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창 밖으로는 추적이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전일 마신 술로 인해

다시 누웠다.

 

  밤새 울었던 귀뚜라미는

그날 내 방 안으로 들어온 이후로

울음을 멈추어 버렸다.

성장을 다한 것일까?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

밤은 그래서 적막하다.

 

 빗발은 간간이 뿌리고

늘상처럼 집을 나선다.

산중턱에 걸려 있는 안개와

하늘 향한 노란 달맞이 꽃

익어서 떨어지기 시작하는

계절 모르는 개복숭아를

뒤로 하면서

 

덕다리 아래로 본 투명한 물.

한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자신을 향한 원초적인 자문

젖은 머리칼 날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여름 긴 장마가 우리들의 성장을 도왔듯이

이 가을비 또한

찬 바람과 함께 계절의 순환을

알릴 것이고

그리고 또 그렇게

우리는 성장을 하겠지.

Posted by 바람동자
,

  인간의 음성 영역과 비슷하다는

첼로 소리를 들으며,

과연 인간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한다.

첼로의 주저음을 통해

가슴 울림도 한 편으로 느껴 볼 수 있겠고.

 

  그렇게 서로 간을 확인했지요.

첼로와 피아노가 서로간의

문답 형식을 통해 자신의 음역을

지키면서 서로 화합하듯이

유연하고 낭랑하게 울리는 첼로의 소리를 들으며

소리 죽이며 흐르는 물처럼

세상을 살 수는 없을까 ?

 

  되돌아 보기.

윤동주에서처럼

부끄러움은 자신의 지난 삶의 흔적에 대한

지속적인 확인.

거칠 것 많은 세상에서 자신 없는 자의

자기 위안의 도구.

 

가끔씩 보는 하늘은

어느새 저만큼 높아 졌다.

 

우리는 얼마만큼 성장해야 하는 것인지?

 

 

Posted by 바람동자
,

  용화산엘 갔었네.

가을 바람 한 점 푸른

태초의 바위들이 모여 있는

그곳엘 갔었네.

 

  언제나인 것처럼

오름짓하며 흘리는 땀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꾸게 하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숨은 신과 같은 세상의 좁음.

거벽 앞에서 선 자신의 나약함.

 

  나는 보았네.

떨어진 도토리 무리 속에서

시간이 흘러 버렸고

지난 시간이 풍요로웠음을.

 

가을 바람 부는 날엔

나는 머리 속으로 생각하네.

용화산의 켜켜이 쌓여 진 바위 무리들과

겹겹이 겹친 산그림자 보며 하루 비상을 꿈꾸네.

 

Posted by 바람동자
,

  신새벽,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깨어났다.

지나가 버린 밤은 얼마나 가벼운 것일까?

밤 새도록 돌아버린 씨디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계속해서 토해내고

그렇게 또

실눈으로 음악을 듣는 아침 신새벽.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를

한편 느끼면서

하루의 시작.


  신경질적인 정신병에 걸렸다고 하던

라흐마니노프의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1악장의 가슴 두드리는 터치.

밤새 나를 위해 돌아간 씨디

취중의 무의식적인 세계

술 취한 지난 밤에 대한

이른 아침 마음 속의 재구성.

 

성큼 가을이 와 버렸고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에서처럼 반복되는 피아노의 선율 속

강인한 터치를 느끼면서

아, 나도 가을을 타나 보다.


 길을 걸었네.

가끔씩 바람의 흐름은

창문을 두드리며

적막을 깨우며

신새벽 살아있음에 대한 확인.

피아노 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희미한 새벽 빛 .

Posted by 바람동자
,

  내 어린 시절 여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한 씨디 자켓의 사진을 본다.

강렬한 붉은 색 옷을 보며

“빨간 맨드라미 같던 내복”(기형도)을

연상하고 그 해 여름도 함께

그렇게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의 더미들 속에

억눌려 유년시절의 기억은 저 편으로

숨겨져 있다.

4살 때 보았던 용산역의 증기기관차

내뿜는 흰 김 속을 헤치며

밥상을 몸에다 묶고

그렇게 나는 올라왔다.

 

  돌아보면 한껏 가벼운 세상

 

안데스 산맥의 푸르름.

인디오 족의 맑은 눈.

산정 도시 마추피추.

 

  그곳에 가고 싶다.


 

 

                                10여년 전 지리산 종주산행 중 본 능선(사진 스캔)

 

Posted by 바람동자
,

  부시시한 눈으로 깨어나는 일상의 아침.

