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나와서 신입생 배반 자료 등 밀린 것 하다가

모짜르트 교향곡 39번의 2악장을 들으면서 잠깐 상념에 빠진다.

 

  열심히 듣고 생각했던 그때의 모습이 눈 앞으로 어른거리고

현재의 내 모습과 겹쳐져 버리고

그때의 모습에서 얼마만큼이나 더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했는지,

그 때의 패기가 지금도 남아 있는지,

오히려 나는 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

닌지
스스로 묻는 저녁 나절.

 잡념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뒤엉킨 실타래가 되어 버린다.

 그려 왜 이렇게 바쁘게 살지 생각을 하다가

다시 모짜르트를 들으며 그것이 매개가 되어

잡념의 나래를 펼치고.

그 때의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지휘자 므라빈스키의 39번은

상큼했었네. 2악장 주선율이 들리고,

아름다움, 정열, 애수어림 이러한 것들이

내 속에 녹아 들어 있음을 느끼네.

 

아.름.다.운.넓.은.마.음.가.지.고.세.상.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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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작가가 인식한 것 중 어떠한 것을 기록하고 확인하는 수단이다. 강운구는 신문사의 사진기자를 거쳐 75년 언론사태로 해직된 이후 가장 한국적 질감의 사진을 남기는 사진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제목에 나타난 것처럼, 세마을의 모습을 찍은 흑백사진이다.
이 세 마을은 강원도 원주군 소초면의 황골, 인제군 북면의 용대리와 전북 장수군 읍의 수분리이다. 대체적으로 사진에 나타난 시기는 1970년대 초 부터 말기까지의 풍경이다. 

  작가는 앞의 글에서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갈등, 혼란, 불화는 바뀜 보다는 급속하게 바뀌는 속도가 야기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군대 명령처럼 하달되는 "새마을 운동"의 영향아래 과거의 것들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버려야만 한다는 논리아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실정에서 보면, 사진은 사진으로서 남아 있는 화석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한 편으로 생각한다.
소위 근대화라는 것을.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지만, 이 땅에서 급작스럽게, 아니 상명하달의 70년대 군대식의 도시화는 전통적인 것마져도 잃어 버리게 만들고 방향성 없는 시대의 삶을 초래해 버렸다. 개화기 시대 이광수류의 사고와 다를 것이 없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그 뿌리가 같음을 느낀다. 

  유교라는 낡은 도덕율에 반기를 든 이광수는 과거의 것은 낡은 것이며, 또한 전면적으로 완전 부정의 대상이며 따라서 이 땅위에 있는 젊은이는 과거의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종족이어야 함을 역설하고 결국 그러한 논리는 창씨개명, 징병강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친일을 했다는 자가당착의 논리쪽으로 연결된다. 

  기억한다.
아침 여섯시면 동회 사무실 확성기를 통해서 잠든 자들을 억지로 깨웠던 "새벽 종이 울렸네..." 하는 거친 노래 가사를.
그리하여 전통의 남향집 가옥들은 어느 날, 찻길을 중심으로 배치되는 기이한 가옥의 방향 구조를 갖게 됐고 초가 걷어 내고 슬레이트 얹고, 그 위에다 붉고 푸른 색의 뼁끼칠 하는 것이 그 시대의 모습이고 꼭해야만 하는 살풍경의 모습이었을까? 

  황골 풍경들,
돌담 위로 널려 있는 겨울의 빨래들.
포대기에 싸여 누군가를 기다리며 흙벽에 서있는 아이들.
처마 끝에 걸려 진 종자용 옥수수, 시레기, 기름병, 대바구니.
생업과 관련된 엿을 고는 광경,
  그리고 그들의 고된 삶의 한 징표인 터지고 갈라진 두 손, 갈라진 손톱.

  용대리,
  깊은 골짜기의 너와집. 주변 집 앞 텃밭의 도라지, 수수대가 있는 풍경.
한 편의 나무를 세우고 묶어서 그네를 타는 아이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기를 등에 업은 어머니의 모습.
아마도 어머니의 다사로운 체온은 아이에게 전달되리라.
토담집 부엌을 통한 음습한 내면 풍경. 서정주의 "자화상"이 연상이 되고 그리고 수분리의 초가들.
벽으로 스며드는 찬바람과 봉창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군불 지피는 매캐한 연기가 어울려 한 편의 옛모습을 재구하여 본다.

