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 2시에 일어나 계획했던 산행이 결국은 우천관계로 미뤄졌다.날은 꿈지럭 거리고, 비오고 흐린 일요일 아침.
어디로 갈까를 생각하다가 사진에서 몇 번 본적이 있는 양떼목장으로 방향을 정하고, 카메라에 씨디에 주전부리할 것에다가 짐을 챙겨서 나온다.
 영동고속도로상에서 본 하늘 역시 흐리다. 횡계로 빠져 나와 읍내에 들러 우산  하나를 사서 양떼 목장으로 향한다. 차안의 씨디에선 엠마 샤플린이 소프라노의 매혹적 고음을 죽어라고 토해낸다. 밋밋한 생활 속 뭔가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법. 차는 어느새 옛대관령휴게소에 도착을 하고, 풍력발전기 몇 개가 눈에 띤다.
 대관령의 시린 바람이 올라온다. 겨울날 선자령을 갔을 때 만났던 히드클리프의 바람. 눈물 질질질 흘리게 한 지독한 바람. 옛일은 바람 속으로 날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다.
 양치기 초소에서 증명사진 찍고,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더러는 모델같은 사람 데려와 찍기도 하고, 야트막한 동산 너머 멀리 용평이 보이고. 또 비 내려 사람들 뿔뿔이 흩어지고, 처마에 기대 멀리 양들 방목한 곳을 바라본다. 또 비 내려 사람들 뿔뿔이 흩어지고, 처마에 기대 멀리 양들 방목한 곳을 바라본다.한 구비 동산을 넘어 양들 방목한 곳을 가니 양들 특유의 내음이 난다. 에구, 이 넘의 양들은 왜이리 지저분 하다냐를 외치고. 입장료를 대신한 건초를 들고 먹는 것에 눈 먼 양들을 좀찍으려고 하니 양들이 영 포즈를 잡아주지 않는다. 한편에서 양들이 머리를 처 박고 풀만 뜯어 먹고 있기에 포즈가 안 나온다고양 주변에다 돌을 던지는 사진을 찍는 애덜도 봤다.
 내려와서 보니, 옛날 휴게소 주변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이 산악회에서 산행을 온 사람들이고, 그들을 만나면 언제나 정겨운 것이 동병상련의 정인가?
                                                              - 양떼목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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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토요일 아침 애 학교 데려다 주고 나오니 무료하다. 전 날 마신
술로 머리는 욱신하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다구경.

마누하님 보고 가자니 좋다하고 해서 출발.

소사 휴게소에 내리니 동네의 한기가 흐르고, 다시 출발한다.

 대관령 새로 뻥 뚤린 고속도로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인다.

삼척 쪽으로 방향을 잡고 동해휴게소서 후배한테 전화를 걸고

점심 정라항 바다 식당서 만나 곰치국을 먹는다.

오랜만에 후배와의 만남이라 자연스레 소주2병 비우고,

속에서 짜릿해 오는 것이 낮술이 주는 즐거움이겠지.

환선굴로 향한다. 모처럼 운전에서 벗어난 나는

나른한 오후의 햇살로 무척이나 졸립다.


 2.

 참, 환선굴 가는 길도 멀다.

연일 계속되는 술로 인해 체력도 떨어져서 인지

동굴 입구로 올라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에구, 옛날 동굴 엑스폰가 뭔가를 했을 때 이 노인들이

우찌 여기 올라 왔을까를 생각하니

역시 여행은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해야한다는 짧은 깨우침.

 환선굴 넓기도 하다.

비쳐진 불빛사이로 형형색색의 물들이 번져 나고 있었고

세파를 잊고 이곳에서 살면 얼마나 적막할까를 생각한다.

아마 암흑과 고요 속에 물소리만이 들리겠지.

스트로보 없이 잘 안 나오는 카메라를 연실 눌러 대고

(음주 후의 손떨림에 의해서 역시나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다.

스트로보를 친다는 것 자체가 동굴 훼손 행위라는 걸 생각하고

참았음) 둔탁한 계단소리만이 사람들의 움직임을 알리고 있었다.


 3.

 에구, 전 날 술을 얼마나 도 마신거여?

아침에 일어나 어제 점심을 먹었던 그 식당에서 곰치국을 먹으면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의 일정은 원덕 해신당과 추암해수욕장.

삼척에서 한치를 넘어 원덕을 내려가다가 언덕에서 용화해수욕장

과 장호항을
보았다. 모두가 낯이 익은 풍경들이다.

