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준비를 하는데 등산객들이 지나가서 물으니 육십령에서 새벽 1시 혹은 1시 30분경에 출발을 했노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당일치기 종주를 하는 사람들로 간편 복장에 최소한의 짐만 배낭에 넣고 움직인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 1시 넘어 비 예보가 있다. 아침 나절 산은 구름에 덮여 흰 옷을 입고 단장 중이다.
잠깐 해가 떠서 날씨가 좋아지는 듯 하더니 가스가 차기시작한다.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능선 위에서 보는 겹겹이 쌓인 산과 너른 평전을 보는 것인데 가스로 인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중봉을 향해 가면서 만난 날개하늘나리.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펴고 우리 일행을 반긴다. 산중 안복(眼福)에 감사하며 내년에도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발길을 옮긴다.
중봉으로 오르는 길 주변에 원추리는 계속 이어지며 우리를 호위하며 노랑 길동무가 된다. 운무는 짙게 혹은 얕게 이는 이른바 곰탕 날씨 덕에 덕유평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십수 년 전 겨울 시간으로 되돌아가 운무 너머의 풍경을 잇는다. 지금도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발걸음 멈추고 다시 뒤돌아 본다.
향적봉으로 가는 길.
주목, 구상나무를 만나며 지나는 기억의 숲을 지나 설천봉 쪽에서 온 다수의 사람들이 보이면서 산은 소란해진다.
과거 2008년도 1월에 영각사를 거쳐 삿갓재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향적봉을 지나 설천봉에서 곤도라를 타고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겨울날 그때 영각사에서 남덕유산을 오르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고 조금 늦게 출발하여 어둠이 깊이 내려앉은 시간에 대피소에 도착했었다.
육구종주의 출발점인 육십령휴게소 고개 표지석 앞에서 증명 사진을 찍으며 산행 중 바람이 불기를 기원한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산은 더위로 인해 숨까지 턱턱 막히는 그야말로 고행의 길이기 때문이다. 종주를 처음 해본다는 두 친구의 발걸음은 가볍다. 육십령을 기점으로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으로 나뉘고 이 길은 백두대간으로 이어진다.
산행 들머리 녹음 속 붉은 색으로 우리를 맞이한 것은 털중나리.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마음만 바빠지고 주욱하니 서봉까지 이어지는 오름길에 몸은 서서히 지쳐간다. 푸른 하늘엔 흰 구름 길게 깔려 저 멀리까지 이어지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오르다 보니 첫번째 봉우리인 할미봉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름길에 위치한 서봉까지 가는 동안 입에서는 단내가 난다. 생각해 보니 이런 긴 오름길로 인한 산행의 어려움으로 덕유산 육구종주가 4대종주에 포함되었으리라 생각을 해본다.
십수 년 전 과거 겨울산행의 기억을 안고 오르는 산.
그때의 기억이 백색이었다면 지금은 짙은 녹색이 더해지고 남덕유산 정상에 올라 좌우를 둘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