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의 기록들(97.11.30)

  09:20 출발 --- 10:10 세렴폭포 --- 10:45 사다리병창 입구 ---12:20 비로봉 --- 13:00 정상주, 하산 --- 14:15 점심, 하산 ---15:20 산행 갈림길 --- 15:50 하산


2. 
산을 오르기 전 

  전 날 비가 온 이유로 해서인지 아침의 기분은 삽상하다. 계절에 맞지 않음을 탓할 수도 있었지만 엘리뇨현상 운운하는 세상에서 어찌하랴.우리들의 삶이.
 모인 사람들에 대한 확인. 돼지들 마리 수 세는 것같아
즐겁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아침. 그리고 한편으로는 날씨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호상간의 대화. 다시금 찾는 산이지만 한편으론 경계의 마음이 앞서고 다른 분은 산행에 대한 걱정부터 앞선다. 세월이 가면서 삶의 경륜은 숨길수 없는 것일까 ? 이것저것 생각지 못한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산이라
는 매개체로 인한 만남. 그리고 산이 없었다면 우리의 만남 그자체는 형식적인 것 아니 스쳐 지나가는 무의미한 그 자체가 되어 버리지 않았을까라는 원초적인 생각을 한다.

3.  오름짓 하면서

    과거의 기억은 늘 살아 움직이면서 판단을 어지럽힌다.
   옛날에 아이구
구체적으로 말하자. 내가 대학 2학년인 79년에 우리 과 학생들과 치악산에 오른적이 있었다. 그 이전에 2박3일로 설악산을 오른 적이 있었구. 다들 설악산에선 멀쩡 했었다. 산행이 끝난 후 속초에서 물갈이를 하는 바람에 배탈을 하는 것을 빼 놓구. 설악의 대청봉을 넘었다는 알량한 자존심에 치악산 쯤이야라는 자만심으로 1박 2일의 치악 산행을 했다. 결국은 1박을 하면서 밝혀졌지만 총 인원 12명에 무모하게도 텐트 3인용 1개만 가지고 갔었다. 시점은 5월 초순이었고 우습게 생각했던 가파른 사다리병창의 오름길에 다들 한숨짓기 시작했구. 그럭저럭 정상에까지 올라 갔다. 하산길을 잘못 택해서 정말 없는 길을 만들어 가다가 어쩔수 없이 1박. 그리고 나온 것이 텐트 1동. 그 때 비가 안와서 다행 이었지 마른 나무를 주어다가 때면서 등 시린 밤의 한나절을 보냈던 그해 여름밤 치악산에서의 기억들이 살아 움직인다.

  전 날 내린 비로 인해서 계곡의 물들은 퉁퉁퉁 소리를 내며 흐르고 발걸음마져 한가하다. 세렴폭포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이후 불규칙적으로 허덕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 있슴에 대한 가여운 확인을 한다. 나는 왜 이 힘든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을까 ? 겹겹의 잡생각들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4. 정상에서의 일들

   일행에서 떨어져 나와 산을 오른다. 가빠오는 숨과 마음만큼이나 따라 주지 못하는 팔다리를 의식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주변의 풍광에 눈을 돌린다. 가까이 다가서는 나무들. 오르면서 고도차이로 인한 얼음들을 보다가 급기야는 눈꽃더미를 보았다. 가쁜 숨에 이어지는 주변의 경광에 짧은 탄성이 어지고 산은 이렇게 많은 것을 감추어 두고 오직 오르는 자에게만 보여 주는 것일까 ?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찍었다. 찍으면서 노출이 30이하로 떨어졌던 것에 대해 내내 불안하다. 분명 흔들렸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11월의 마지막 날인데도 계절은 나이를 속이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상태에 기온마져도 계절을 우롱한다. 겨울일까, 아니 비 내린 봄 날일까 ? 포근한 날씨. 드디어 정상. 석탑 주변을 돌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올렸다는 석탑과 돌더미 속에 스며든 인간의 의지를 다시금 떠올린다.

