 힘겹게 추스리며 걷는다.

 성큼 커 버린 잡목들의 성장.
몸을 숙이면서 나가도 힘들게만 느껴지는 대간 길.
그저 가야만 하는 의무감이었을까 ?
잡목에 싸여 앞 길은 보이지 않는데.
두 시간 여 걷다 보니 양수발전소 상부댐 공사 현장이 보인다. 한 쪽의 산면을 완전히 깍아 내린 곳에서 차량들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고 신들에게 도전을 한 인간들의 바벨탑에 대한 의지를  생각한다. 좋은 말로 우공이산이라 했던가. 갈지자로 난  산길을 보면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본다.

 우리의 삶은 얼마쯤에서 끝이 날 것인가 ? 내내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타박이면서 걷는 것도 삶을 위한 자신의  존재 확인을 위한 버거운 노력이라고 한편으로 생각을 해 본다.

 북암령에서의 길 찾기.
역시 쉬운 생각은 가벼운 행동을 부른다. 준비의 소홀함을 탓하는 듯 길을 잘못 들어서 계곡 쪽으로 빠지고 말았다. 길이 없음을 알고 늦게서야 깨달은 우리들의 무지함을 인식한다.
 앞이 보이지 않은 이  시대의 황량함. 길라잡이마져도  다른 곳으로 뛰어 드는 시대의 어설픔과 아울러 한 없는 슬픔을 한 편으로 느낀다.

 북암령을 조금 지나서 굶주렸던 곡기를 채우고 다시 발걸음을 향한다.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대한 낯설음의 미묘한 흥분.
단목령을 지나면서 계속적으로 생각을 한다.
우리들의 꿈은 언젠가 이루어 질 것인가를. 그리고 오름길.
아홉시간 이상의 긴 길에서 다시금 만난 오름길.
얼마나 지났을까 ?
유년시절의 붉게 채색되었던 꿈을 생각하며 거친 호흡을 내뱉는다.
계속되는 오름길.
결국은 점봉산 정상에 올랐다.  안개로 인해 주변의 풍광을  볼 수 없었고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표석 옆에 우두커니 앉아 동생을 생각한다.
삶이란 이렇게 버거운 것일까.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고 서둘러 하산.
그러나 어둠은 이미 우리를 앞질러 왔었고 판단마져 흐리게 하는  밤의 시간이 찾아 왔다.
살아 있음에 대한 확인 의식.
아무거나 먹기.

 다시 아침.
전 날에 비해 암릉 지대가 눈 앞에 다가 선다.
가벼운 산 오름.
다가 서는 바위들을 힘겹게 오른다.
얼마쯤 이었을까.
차 소리도 가깝게 들리고 사람들의 모습이 엄청나게 크게 보였던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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