어지러운 물의 움직임에 과거 군생활의 기억이 떠 오른다.

 해신당. 먼저 온 아줌마들 일행의 기묘한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과거엔 바닷가 사당 하나만 달랑 있었는데

엑스포 한다고 남근도 깍고 여기 저기서 한편 조악하게

복제된 여러 전시물들이 눈에 띤다.

 삼척 추암.

일출사진의 명소. 겨울연가 사진이 걸려 있고 한 떼의 관광객들

우르르 몰려 든다. 오징어 한 마리 사서 질겅거리며

추암이 위치한 근처의 동산에 올라 사진 몇 장 찍고

상승기류를 타고 가뿐하게 나는 갈매기의 모습도 보고

멀리론 커다란 배도 보고 그리고 주변에 있는 조각공원을 한 바

퀴 돌았다.
현대 추상조각이라서 무지랑이인 내가 알 수 있는 것

은 없다.

 햇살 따스하게 내리쬔다.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었던

행복한 이틀.

일요일 오후시간은 그렇게 흘러 가고 있었다.

                                                                                         0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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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은 사진을 보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지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시금 그 때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방법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이 글은 86년 1월 초 강원도와 경상도의 어름인 고포에서 강릉까지 도보 여행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적인 감상의 기록이다.

  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고포로 향하면서 여러 상념에 빠진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적과 과연 계획대로 저 강원도의 끝인 통일전망대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고포에 내려 배낭을 꾸리고 귀마개에다 마스크를 쓰고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응시하며 발길을 옮긴다. 계절 탓인지 주변의 풍경은 더욱 황량하게 다가서고 첫날의 긴장감으로 인해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원덕을 지나며 지난 날의 회상에 잠긴다. 과거 이곳에서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젊은 시절의 추억이 묻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치는 주변의 경치 하나에도 그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가을 날 가지 끝에 여기저기 매달린 탐스런 감, 주변의 집 담장 너머로 보이던 모과들은 이제 계절의 영향으로 보이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 주변으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작은 웅성임만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호산 해수욕장의 커다란 해송은 바람에 웅웅 낮은 소리를 내고 철 지난 바닷가의 스산함이 함께 한다.

  임원항 주변을 낮게 나는 갈매기 무리. 어렵지 않게 예전에 묵은 적이 있는 여인숙을 찾아간다. 첫 면회 나와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이 술이었다. 그래서 맥주 여러 병을 사들고 가니 부모님이 놀라셨다. 이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마실 수 있느냐고. 호기를 부리며 나는 장담을 했지만 결국은 몇 병 마시지 못하고 이른 취기로 인해 취했던 기억과 다음 날 자식을 두고 마지못해 떠나가시는 부모님의 젖은 눈을 함께 기억한다. 방밖으론 밤바람이 지독하게 문을 두드린다.

  장호항, 용화 해수욕장 주변. 함께 한 오른 편의 바다로는 한 폭의 풍경화가 그려진다. 장호항을 통행하는 작은 배들의 분주한 움직임과는 달리 마음속으론 한편 한가하고 여유롭다. 주변의 풍광이 수려해서 일까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인다. 인접한 용화 해수욕장의 물은 맑아서 바닥의 모래가 환히 보인다. 이곳에서는 해안을 따라 북쪽 금강산으로 향하던 철길과 터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장호를 조금 지난 갈남리의 해신당. 원통하게 죽은 처녀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한 주술적 장치들. 거친 바다에서 풍어를 바라는 어민들의 기원이 이곳에 서려 있다.

  힘겹게 한치 재를 오른다. 오른편으로 늘상 함께 하는 바다와 왼편의 산자락이 죽 늘어 서 있는 재를 넘으며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배낭의 무게마저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죽서루에서 보냈던 한 때를 생각한다. 죽서루 주변의 바위에 붙어 있는 바다 생물의 흔적을 통해 먼 옛날엔 이곳까지 바닷물이 차올라 왔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바로 앞에 위치한 출렁다리 위에서 껑충 뛰면서 다리를 흔들리게 한다. 이내 흔들리는 느낌이 전해져 오고 아래로 흐르는 오십천의 물을 보니 어지럼증을 느낀다.

  북평 샘골(천곡동)에서 보냈던 원시의 여름 날. 자맥질하며 보았던 검푸른 물 속의 세계. 멀리 두타, 청옥산을 바라본다. 여름 내 훌쩍 커버린 나무들은 이제 성장을 멈추고 묵묵히 이 계절과 함께 한다. 시멘트 공장 주변은 흰 먼지만이 가득 내려앉아 있다. 묵호항 부근에서 사 먹어 보았던 고래 고기. 유리컵에 막소주 가득 담아 홀짝 마셔 버리고 우물거리며 씹던 그 고래고기의 맛이 다시금 생각난다.