5.  뒤풀이 하면서

    두부와 막걸리를 먹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것은 과거의 삶들이다. 어렸을 적 미군부대 쓰레기장을 뒤져서 나왔던 씨레이션 속의 커피 봉지. 커피를 어떻게 끓이는 지 몰라서 양푼 가득이 물 넣고 커피를 삶았던 과거의 무지하고 용감했던 일들이 칙칙하게 겹쳐 되살아 온다. 이불 속에 놓여진 술 익는 부글부글 거리는 소리들 속에서 설레이는 가슴. 어머니 몰래 맛 본 술맛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동네 막걸리 집에서 됫술을 받아 오면서 주위를 한 번 훔치면서 맛 본 막걸리의 맛.
 
 추억은 언제나 기억의 저편에서 오늘의 그리움으로 살아서 돌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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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날에

바람의 흔적 2008. 6. 17. 10:39

날씨는 더운데, 그래서 적막하다.

며칠 전 삼악산엘 올라갔다가 죽는 줄 알았다.

더위로 인해서. 땀이 옷에서 뚝뚝뚝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카뮈의 “ 이방인”을 연상한다.

 

요새하는 일이라곤 매일같이 퇴근시 비디오 한 편을 빌려다 보는 것이

일과다. 사흘간 본 목록을 보면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를, 마이크로 코스모스, 초록 물고기이다.

오늘은 뭘 빌려야 하는지 생각 중에 있다.

 

쓸데없는 생각들......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를.

금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우리 시대 공륜의 무서운 힘을 믿는다. 덕분에

공륜이 불가 판정을 내린 작품에 대해 더 찾는지도.

비록 정태춘님 등에 의해 무너지기는 하였지만. 비디오를 보면서 왜 이것이 상영

불가의 판정을 받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닫힌 시대의 주어진 자를 가지고 정해

진 치수만을 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뇌를 인정한다. 내용 면에서는 난해하다.

단순한 저급의 영화로 보기에는. 익명의 닫힌 공간에서의 그들의 탈출구가 과연

성적인 행위밖에는 없었을까를 생각해 보고 주어진 사물의 이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실재하지 않는 삶의 모습들.

 

마이크로 코스모스.

눈높이 학습이란 이야기도 한참 떠돌았었다.

작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촉구하고. 약육강식의 원초적인 논리가 지배

하는 사회의 삶. 사슴벌레의 삶에 대한 확인의 과정은 치열하다. 서로 부딪히면서

사는 격한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

원시시대의 인간이 가졌던 원초적인, 본능적인 삶을 꿈꾼다.

 

초록물고기.

한석규가 나오는 영화는 언제나 밋밋하다.

배우의 특성상 그렇기도 하지만. 정확한 표준 발음을 구사하는 이 시대의

연약한 표준 인간들.

삶의 전개 과정은 다소 도식적이다. 바닥의 불구적인 삶 들.

빛 바랜 사진이 가져다주는 아주 묵은 추억의 더미들.

시간의 창조성과 함께 그것은 흘러가고 새 의미를 언제 얻을 것인가 ?

 

에구, 한 5일간 부모님댁엘 안 갔더니

어제는 전화가 왔다. 밥 제대로 먹고 있는지. 섭섭해하시는 목소리가

들린다. 급기야는 오늘아침 7시에 오셔서 밥을 차려 주고 집안을 둘러

보신다. 나이 40이 가까운 아들을 두고 어머님의 눈에는 아직도 코흘리개

적의 아들이다.

밤새 마신 술로 인해서 머리가 아프다.