  기억은 언제나 체험의 구속을 받지만 그것이 문화적인 함의를 지닐 때는 시공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 

  오히려 사진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넉넉함을 느낀다. 오래된 미래에서 원시의 자급 공동체로서 라다크 마을이 그들의 생활을 유지했던 것처럼.

  잃어 버린 과거의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한 장 한 장의 사진을통해 나도 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작자는 또 이야기 한다. 사진은 슬프다고.
그것은 사진은 언제나 현재를 찍는다지만 어떤 것이나 저장하려고 필름에 영상을 비추는 순간에 과거가 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진은 슬프지 않다. 다만 사진에 화석같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것들이 슬플 따름이다.

  언젠가, "시선"을 냈던 후배에게서 들은 이야기,
양양 피사체가 되었던 그 공간이 엄청난 폭우로 인해 그 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의 것을 찾을 수 없는 도시화된 시대에서 과거의 것을 그리워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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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84년도 6월 말

복직 발령이 난 곳은 태백에 있는 모 중학교

춘천에서 9시 원주행 막차 버스를 타고 원주역에서

서성이다 11시 강릉행 기차에 몸을 싣고

새벽 두 시경 본 황지의 첫인상.

먼 산 너머로는 낮게 별들이 깔려 있었고(나중에 알았다

이것이 광업소 불빛인 줄을) 어둠에 묻혀 도시는 고요했다.

아이들과의 일과는 시작되고

거친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들어간 거친 고원의 도시에서

아이들은 긴팔입고 한여름을 보내고 있었고,

자신은 적응하지 못해 하숙생들과 함께

40여 분 떨어진 황지로 택시를 타고 나가서

굶주린 문화를 해결하곤 했었다.

 

그때 황지의 경기는 석탄산업이 사양화되기 이전이라

흥청망청이 여전했고 우리도 무슨무슨 정이라는 좋은 술집에

가서 술도 먹곤 했었다.

덧없이 가버리는 젊은 날의 시간을 안타까워하면서

 

  시내에 내려와서 술을 마시다가

버스는 이미 끊겨 버리고 기다리던 택시는 오지 않고

새벽 2시가 넘어

차가 없어서 허위적 거리며 산의 중턱을 넘으며(지름길)

숨차오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피내재 정상에서

노래를 불렀지.

“흘러흘러 세월 가면 무엇이 될까. 멀고도 먼 방랑길을 나홀로

가야하나.”

 한 편 그것은 무기력하게 보내는 자신의 감정 토로였을지도 모

르고.

노래 부른 후 담배 한 대 피고

가깝게만 보이는 시내와 꺼져 있는 하숙집 불빛을 멀리 보면서

젊은 시절을 박용철의 싯구처럼 “나도야 간다”라는 심정으로

보냈다.

 

황지에 “무랑루즈”라는 술집이 있었네.

무랑루즈에서 술을 마시고 못추는 춤 추다가

쑈타임이 되었지. 허옇게 분칠한 몇몇의 무희가 나와서

이 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추더군.

그 때 나는 생각했다네.

세상을 정조 잃은 밀랍인형이라고.

음악에 맞추어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무희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왜 그런 생각이 났을까.

같이 갔던 분에게 곡을 물어 보니

그 음악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이었고.

 

그래서 차이코프스키 피협 1번을 들으면

황지의 음습했던 골목길 바람과 젊은 날의 내 방황이

함께 섞여 나오고 그것은 시간과 함께 엉켜져서

추억제를 만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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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9시 20분 시작인데 20여 분 시간을 넘기고 앞부분의 상황 설정도

모른 채 영화를 봐야한다는 의무감으로 그렇게 보았다.

의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른바 빙의 현상을 소재로 한 히가시노 게

이코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비밀"을 보았다.

제목 비밀이 주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죽은 아내의 영혼이 딸의 몸으로 빙의된다는 얘기로 시작이 되고

아빠와 딸의 관계로 혹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괴로운 주인공의 고

뇌.
마지막 장면에서의 반전을 통해 사랑이라는 것이 희생을 통해 완

성되는 것이라는 느낀다.

헤이스케(부)-나오코(처)-모나미(자)

  딸 모나미 역을 한 히로스에 료코의 천진한 눈 빛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들은(10대나 20대 이겠지) 이 영화를 보고 정신적인 황폐

감을 느끼기도 하고 마지막 반전 장면에서 울기도 하고 했다던데


정이 메마른 지적 수준이 떨어져 반전의 의미를 간신히 알아차린 나

무덤덤하고 같이 갔던 사람에게 집에 가서 영화비 6,000원 돌려

달라고 했다.

