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맑은 날
대룡산을 오른다.
발 끝으로 전해지는 푹신한 땅의 감촉과
연한 녹색으로 이어지는 봄날의 빛깔들.
역광에 투명하게 반사되는
녹색의 봄빛이 그리워
아를로 떠난 고흐가 된다.
활공장에서 바람을 타고 날으는 사람을 보면서
나도 훌쩍 몇 발자국의 잰걸음으로 지상을 떠날 수만 있다면
시린 눈으로 그들의 궤적을 쫓는다.
곳곳에 숨어 있는 여러 색의 꽃들.
눈에 띄지 않은 작은 것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숲은 적막하다.
놀이동산으로 또는 공원으로 떠난 아이들은
기쁨만큼이나 커오는 오늘 하루의 행복을 기억하고 있겠지.
훗날, 성장한 뒤
5월의 그 때의 씨줄과 날줄을 맞추며
그날을 기억하겠지.
오후 늦게 찾아 간 의암암장.
봄은 간다는 얘기도 없이 훌쩍하니
앞산의 푸른 녹음만 남겨 논 채로 떠나가 버렸다.
라일락 꽃 피고
흐릿하게 부는 바람사이
베어진 나무 위로 하늘소
더듬이 두리번 거리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천변 풍경
1.
미술관의 한 켠 구석에서
모딜리아니의 "푸른 눈"을 본다.
긴 목선과 비대칭의 푸른 눈.
검은 옷 그리고 어두운 배경.
한참동안이나 작품 앞에 서성거리며
잔 에뷔테른의 짧은 삶을 생각한다.
아침 햇살이 나무가지 위로 다사로이 퍼지고
강변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도시.
따뜻한 봄날 강가에서 느끼는 서정을
3월에 느끼고 싶었다.
햇살가득 머금은 나무아래
강변으로 부는 봄바람.
흐릿하게 아침의 풍경이 다가 온다.
모네에서 피카소까지(필라델피나미술관 전시회에서)
2.
흐릿한 눈 비비면서 책을 읽는다.
예술가들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클래식 명곡을 낳은 사랑이야기>.
나이 63세에 38세의 연하인 유부녀에게 사랑에 빠진 야나체크
이야기를 읽으면서 천사 미카엘이 알아 낸 것처럼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과
그러한 열정이 삶의 동력이 되고
경이적인 창작력을 발휘한 힘이 되고 있음을 생각한다.
말러와 관련된 내용을 읽다가
오스카코코슈카의 <바람의 신부>라는
자신의 내면 심정을 나타낸 그림을 보게된다.
화가 옆에 누운 알마는 눈을 감고 깊고 평온한 잠을 청하지만
남자는 잠을 못이루고 쾡한 눈을 뜨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정열적인 사랑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질없는 것.
알마의 인형을 제작해서 곁에 두었던
그의 한 여자에 대한 집착과 편집증.
고질적인 집착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남녀간 서로의 생각과 사랑이 단절되어 있고
허무하다는 것을 보나르의 그림 <남과 여>를 통해서도 읽는다.
오스카코코슈카 - 바람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