                                                            1997. 0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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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나절 ― 영랑생가에서
 윤식은 30대 초  박용철 등과 함께『시문학』지를 간행한 시인이다.  이른바 대
구, 강진 등의 그 당시 서울에 비하면 촌놈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이 잡지는 여
러 사정으로 인해 불과  3호밖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세칭 "시문학"파가 끼친  시
사상의 의의는 자못 크다.
 대문을 지나 행랑채의 작은  방들이 보이고 벽면에 여기저기 걸려 있는 농기구
등이 눈에 익숙하다. 옛 집을 보면 과거  시절의 일들이 다시금 떠올라 친근하게
만 느껴진다.
 초가 지붕과 대청마루 조금 떨어진 사랑채 사이에 큼지막하게 서 있는 영랑 시
비. 그 많던 모란은 어디에 갔을까 ? 복원시 간혹 지나친 인위성이 눈에 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비를 읽으면서 그의 섬세한 감정과  미의식에 대
한 추구 열의를 엿 볼 수 있다.
 초가 지붕  사이로 한가롭게 쏟아지는 오전의  햇빛. 마루에 앉아서  가곡화 된
그의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을 나직이 읊조린다.

  백련사
 백련사로 향하는 산길을 오르면서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동백나무의 무리
를 본다. 굵은 한참씩은 나이를 먹었을 나무들의 탐스런 자태.
 천태종의 수행 결사.  요세의 중건 등 단편적인  지식을 안고 백련사에 오르다.
멀리 좁은 강진만이 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면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이 있어
가려 했지만 일행도 있고 시간 관계상 포기.

  다산초당
 백련사에서 조금  더 내려오다가 다산초당 들머리인  귤동마을에 차를 주차 했
다. 전 날 월출산의 몸부림 등산으로 인해  초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다들 무겁
다.
 입구 주변의 마디 굵은 대나무 숲. 지천으로 보이는 굵은 동백나무들.
 다산이 사학에 물든 죄로 18년간의  강진 유배 생활 중 10년 간 이곳에서 머무
르면서 후학들의 양성과 자신의 사상을 심화시켰던 곳.  다산의 외가 쪽이 그 지
역에서는 거족이랄 수 있는 해남 윤씨이고 보면 경제가 탄탄해야 사상도 나온다
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다. 복원된 초당과 그 주변의 경관.  다조, 연지로 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든다.  물 한 모금 축이고 서암, 동암,  천일각을 향하면서 강진
만을 바라본다.
 간척 산업으로 인해 변한 포구의 지형. 사람의  키보다 더 커 버린 갈대의 모습
을 보면서 초당을  나선다. 내려오면서 윤종진 묘 앞 동자석의  앙증맞은 모습을
사진에 남겼다. 마을 입구  가게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어렸을 적 우
리가 먹었던 상표 없던 가래떡을 썰어서 튀긴  과자를 사서 먹는다. 맛은 예전과
같지 않고.

  도갑사에서
 강진에서 영암으로 오르면서 목포 쪽의 길을 들어가야 하는데 별 생각 없이 월
남을 거쳐 풀티재를 넘어 영암으로 향한다. 사흘  사이에 여러 번 지나친 길이어
서 인지 단조로움이 앞선다.
 영암에서 도갑사로 향하는  길은 벚나무가 가로수이다. 죽 이어진  벚나무를 보
면서 꽃이 피었을 봄날의 모습에 대해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들어가는 초입의
마을. 정육점에선 소꼬리,  등 뼈 등을 밖으로 전시해 놓고  있었다. 아마도 장날
이라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상술이라 생각을  해 본다. 조그마한 장이 서
있고 장돌뱅이 몇몇만이 한가롭게 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저수지 주변을 빙글  돌아서 조금 더 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앞의 수백
년은 훨씬 넘어 버린 것같은 커다란 고목나무에 시선이 멈춘다.
 도갑사 초입의 해탈문(국보 50호)을 지나면서 사바세계에  찌든 나의 마음도 온
갖 번뇌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 여러  의문을 품는다. 대웅보전에는 선남선
녀의 불신도를  모시고 주지 스님의 설법이  한창이다.  신라 승려  도선에 관한
풍수 이야기, 조선 건국에  대한 이성계, 무학대사의 일화 그리고 현정권 초기의
불교 탄압에 관한 이야기까지 스피커를 통해서 들려 온다.
 사찰 주변에는  유적 발굴 작업 관계로  주변이 어수선하다. 석조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경내 주변을 배회한다. 뒤편의  석가여래좌상을 보고 불당이 나중에
지어진 것임을 유추해 본다.