내 삶이 결코 찌들지는 않았는데

너무 살면서 무덤덤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원래는 "I AM SAM"이 개봉되었다는 정보를 듣고 갔는 데 아니었고

문화의 달에 맞게 러시아 볼쇼이 합창단에다, 오페라의 유령에다 곳

곳에
포스터가 눈에 띄고 추운 날씨에다 알량한 주머니 생각도 한 그

런 날이었다.

 

  인터넷에서 "비밀"에 관한 글을 읽다가 우스운 이야기 한 토막.

  이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 했을 때 가장 적절한 배우 뽑기

가 있었고
여러 배우의 사진이 나왔고, 그 중에 하리수를 추천한 사

람의 글이 있었다.

  마지막 결말의 반전 부분에서 하리수가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이라

고.
" 난 당신의 딸도 부인도 아닌 니 애비다."

  부연하면 딸의 육체를 빌린 아내의 정신은 남편의 괴로움을 덜기

위해 딸인 
모나미 행세를 했었고 결국은 설기현을 닮은 아이와 결혼

을 하게 되고 결혼한
후 딸을 만난 자리에서 딸이 지닌 꽃바구니 안

에서 곰인형(그 안에는 아내에게 준 결혼반지가 들어 있다. 미혼의

딸이 결혼 반지를 낄 수 없으므로 곰인형에다 넣고 항상 지니고 있겠

다고 하였다.)을 보고 또한 결혼한 딸이 턱수염을 쓸어 주는 행위를

통해 주인공은 그동안 아내가 자신을 위해 딸 역할을 했음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지.

한국 영화 "중독"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려나.

예전에 나온 "고스트"가 생각이 나네. 언 체인지드 멜로디 선율이 떠

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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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시내 구경을 한다.

명동거리에는 젊은 사람들로 붐비고,

딸아이가 다니는 학원에서 길거리 작품

전시한다기에 붙잡혀서 그렇게 나갔다.

정밀 묘사에, 조소, 일레스트레이션에 등등

그 중 일본 에니메이션 "센과 치히로..." "토토로"를

그대로 그려낸 기계적인 단순한 그림들로 인해 조금은 식상해 졌지

그것은 단순한 기능일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자신의 생각이 실리지 않아서 일까?

 

  그리고 한 때 시절을 돌이켜 본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

을 좋아했고
중학교 때 올라가선 미술부를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

지 못했다.

미술하는 것에 대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스스로가 포기해버리고.

마치 기형도의 시에서 보면 상장을 받아 들고 오면서

그것이 부모님께 부담이 될까 봐 종이배를 만들어 띄워 보내는 심정

이랄까.
가난한 유년 시절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추억들이 그의 시 편

에는 녹아들어 있다.

빨간 맨드라미같은 누이의 내복이나, 밤하늘의 별들이 튀밥처럼 커

다랗게 보이는 그런 배고픔의 원초적인 경험을 시로 풀어내고

결국은 심야의 한 극장에서 그렇게 그는 세상과 떠났다.

  왜 그가 생각이 났을까?

가난이야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어느 시에서 표현되었지만

가난하고 궁핍했던 어린 시절이 공유되어서 일까?

나도 그때 미술을 계속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됬을까를 생각하면서

머리 속은 온통 지난 과거와 미래의 모습들에 대한 단편적인 상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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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있는 정전형 스피커가 드디어는 고장이 났다.

원인은 습기때문. 내가 집에 계속 있었다면 관리를 했었을터인데

여름철 습기 머금은 눅눅한 날 매일같이 문을 열어 놓은 것이

한 원인이 되어버렸던 것.

그래서 전원을 올리면 스피커의 한 쪽이 틱틱거리는 소리 때문에

급기야는 한 쪽의 전원을 내려 버리고 스피커 하나만 달랑 듣는다.

스테레오 시대에 저 먼 모노의 소리를 듣는다고나 할까.

그래도 한 편으론 듣는다는 생각에 괜찮다.

스테레오 시대에 익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한다.

보다 편리한 것을 추구하려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이라고 말

하기도 그렇다.

 

  옛날의 정취를 담은 여인숙이 현대시설의 호텔보다 더 정겨운 것은

과거의 정취가 그리운 까닭일까?

이미 모든 것들은 반세기 전에 완성이 되어 버렸는데.

1930년대 대작의 영화들과 오디오도 이미 완성되어버렸고

이상의 “날개”에서도 묘사되는 화신(미쓰꼬시)백화점의 에스컬레이

터도
등장을 하고.

