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정전형 스피커가 드디어는 고장이 났다.

원인은 습기때문. 내가 집에 계속 있었다면 관리를 했었을터인데

여름철 습기 머금은 눅눅한 날 매일같이 문을 열어 놓은 것이

한 원인이 되어버렸던 것.

그래서 전원을 올리면 스피커의 한 쪽이 틱틱거리는 소리 때문에

급기야는 한 쪽의 전원을 내려 버리고 스피커 하나만 달랑 듣는다.

스테레오 시대에 저 먼 모노의 소리를 듣는다고나 할까.

그래도 한 편으론 듣는다는 생각에 괜찮다.

스테레오 시대에 익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한다.

보다 편리한 것을 추구하려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이라고 말

하기도 그렇다.

 

  옛날의 정취를 담은 여인숙이 현대시설의 호텔보다 더 정겨운 것은

과거의 정취가 그리운 까닭일까?

이미 모든 것들은 반세기 전에 완성이 되어 버렸는데.

1930년대 대작의 영화들과 오디오도 이미 완성되어버렸고

이상의 “날개”에서도 묘사되는 화신(미쓰꼬시)백화점의 에스컬레이

터도
등장을 하고.

빠름의 시대에서 느린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지고

그렇게 우리는 바쁘게만 살아 왔을까?

홍천 외곽도로에서 성산 쪽으로 나있는 말고개에서는

도로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산을 깍으면서 쭉 펴 놓은 길을 보면서

이제 옛길을 거닐던 운치는 점점 사라지는구나를 생각한다.

구불하면서 오르는 옛길의 맛과 주변으로 보이는 풍광들.

가슴 한켠으로 담으면서 그렇게 올랐었지.

그러나 도로가 확장되고 쭉 뻗어난 길에서

옛날의 운치를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이미 말모양 형태의 길이 아닌 인위적인 기형으로

고개 이름마저도 바꿔야 할 판.

 

  정말 그렇게 앞만보고 바쁘게만 살아 왔을까?

한 쪽에서만 소리 나는 스피커를 들으면서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일까?

그리워라, 옛 길이 주는 운치와

그 속에 묻혀 있는 넉넉함을.

 

한 편 모노시대가 그립다.

단순함이 오히려 빛을 발하는 시점에 서서.

 

Posted by 바람동자
,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 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 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

 

시냇가에 앉아 구두와 양말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文身) 들 !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

                                                            황동규 “탁족(濯足)”

 

  아침 신문을 보다가 2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출된 황동규의 시를 읽는다. 그리고 평이하게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그리고 지난 여름의 삼악산이 생각난다.
이른 아침에 삼악산에 도착했을 때의 시각이 6시를 못미치고 있었고비 온 뒤라서인지 풀빛은 연한 녹색의 반짝임을 숨기고 있었고 늘상처럼 주변 경치 한 번 보고 그렇게 올라갔다. 의암댐 쪽으로 올라가면서 이곳저곳에 설치해 놓은 보조 밧줄을 보면서 무용성을 느끼기도 했고 한 때 상원사 공사할 때 나도 벽돌 석 장인가 날라다 주는 보시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화장실은 급할 때 가보면 언제나 열쇠로 굳게 잠겨 져 있다. 변해 버린 세태를 탓할 수 만도 없다.
  정상에서 잠시 새소리를 듣고 멀리 덕두원 쪽과 중도 방면의 푸른 숲을 보고 흥국사 쪽으로 내려 오면서 올라오는 불경 소리, 물 소리.산은 언제나 물을 머금지 못하고 바로 토해 내는 것인지 ?

  물소리가 귀를 어지럽힐 무렵이면 산행이 어지간히 끝이 나있고 그래서 물가에 앉아 양말 벗고 발에 물을 끼얹고, 하루 시작을 알리는 상념에 빠진다.