  왕인박사 유적지. 2박 3일 남도 여행의 종착지.
 황량한 느낌의 잘  조성된 인위적 건물. 널찍한 터에 삼국  시대의 더구나 백제
의 유물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대에 지나간 역사에 대한 서글픔의 재인식인가
?
 스피커에서 울리는 전통  음악. 일대기를 담은 유화를 보면서  남원 광한루에서
본 춘향의 일생을 그린 그림을 떠올린다. 기대에 못 미침.

 기념 가축 사진을 찍고 남도에서의 짧은 여정을 뒤로하고 집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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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보길도 - 땅끝(전망대) -대흥사 - 월출산(천황봉) - 온천욕 - 강진

 배시간에  대기 위해 아침부터 몸을  뒤척인다. 밤새  불던 바람은  이제
지쳤는지 잠잠  하기만 하다.  어제 밤중에 도착했던 예송리의   해변가를
아침에 나가 볼  요량이었으나 날은 어둡기만 하다.  그래서 포기하고  주
섬주섬 짐을 싸서 선창으로 나간다.
 아침나절부터 선창은 완도로, 노화도로, 땅끝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하
고 다들 섬에서 나온  사람과는 다르게 말쑥하다. 여객선에 오르니 바닥에 
담요가 깔려있지 않은 관계로 엉덩이가 차다.  모자를 깔고 앉아서 멍하니
텔레비를 본다. 전압과 전파 관계로 화면은  종종 일그러지고 그래도 사람
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무 말 없이 보고 있다. 선실 밖으로 나가니 아
침바람이 맵다. 멀어지는 주변의 섬들. 언제 다시 올 것인가 ?
 토말에 도착하여 주위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른다. 바다의 색이 탁하다. 비
앞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후 가고파"라도 부르려고  했지만 배가 등가죽에 
붙은 관계로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다  본 토말  선창의
모습이 아침 햇살과 함께 한가롭다. 아침을 먹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았
으나 결국은 포기를  하고 대둔사(대흥사)로 향한다.

  대둔사에서

 산문에서 경내로 들어  가는 긴 길은 운치가 있어서  좋다.  주변의 가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일주문을  지나 입구에서
본 부도밭. 많은 부도들을 통해서 이 절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한편으로
생각한다. 서산대사의 부도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살핀다. 아,  찾았다. 역
시 다른 부도보다는 수려한 외형을 하고 있다.
 사찰의 남원 쪽에 도착.  가허루 앞쪽으로 공사관계로  자재를 쌓아 놓은
것이 어지럽다. 북원의 대웅보전 앞에서  현판 글씨를 보고 아침  예불 시
간인 관계로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에 생동감을 느낀다. 오랜만에 들어 보
는 불경소리. 천불전 내의  옥돌로 만든 천불상을  보고 나의 소원도 빌어
볼거나.
 아침 시간이어서 인지 두륜산(672) 산행을  위한  등산객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띤다. 유명한 사찰치고 주변의 산이 수려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이 오늘의 깨달음일까 ?
 부자 절을 뒤로하고 터덜터덜  내려오다  유선장 앞을  지나간다. 여관의
그 흰둥이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을 하다가 답사기 3편의 후기 내용이 생각
나서 여관의 거죽만 둘러보았다.  방 앞에 붙은  각각의  이름이나 액자에
걸려진 그림 등이 옛 냄새가 많이 풍긴다.

  월출산을 오르며

 ㅇ 매표소- 천황사 - 구름다리 - 매봉 - 사자봉 - 통천문 - 천황봉 -(하
산)
      바람폭포 - 천황사 - 매표소
      통천문 - 경포대 - 야영장