빠름의 시대에서 느린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지고

그렇게 우리는 바쁘게만 살아 왔을까?

홍천 외곽도로에서 성산 쪽으로 나있는 말고개에서는

도로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산을 깍으면서 쭉 펴 놓은 길을 보면서

이제 옛길을 거닐던 운치는 점점 사라지는구나를 생각한다.

구불하면서 오르는 옛길의 맛과 주변으로 보이는 풍광들.

가슴 한켠으로 담으면서 그렇게 올랐었지.

그러나 도로가 확장되고 쭉 뻗어난 길에서

옛날의 운치를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이미 말모양 형태의 길이 아닌 인위적인 기형으로

고개 이름마저도 바꿔야 할 판.

 

  정말 그렇게 앞만보고 바쁘게만 살아 왔을까?

한 쪽에서만 소리 나는 스피커를 들으면서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일까?

그리워라, 옛 길이 주는 운치와

그 속에 묻혀 있는 넉넉함을.

 

한 편 모노시대가 그립다.

단순함이 오히려 빛을 발하는 시점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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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 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 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

 

시냇가에 앉아 구두와 양말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文身) 들 !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

                                                            황동규 “탁족(濯足)”

 

  아침 신문을 보다가 2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출된 황동규의 시를 읽는다. 그리고 평이하게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그리고 지난 여름의 삼악산이 생각난다.
이른 아침에 삼악산에 도착했을 때의 시각이 6시를 못미치고 있었고비 온 뒤라서인지 풀빛은 연한 녹색의 반짝임을 숨기고 있었고 늘상처럼 주변 경치 한 번 보고 그렇게 올라갔다. 의암댐 쪽으로 올라가면서 이곳저곳에 설치해 놓은 보조 밧줄을 보면서 무용성을 느끼기도 했고 한 때 상원사 공사할 때 나도 벽돌 석 장인가 날라다 주는 보시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화장실은 급할 때 가보면 언제나 열쇠로 굳게 잠겨 져 있다. 변해 버린 세태를 탓할 수 만도 없다.
  정상에서 잠시 새소리를 듣고 멀리 덕두원 쪽과 중도 방면의 푸른 숲을 보고 흥국사 쪽으로 내려 오면서 올라오는 불경 소리, 물 소리.산은 언제나 물을 머금지 못하고 바로 토해 내는 것인지 ?

  물소리가 귀를 어지럽힐 무렵이면 산행이 어지간히 끝이 나있고 그래서 물가에 앉아 양말 벗고 발에 물을 끼얹고, 하루 시작을 알리는 상념에 빠진다.

  올 여름은 비가 너무 왔어. 주변의 사물들도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을까 등등을 머리 속으로 생각하면서 시린 발을 다시 물 속에다 담그며 팔 다리에 난 여름의 흔적을 본다.
  황동규는 “화끈한 문신”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여름나기의 통과의례 같은 것일까 ? 피부가 약하여 벌레에 물렸다하면 부어올라 여기저기에 상처를 남기고 몸의 곳곳에 남아 있는 이 것이 지난 여름을 보낸 삶의 흔적일까 ? 차라리 흔적이라도 있다는 것에 자기위안이나 삼을 수 밖에. 

  여름 산에 가면 흐르는 계곡물에 몸이라도 던져 계절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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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신문에 난 기사를 읽는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아버지에 관한 짧은 산문을.

그리고 생각한다.

유년 시절의 짙은 회색 기억들.

 

 시간의 더미 어느 구석에 꼭꼭 숨어 버려

유년 시절에 대한 나의 기억은

고통스러운 부분을 담고 있기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움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버리고.

못된 아들은 부모님 댁에

올라가도 인사 정도나 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어렷을 적부터 키워져 온 침묵 덕인가?

나의 성향도 이러한 환경에 영향을

았으리라 생각한다.

내성적인 어머니,

그리고 내성적인 나.

 

  기억의 저 편에서

옛 일들은 즐거움으로

되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틈엔가 나는 보았다.

나이를 드신, 지친 모습의 아버지를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을

고단한 삶의 무게로 인해

등이 굽은 당신의 삶을 생각한다.

다 큰 아들 걱정하시고

여러 문제로

당신의 눈에는 아직도 나는

물가에 나와 있는 어린아이이다.

 

나는 한 편으로 생각한다.

내가 지닌 지독한 에고이즘을.

시간은 영원한 생성자이고

파괴자라지만 나는 언제 부모님께

따뜻한 말이라도

건넬 수 있을까?

 

우중충한 아침 나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메밀 꽃이 눈에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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