  올 여름은 비가 너무 왔어. 주변의 사물들도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을까 등등을 머리 속으로 생각하면서 시린 발을 다시 물 속에다 담그며 팔 다리에 난 여름의 흔적을 본다.
  황동규는 “화끈한 문신”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여름나기의 통과의례 같은 것일까 ? 피부가 약하여 벌레에 물렸다하면 부어올라 여기저기에 상처를 남기고 몸의 곳곳에 남아 있는 이 것이 지난 여름을 보낸 삶의 흔적일까 ? 차라리 흔적이라도 있다는 것에 자기위안이나 삼을 수 밖에. 

  여름 산에 가면 흐르는 계곡물에 몸이라도 던져 계절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일이다.

Posted by 바람동자
,

  아침 신문에 난 기사를 읽는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아버지에 관한 짧은 산문을.

그리고 생각한다.

유년 시절의 짙은 회색 기억들.

 

 시간의 더미 어느 구석에 꼭꼭 숨어 버려

유년 시절에 대한 나의 기억은

고통스러운 부분을 담고 있기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움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버리고.

못된 아들은 부모님 댁에

올라가도 인사 정도나 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어렷을 적부터 키워져 온 침묵 덕인가?

나의 성향도 이러한 환경에 영향을

았으리라 생각한다.

내성적인 어머니,

그리고 내성적인 나.

 

  기억의 저 편에서

옛 일들은 즐거움으로

되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어느 틈엔가 나는 보았다.

나이를 드신, 지친 모습의 아버지를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을

고단한 삶의 무게로 인해

등이 굽은 당신의 삶을 생각한다.

다 큰 아들 걱정하시고

여러 문제로

당신의 눈에는 아직도 나는

물가에 나와 있는 어린아이이다.

 

나는 한 편으로 생각한다.

내가 지닌 지독한 에고이즘을.

시간은 영원한 생성자이고

파괴자라지만 나는 언제 부모님께

따뜻한 말이라도

건넬 수 있을까?

 

우중충한 아침 나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메밀 꽃이 눈에 시리다.

 

 

Posted by 바람동자
,

  이른 아침에

창 밖으로는 추적이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전일 마신 술로 인해

다시 누웠다.

 

  밤새 울었던 귀뚜라미는

그날 내 방 안으로 들어온 이후로

울음을 멈추어 버렸다.

성장을 다한 것일까?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

밤은 그래서 적막하다.

 

 빗발은 간간이 뿌리고

늘상처럼 집을 나선다.

산중턱에 걸려 있는 안개와

하늘 향한 노란 달맞이 꽃

익어서 떨어지기 시작하는

계절 모르는 개복숭아를

뒤로 하면서

 

덕다리 아래로 본 투명한 물.

한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자신을 향한 원초적인 자문

젖은 머리칼 날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여름 긴 장마가 우리들의 성장을 도왔듯이

이 가을비 또한

찬 바람과 함께 계절의 순환을

알릴 것이고

그리고 또 그렇게

우리는 성장을 하겠지.

Posted by 바람동자
,

  인간의 음성 영역과 비슷하다는

첼로 소리를 들으며,

과연 인간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한다.

첼로의 주저음을 통해

가슴 울림도 한 편으로 느껴 볼 수 있겠고.

 

  그렇게 서로 간을 확인했지요.

첼로와 피아노가 서로간의

문답 형식을 통해 자신의 음역을

지키면서 서로 화합하듯이

유연하고 낭랑하게 울리는 첼로의 소리를 들으며

소리 죽이며 흐르는 물처럼

세상을 살 수는 없을까 ?

 

  되돌아 보기.

윤동주에서처럼

부끄러움은 자신의 지난 삶의 흔적에 대한

지속적인 확인.

거칠 것 많은 세상에서 자신 없는 자의

자기 위안의 도구.

 

가끔씩 보는 하늘은

어느새 저만큼 높아 졌다.

 

우리는 얼마만큼 성장해야 하는 것인지?

 

 

Posted by 바람동자
,

  용화산엘 갔었네.

가을 바람 한 점 푸른

태초의 바위들이 모여 있는

그곳엘 갔었네.

 

  언제나인 것처럼

오름짓하며 흘리는 땀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꾸게 하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숨은 신과 같은 세상의 좁음.