아침에 부는 바람은 예정과 달라 계절의 순환을 실감한다.

그리곤 한편으로 생각한다.

" 아, 지구가 늙어가고 있구나."를.

 

  밤새 불을 쫓던 나방은 지친 날개를

퍼덕이며 길가에 여기저기 앉아있고

삶이란 언제나 인것처럼 반추질인가?

삽상한 바람은

오는 겨울을 한 편으로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일상처럼

하루를 걷는다.

물빛 푸르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바이올렛빛의 색감은 언제나

환상의 세계로 넘어간다.

 

  어제 밤의 흔적을 보면서

우리는 단지 머리카락 밖에

남기지 못했다는 서글픈

삶의 지난 흔적을 본다.

살아 있음에 대한 흔적.

 

  바이올린 곡을 좋아하는 사람은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아닌 것같다.

내가 좋아하니까.

 
  가끔은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술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시인될 자격도 없다. 나아가 술을 멀리하

는 사람은
인간의 시대 시민의 자격이 없다."라고 고은은 이야기했

다.

  바쿠스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못난 사람의 변명일까?

 

                                         - 브르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Posted by 바람동자
,

  길게 여운을 알리는 혼의 울림처럼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무거움으로 일관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또 다른 지나친 치기로만 그렇게 살아 왔을까?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이고,

아니면 아틀라스의 업보일까?

 

  돌아보기.

느릿한 혼의 울림 속에서.

때론 그렇게 느긋하게 살기.

더러는 생각하면서 주변 사물 보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스승이었던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정신적으로 사랑하면서 고뇌했던

브람스의 우직함을 느끼는 아침.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을 들으며

Posted by 바람동자
,

  토요일 정기 산행이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실망했다.
전번 달 처가 쪽의 모임 관계로 참가를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참가를 하려고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참가  신청자가 없단다. 비로봉이야 과거 상원사를 거쳐서 가본 경험이 두어 번 있지만 다른 쪽의 봉우리는 가보지 못해서 조금은 아쉬웠다고나 할까?
 그러나 어쩔거나, 산은 그대로 있기에 우리네 인간이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그래서 춘천엘 갔더니 막국수 축제를 한다나. 그곳에서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저녁나절 공지천 쪽으로 향했다.  길게 늘어 선 차량.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그곳에는 메밀로 만든 음식, 막국수를 만들기  위한 도구들 그리고 막국수 난장, 닭갈비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저녁나절의 흥청거림을 엿 볼 수 있었다. 한 편의 가설 무대에서는 에어로빅 경연대회를 한다. 굳은 얼굴의 참가자들이 나와 음악에  맞추어 뻗뻗한 몸들을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오후 한 때의 한가로운 일상은 찾을 수 없다.
 몇 회를 거듭된 축제라고 하지만 차분함과  정연함을 찾을 수 없다. 연륜이 작아서 인가 아니면 먹자판 이어서 인가? 여기저기서 먹자판이  벌어지고 갈 곳 없고 평상시 막국수를  좋아하지 않는 자 결국 가족들을  데리고 집 주변으로 후퇴. 닭갈비를 먹으며 토요일 한나절을 되새김.

  삼악산엘 갔었네. 일요일 아침이 무료했기보다는  산행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작용이었네. 화창한 늦여름의 이상한  날씨는 지속되고 울긋불긋 치장한 옷들의 무리에 섞여 오랜만에 춘천 근교의 산을 찾았네.
 지난 번 장마 탓으로 의암 호수변의 물들은 누런 색의 흙탕물  빛을 띠었네. 아, 그리고 또 있네. 바람 탓으로 잎사귀 넓은 떡갈나무들이 그 상처를 내며 곳곳에 넘어져 있었네. 군데군데 떨어진 작은 도토리들. 철 잊은 매미가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산정 가까이  오를수록 서럽게 울어대더군. 오르며 약한 슬랩에서 발을 곧추 세우면서 가보아도 혼자 다녀서인지  영 재미가 없었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그리워졌네.
 흥국사에서 내뱉는 한나절의 독경소리가 산 위롤 오르고 등산  폭포 쪽으로 가며 계곡물의 빠름과 소리를 함께 들었네. 그리고 생각했네. 그 물소리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화려한 1악장을.
 걸었네. 아무 생각 없이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는. 떨어진  밤 들의  가시 잔해들.
점심 무렵의 허기가 밀려 올 때쯤 산행은 끝났네.
오늘 삼악산엘 종종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네.

Posted by 바람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