 전 날 본 월출산의 모습에  다들 긴장하고  있는 것일까 ? 하긴 같이 간
대부분의 사람이 1 년에 두세 번 정도 산행을 하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관
계로 많은 신경이 쓰였다. 아침을 늦게  먹은  관계로 점심은 산에서 먹기
로 하고  라면 좀 사고 물병에 물을 넣고 준비를 마치니 오후 1시가  가까
워 온다.
 매표소에서 천황사까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다. 곰곰이 생각하니 오늘
은 일요일. 가족과 같이 아이의 손을  잡아끄는  가장의 모습을 보니 한없
이 부러워진다. 어떤 사람은 양념통닭  들고 올라가고. 가지각색이다. 그늘
진 곳에는 눈들이 보이고 같이 간 일행 중 한 분은 아예  아이젠을 착용하
고 오른다.
 구름다리 도착. 건너편 바위 봉우리의 모습을 보고 얼마큼 올라 왔는가를
확인한다.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되어 있는 농토들. 그리고 붉은  색의 향토
가 고향주변의 내음을 환기시켜 준다. 구름다리 위에서 다리 힘이 점점 빠
져 가고 있음과 함께 털썩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100여 미터 이상
이 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다시 앞으로 향하고.
 아이구, 다시 다리를 건너서 바람골로 향해야 하는데 별생각이 없이 가다
만난 하산 중인 등산객에게 물으니 이 쪽으로 오르면 빙 돈데 나. 이 설명
을 듣자 일행의 일부는 벌써 내려가자고 하고. 우여곡절 끝에 수많은 철계
단을 넘어 천황봉에 올랐다.
 시간은 4시를 향하고 있었고 서둘러 준비해 간 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정상에서의 잠깐 동안의 조망. 먼 곳에 보이는 구정봉의 봉우리에 내리 비
치는 햇살이 주변의 풍광과 어울려 따사롭다.  올라오면서 이렇게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는 처음이다.  정상에서도 바람은 정지해  있고. 서둘러 하산.  
 다들 이런 산행은(아마 상당히 고됐나 보다.) 처음해 보았다면서  내려 가
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을  바람골로 하산하게 하여
차를 경포대 쪽으로 가져오게 하였고 나는 나이 든 분을 따라서 내려 가기
수월하다는 경포대 쪽으로 갔다. 계곡 길의 내리막. 지리하다. 주변의 경치
를 볼 수 없다.
 하산. 대기한 차에 올라 월출산 관광 호텔로 향한다. 단지  온천욕하기 위
해서. 목욕 후 곰곰이 생각하니 목욕요금이 6,000원이 너무 비싸다. 시설면
이나 수질도 좋은 상태가 아닌데  4,000원 정도의 요금이면(설악산 호텔의
온천욕 요금) 적당할 것이라고 다들 이구 동성으로 말한다.
  강진으로 내려가면서 "해태식당"에  전화를 했다.  영암에서 출발시간이
늦은 관계로(20:30 이후에는 손님을 받지 않음) 가까스로 8시20분 경에  도
착하였다. 한정식 1인분 15,000원  2인분35,000. 5년 전에 이곳에  들렀다는
일행 중 한 분의 말에 의하면 그 땐 8,000원. 고물가 시대를 다시금 절감한
다.
 알이 굵은 꼬막(이렇게 굵은 것은 처음 본다), 대하, 가오리,  굴비 그리고
육회 등에 이르기까지 20여 종에 가까운 찬이 나오고 술과 함께 둘째 날도
지나간다. 먹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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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여정: 춘천 - 광주 - 무위사 - 녹우당 - 땅끝 - 보길도
 
  떠나기 전 날 나는 당신에 대해 긴 꿈을 꾼다.
 떠나는 자의 들뜬 마음. 일상 생활에서의 탈출. 잘 다녀오라는 아내의 말에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전원 7명이 차량 3대에 나누어 타고 춘천을 출발하
였다. 가다가 졸리면 자고 깨다 하니 차는 벌써 광주를 지나 나주에 와 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