  묵호 시내를 가다가 경찰 임시 초소 앞에서 우리는 불심검문을 당했다. 그 이유는 배낭 뒤에 꽂고 돌아 다녔던 빨간 깃발 때문이었다. 이 깃발은 눈 올 때를 대비해서 국도 옆에 쌓아 둔 모래 위에 꽂혀진 적사장을 표시하는 깃발이었고, 별다른 생각 없이 이 기를 꽂고 다녔던 것이다. 빨간 깃발을 꽂고 복장이 단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닌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들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행했던 한 분은 경찰 초소 안에서 배낭의 내용물을 모두 꺼내 일일이 확인을 하는 과정을 거쳤고 나는 버티기. 몇 가지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주민등록증 보이고 나니 배낭 확인 없이 그대로 통과. 길을 다시 걸으면서 경직된 사회의 한 단면을 생각하고 마음은 오히려 착잡하다.

  바람이 계속 분다. 겨울철의 시린 기운을 실은 이 바람은 우리의 앞길을 방해한다. 바람으로 인해 눈물마저 찔끔 나오고 귀도 시리고 손은 아예 호주머니 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허리를 숙이며 바람의 저항을 최소로 하며 나가려 하지만 불어오는 칼바람 때문에 바람을 등지고 걸어 보기도 한다. 발도 시리고 해서 잠시 바람 피할 곳을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계속해 불어오고 다시 바람결에 휘날리는 젊은 날의 꿈을 안고 걷는다.

  옥계로 향하는 길은 두 가닥으로 앞에 섰다. 한 쪽은 쭉 뻗은 고속도로였고 다른 쪽은 산중턱을 오르는 비포장의 길. 고속도로는 터널이 뚫려 있어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저 편의 길이 뻔히 보였고 더구나 시간상 1시간도 못 걸릴 것 같았다. 바람 불고 날씨도 추워서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터널을 통과하자고 약속을 하고 도로에 접어들었다가 순찰 중이던 순찰대에 잡혀 쫓겨났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재차 진입했다가 또 잡혔다. 결국은 터덕이면서 흙길을 걷는다. 흙먼지를 폴폴 내면서 트럭이 올라간다. 편리함이 현대사회의 한 특성인가. 점점 더 편리해지는 것이 근대화 혹은 현대화일까. 편리함의 추구로 인해 우리는 추억과 낭만을 점점 더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힘들여 걷는 것보다 차를 타는 것이 훨씬 편한 반면 걷기를 통해 얻어 지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소나무를 지나는 바람소리, 새 소리, 바다의 파도 소리 등이 머리 속에 인식되어 그것은 기억의 저 편에 저장되고 어느 한 때 추억으로 재생되어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올 것이다. 한편으로 무조건적인 편리만을 추구했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산길을 걷는다. 아직도 고속도로 통행에 대한 잡념을 떨치지 못하고 힘들게 걷는다. 인위적이고 퍽퍽하게 다리를 울리는 아스팔트 길보다는 산길이 훨씬 운치가 있어 좋다. 오르막 내리막 길. 인생 길. 우리가 걸었던 길. 가지 말았어야 하는 길. 실재하지 않은 길. 여러 생각을 하면서 옛길을 넘어 간다. 과거 이곳을 다녔을 보부상의 모습을 상상하며 삶이 시작되고 하루의 삶이 마쳐지는 이곳 길에서 그들의 삶을 조용히 반추해 본다.