거벽 앞에서 선 자신의 나약함.

 

  나는 보았네.

떨어진 도토리 무리 속에서

시간이 흘러 버렸고

지난 시간이 풍요로웠음을.

 

가을 바람 부는 날엔

나는 머리 속으로 생각하네.

용화산의 켜켜이 쌓여 진 바위 무리들과

겹겹이 겹친 산그림자 보며 하루 비상을 꿈꾸네.

 

Posted by 바람동자
,

  신새벽,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깨어났다.

지나가 버린 밤은 얼마나 가벼운 것일까?

밤 새도록 돌아버린 씨디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계속해서 토해내고

그렇게 또

실눈으로 음악을 듣는 아침 신새벽.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를

한편 느끼면서

하루의 시작.


  신경질적인 정신병에 걸렸다고 하던

라흐마니노프의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1악장의 가슴 두드리는 터치.

밤새 나를 위해 돌아간 씨디

취중의 무의식적인 세계

술 취한 지난 밤에 대한

이른 아침 마음 속의 재구성.

 

성큼 가을이 와 버렸고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에서처럼 반복되는 피아노의 선율 속

강인한 터치를 느끼면서

아, 나도 가을을 타나 보다.


 길을 걸었네.

가끔씩 바람의 흐름은

창문을 두드리며

적막을 깨우며

신새벽 살아있음에 대한 확인.

피아노 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희미한 새벽 빛 .

Posted by 바람동자
,

  내 어린 시절 여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한 씨디 자켓의 사진을 본다.

강렬한 붉은 색 옷을 보며

“빨간 맨드라미 같던 내복”(기형도)을

연상하고 그 해 여름도 함께

그렇게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의 더미들 속에

억눌려 유년시절의 기억은 저 편으로

숨겨져 있다.

4살 때 보았던 용산역의 증기기관차

내뿜는 흰 김 속을 헤치며

밥상을 몸에다 묶고

그렇게 나는 올라왔다.

 

  돌아보면 한껏 가벼운 세상

 

안데스 산맥의 푸르름.

인디오 족의 맑은 눈.

산정 도시 마추피추.

 

  그곳에 가고 싶다.


 

 

                                10여년 전 지리산 종주산행 중 본 능선(사진 스캔)

 

Posted by 바람동자
,

  부시시한 눈으로 깨어나는 일상의 아침.

아침에 부는 바람은 예정과 달라 계절의 순환을 실감한다.

그리곤 한편으로 생각한다.

" 아, 지구가 늙어가고 있구나."를.

 

  밤새 불을 쫓던 나방은 지친 날개를

퍼덕이며 길가에 여기저기 앉아있고

삶이란 언제나 인것처럼 반추질인가?

삽상한 바람은

오는 겨울을 한 편으로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일상처럼

하루를 걷는다.

물빛 푸르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바이올렛빛의 색감은 언제나

환상의 세계로 넘어간다.

 

  어제 밤의 흔적을 보면서

우리는 단지 머리카락 밖에

남기지 못했다는 서글픈

삶의 지난 흔적을 본다.

살아 있음에 대한 흔적.

 

  바이올린 곡을 좋아하는 사람은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아닌 것같다.

내가 좋아하니까.

 
  가끔은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술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시인될 자격도 없다. 나아가 술을 멀리하

는 사람은
인간의 시대 시민의 자격이 없다."라고 고은은 이야기했

다.

  바쿠스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못난 사람의 변명일까?

 

                                         - 브르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Posted by 바람동자
,

  길게 여운을 알리는 혼의 울림처럼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무거움으로 일관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또 다른 지나친 치기로만 그렇게 살아 왔을까?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이고,

아니면 아틀라스의 업보일까?

 

  돌아보기.

느릿한 혼의 울림 속에서.

때론 그렇게 느긋하게 살기.

더러는 생각하면서 주변 사물 보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스승이었던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정신적으로 사랑하면서 고뇌했던

브람스의 우직함을 느끼는 아침.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을 들으며

Posted by 바람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