  무위사에서(소재: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무위사로 가는 길에 본 월출산의 위용이  일행의 마음을 억누른다. 월출산 정도
야 가볍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일까 ? 그도 그
럴 것이 호남의 평야에 우뚝  솟은 바위산의 모습을 보니 내일의 산행이 슬금슬
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세상의 일들이 힘이 들 때, 이곳 무위사에 오라.
절의 이름과도 같이 소박함 속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단청을 다시금 칠하지 않은 자유로움.
화려함 자체를 멀리한 극락보전을 보면서 풍상의 세월을 이겨 낸 우리네 부모님
의 모습을 읽는다.
 퇴색한 나무 기둥의 빛.
바람은 풍경소리를 통하여 그 흐름을 알리고 한가로움 속에서 느끼는 마음의
평화와 정겨운 풍경 소리.
바람마저도 정지해 가는 이곳에서의 시간.
 벽화보존각에 따로 모셔져 있는 불화들. 둥근 인자한 벽화의 상호.
가식이 없는 따뜻한 순수함 ― 무위사.

  녹우당(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해남 윤씨의 종가로서 전남의 민가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집이라고 한다.
입구에 서 있는 가지가 앙상한 500년 가량 묵은 은행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지탱
하면서 힘들게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윤선도의  후손이 살림을 하고 있기에 녹우
당 내부는 들어가질 못하고 발걸음은 인접한 유물 전시관을 향한다.
 윤선도와 증손인  윤두서의 작품을 모았고, 몇  년 전에 도둑이  들어와서 많은
자료를 분실했다고 한다.  윤선도가 직접 쓴 가첩을 보고 윤두서의  자화상을 본
다. 가느다란 털끝  하나 하나에도 신경을 써서 표현하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
인다. 18여 명의  첩자를 시켜 그들로부터 수집된 내용을 토대로  하여 그렸다는
일본여도를 보면서 사실성 여부에 혼란을 느꼈다.
 전시된 많은 자료들.
일반 인문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음양, 의학 등의 선인들의  넓은 학문에 대한
욕구에 경외감을 느낀다.
 명문 거족의 집안에  태어난 윤선도. 생의 대부분을 귀양으로  일관하지만 풍류
를 잃지 않고 산 문인. 결국은 경제적인 바탕이  되어야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서글픈 결론을 도출해 낸다.

 첫날의 대흥사 관람 계획을  내일로 미루고 보길도로 가기 위해 부랴부랴 땅끝
으로 향한다. 군데군데에서 언뜻 보이는 바다와  섬들이 살갑게 다가선다. 아, 남
해에 내려온 지가 언제였을까를 머리 속으로 떠올리며 시선은 바다를 향한다.
 땅끝 선착장 도착.
 더 가고 싶은데  갈 수는 없고 우리네 땅덩어리는  왜 이렇게 좁을까 ? 비릿한
갯내음과 함께 바람이 찾아  든다. 지프 차 한 대를 태우기로  결정을 보았고 배
타기 전 구멍가게에서 보해골드랑 골뱅이, 꼬막 통조림을 몇 개 샀다.
 배의 출발과 함께 술이 몇  순배 돌았고 일몰의 시간이 되어 밖에 나가 보았으
나 노을 빛이 흐릿하다.
 1시간 후 보길도에 도착.
 7명이 차에 꾸겨 타고 세연정으로 이동.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세연정에서 고산의  삶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본
다. 자신이 지은  어부사시사를 연주하게 하고 다른 쪽에서는 무희들이  춤을 추
고 그것을 감상하며  지내는 나날의 일상들. 이러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
나 많은 섬사람들이 동원됐을까 등등의 잡생각이  앞선다. 세연정 주변에 인접한
보길초등학교 담장이 눈에  거슬린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져 가고 있고  다시 차
를 타고 예송리  해수욕장 쪽으로 간다. 해수욕장에서 검고 둥근  돌을 찾겠다고
했지만 날이 이미 어두워져 버려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예송리 해수욕장 앞 한옥 집에 민박하기로 정하고 일부는 포구 쪽으로 회를 사
러 나가고 방이 더워지기를  기다리며 주인 집 방에 들어 가  텔레비를 본다. 과
년한 딸들이 손님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누워서 텔레비를 본다.
 밤은 깊어 가고 취기는 오르고, 문 밖으로 들리는 지천의 바람소리.
상록수 방풍림 사이를 지나는 가여운 울음소리.
오랜만에 밤새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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