  명주군 옥계면의 팻말이 보이고 산길을 넘어 걸린 시간이 3시간 반이나 넘었다. 빠른 터널 길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걷는다. 정동진에 오면 군 시절이 생각난다. 부대에서 사격측정이 있어서 자동화 사격장이 있는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부대 내에 자동화 사격장이 없었던 관계로 처음의 사격율은 저조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기합을 받기도 했다. 또한 사격을 잘 하면 포상휴가를 보내 준다는 말에 헛된 욕망을 꿈꾸었던 그 초입의 이등병 시절의 모습이 어슴푸레 떠오르며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흘러나온다. 조그마한 어촌이었던 정동진의 희미한 기억. 이후로 변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동행한 분이 관절염으로 인해 다리의 통증을 호소한다. 계속 진행을 한다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이 되어 결국은 강릉에서 우리의 일정을 접었다. 안인 바닷가의 횟집을 지나 멀리 보이는 대관령. 팽팽했던 긴장감은 이제 해체되어 버리고 우리들의 꿈은 더 나아가고 싶다. 언젠가 다시금 강릉을 기점으로 하여 출발하기로 하고 갈 수 없음에 대한 빛 바랜 노래를 부른다. 잃어버린 기억의 저 편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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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저녁에 비가 조금씩 내렸다. 이른 아침 일찍 깨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창 밖으로 빗소리를 조금씩 들었다. 비가 내리는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짤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상념이 앞선다. 비를 맞고 여행할 수도 없고. 타국에서의 잡다한 생각들. 아침나절 식사 후 유스호스텔(우타노)에서 한국인 여학생 2명을 만났다. 어제 나라에 갔다가 오늘은 교토를 떠난다나. 짤막한 정보를 얻고서 타국에서의 까마귀를 만난 즐거움을 함께 했다. 다행히 비는 그치고 유스호스텔에서 버스 일일 승차권을 700엔에 구입하고 첫 목적지인 용안사에 갔다.

  석실에서 보이는 정원의 돌들. 조지훈 선생의 글 “돌의 미학”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서 다시금 우주 형상의 축소판이라는 정원의 돌을 바라보았다. 동행한 일본인들은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고 감탄의 말을 그치지 않았고 나는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 뒤 주변에 위치한 금각사를 걸어서 갔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지를 사려고 상점에 들어가 이리저리 살폈으나 없었고 혹시나 해서 화장실 안까지 들어가 봤지만 역시 없었다.

  금각사. 금색모양. 황금빛. 인공의 색채가 많이 가미된 (원래의 것은 불에 타고 후대에 재건됨) 외형의 모습과 주변의 호수와 어우러진 정경을 뒤로하며 다시 교토역으로 나와서 동본원사로 향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일본의 축소지향의 형태가 아닌 굉장히 큰 절이었다. 입구에서 한 아이가 비둘기 먹이를 사자 수많은 비둘기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그야말로 먹이를 빼앗아 먹고 있었다. PC통신 여행동아리에서 읽은 대로 나도 매점 비슷한 곳에 들어가서 오차를 석 잔이나 마셨다. 그것도 공짜로. 여자머리카락으로 짠 밧줄도 보고 나와서 교토박물관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운 것 같았지만 꽤나 걸렸다. 길을 가다가 길을 잘 알려 줄 것 같은 젊은 대학생에게( 여행시 길을 물을 때 상대 편의 인상을 잘 살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함 ) 물었다. 어눌한 영어로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하고 그가 앞장을 서서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판단이 옳았음에 쾌재를 부르고 ( 대부분의 일본인은 정말로 친절하다. ) 따라 나섰다. 그 학생은 박물관 앞쪽에서 방향을 일러주고 재미있게 여행을 하라는 작별인사까지 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박물관을 가는 도중의 시간은 12시를 조금 넘었다. 햄버거 가게를 지나면서 들를까 말까 고민은 하다가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비극의 시작.

  박물관에서 여러 가지 많은 유물을 통하여 일본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한편으로 의심이 났던 것은 많은 중국의 유물과 조선왕조의 유물들을( 박물관 측의 설명에 의하면 장소가 협소해서 다 전시하지 못했다고 함 ) 어떻게 준비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우리의 고려, 조선 시대의 자기가 보이고 소장자인 일인 이름을 보면서 묘한 설움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전시실에 있는 일본도. 전시실 전체가 일본도로 채워져 있어서 보기에는 좀 섬뜩했다. 관람 중 한국 여행자를 만나서 관광정보를 얻었다. 박물관을 나오니 시간이 3시를 향하고 있고, 교토역 근처에서 여행자 식당(tourist restaurant)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지를 못하고 청수사로 갔다. 외형의 방대함을 느끼게 하는 절에는 수많은 선남선녀들을 볼 수 있었고 종 앞에서 줄을 잡고 종을 치고 소망을 빌기 위해 돌을 던지고. 심지어는 개를 위한 곳도 있었다. 청수사에서 내려오다 여학생이 사진을 부탁해서 찍어 주었다. 주변에 여러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토산품 가게에 들어가 도자기로 된 작은 잔을 샀다. 거금 3,000 엔. 에고, 비싸다.

  기온 주변을 배회하면서 식당가를 찾다가 포기하고 유스호스텔로 향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시 내려서 슈퍼마켓에 들러 김밥을 샀다. 가격표에 450 엔이라고 써 있어서 450 엔을 내니 뭔가를 더 달라고 요구하는 눈치이다. 탁스, 탁스(tax) 하기에 간신히 그 의미를 생각했다. 이른바 일본에서는 3%의 세금이 붙는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쓴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것을 2% 더 인상을 한다고 하여 오르기 전에 물품을 사려는 모습을 찍은 신문의 사진을 보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사실 일본은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기 때문에 도심지를 제외 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오후 7시 이후에는 대부분의 상점이 철시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시간은 6시를 넘어 가고, 점심을 먹지 못한 배고픔으로 인해 어둠을 틈타 김밥을 하나 둘 씩 꺼내서 먹다 보니 버스가 와서 탔다.

  유스호스텔에서 오늘의 하루를 생각해 보았다. 하루 종일 걸으면서 느끼는 허기와 이틀째이지만 벌써부터 고독감이 밀려 왔다. 반면 밤 시간에 대화실에 들렀다가 이야기를 나눈 일본 학생들과의 즐거움이 외로움을 밀어낸다. 목욕탕에 들러 몸무게를 재 보니 3키로나 빠졌다. 근래 보기 드문 신기록이다. 내일은 끼니 거르지 말고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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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나절 ― 영랑생가에서
 윤식은 30대 초  박용철 등과 함께『시문학』지를 간행한 시인이다.  이른바 대
구, 강진 등의 그 당시 서울에 비하면 촌놈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이 잡지는 여
러 사정으로 인해 불과  3호밖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세칭 "시문학"파가 끼친  시
사상의 의의는 자못 크다.
 대문을 지나 행랑채의 작은  방들이 보이고 벽면에 여기저기 걸려 있는 농기구
등이 눈에 익숙하다. 옛 집을 보면 과거  시절의 일들이 다시금 떠올라 친근하게
만 느껴진다.
 초가 지붕과 대청마루 조금 떨어진 사랑채 사이에 큼지막하게 서 있는 영랑 시
비. 그 많던 모란은 어디에 갔을까 ? 복원시 간혹 지나친 인위성이 눈에 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비를 읽으면서 그의 섬세한 감정과  미의식에 대
한 추구 열의를 엿 볼 수 있다.
 초가 지붕  사이로 한가롭게 쏟아지는 오전의  햇빛. 마루에 앉아서  가곡화 된
그의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을 나직이 읊조린다.

  백련사
 백련사로 향하는 산길을 오르면서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동백나무의 무리
를 본다. 굵은 한참씩은 나이를 먹었을 나무들의 탐스런 자태.
 천태종의 수행 결사.  요세의 중건 등 단편적인  지식을 안고 백련사에 오르다.
멀리 좁은 강진만이 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면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이 있어
가려 했지만 일행도 있고 시간 관계상 포기.

  다산초당
 백련사에서 조금  더 내려오다가 다산초당 들머리인  귤동마을에 차를 주차 했
다. 전 날 월출산의 몸부림 등산으로 인해  초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다들 무겁
다.
 입구 주변의 마디 굵은 대나무 숲. 지천으로 보이는 굵은 동백나무들.
 다산이 사학에 물든 죄로 18년간의  강진 유배 생활 중 10년 간 이곳에서 머무
르면서 후학들의 양성과 자신의 사상을 심화시켰던 곳.  다산의 외가 쪽이 그 지
역에서는 거족이랄 수 있는 해남 윤씨이고 보면 경제가 탄탄해야 사상도 나온다
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다. 복원된 초당과 그 주변의 경관.  다조, 연지로 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든다.  물 한 모금 축이고 서암, 동암,  천일각을 향하면서 강진
만을 바라본다.
 간척 산업으로 인해 변한 포구의 지형. 사람의  키보다 더 커 버린 갈대의 모습
을 보면서 초당을  나선다. 내려오면서 윤종진 묘 앞 동자석의  앙증맞은 모습을
사진에 남겼다. 마을 입구  가게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어렸을 적 우
리가 먹었던 상표 없던 가래떡을 썰어서 튀긴  과자를 사서 먹는다. 맛은 예전과
같지 않고.

  도갑사에서
 강진에서 영암으로 오르면서 목포 쪽의 길을 들어가야 하는데 별 생각 없이 월
남을 거쳐 풀티재를 넘어 영암으로 향한다. 사흘  사이에 여러 번 지나친 길이어
서 인지 단조로움이 앞선다.
 영암에서 도갑사로 향하는  길은 벚나무가 가로수이다. 죽 이어진  벚나무를 보
면서 꽃이 피었을 봄날의 모습에 대해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들어가는 초입의
마을. 정육점에선 소꼬리,  등 뼈 등을 밖으로 전시해 놓고  있었다. 아마도 장날
이라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상술이라 생각을  해 본다. 조그마한 장이 서
있고 장돌뱅이 몇몇만이 한가롭게 장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저수지 주변을 빙글  돌아서 조금 더 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앞의 수백
년은 훨씬 넘어 버린 것같은 커다란 고목나무에 시선이 멈춘다.
 도갑사 초입의 해탈문(국보 50호)을 지나면서 사바세계에  찌든 나의 마음도 온
갖 번뇌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 여러  의문을 품는다. 대웅보전에는 선남선
녀의 불신도를  모시고 주지 스님의 설법이  한창이다.  신라 승려  도선에 관한
풍수 이야기, 조선 건국에  대한 이성계, 무학대사의 일화 그리고 현정권 초기의
불교 탄압에 관한 이야기까지 스피커를 통해서 들려 온다.
 사찰 주변에는  유적 발굴 작업 관계로  주변이 어수선하다. 석조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경내 주변을 배회한다. 뒤편의  석가여래좌상을 보고 불당이 나중에
지어진 것임을 유추해 본다.

  왕인박사 유적지. 2박 3일 남도 여행의 종착지.
 황량한 느낌의 잘  조성된 인위적 건물. 널찍한 터에 삼국  시대의 더구나 백제
의 유물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대에 지나간 역사에 대한 서글픔의 재인식인가
?
 스피커에서 울리는 전통  음악. 일대기를 담은 유화를 보면서  남원 광한루에서
본 춘향의 일생을 그린 그림을 떠올린다. 기대에 못 미침.

 기념 가축 사진을 찍고 남도에서의 짧은 여정을 뒤로하고 집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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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보길도 - 땅끝(전망대) -대흥사 - 월출산(천황봉) - 온천욕 - 강진

 배시간에  대기 위해 아침부터 몸을  뒤척인다. 밤새  불던 바람은  이제
지쳤는지 잠잠  하기만 하다.  어제 밤중에 도착했던 예송리의   해변가를
아침에 나가 볼  요량이었으나 날은 어둡기만 하다.  그래서 포기하고  주
섬주섬 짐을 싸서 선창으로 나간다.
 아침나절부터 선창은 완도로, 노화도로, 땅끝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하
고 다들 섬에서 나온  사람과는 다르게 말쑥하다. 여객선에 오르니 바닥에 
담요가 깔려있지 않은 관계로 엉덩이가 차다.  모자를 깔고 앉아서 멍하니
텔레비를 본다. 전압과 전파 관계로 화면은  종종 일그러지고 그래도 사람
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무 말 없이 보고 있다. 선실 밖으로 나가니 아
침바람이 맵다. 멀어지는 주변의 섬들. 언제 다시 올 것인가 ?
 토말에 도착하여 주위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른다. 바다의 색이 탁하다. 비
앞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후 가고파"라도 부르려고  했지만 배가 등가죽에 
붙은 관계로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다  본 토말  선창의
모습이 아침 햇살과 함께 한가롭다. 아침을 먹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았
으나 결국은 포기를  하고 대둔사(대흥사)로 향한다.

  대둔사에서

 산문에서 경내로 들어  가는 긴 길은 운치가 있어서  좋다.  주변의 가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일주문을  지나 입구에서
본 부도밭. 많은 부도들을 통해서 이 절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한편으로
생각한다. 서산대사의 부도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살핀다. 아,  찾았다. 역
시 다른 부도보다는 수려한 외형을 하고 있다.
 사찰의 남원 쪽에 도착.  가허루 앞쪽으로 공사관계로  자재를 쌓아 놓은
것이 어지럽다. 북원의 대웅보전 앞에서  현판 글씨를 보고 아침  예불 시
간인 관계로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에 생동감을 느낀다. 오랜만에 들어 보
는 불경소리. 천불전 내의  옥돌로 만든 천불상을  보고 나의 소원도 빌어
볼거나.
 아침 시간이어서 인지 두륜산(672) 산행을  위한  등산객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띤다. 유명한 사찰치고 주변의 산이 수려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이 오늘의 깨달음일까 ?
 부자 절을 뒤로하고 터덜터덜  내려오다  유선장 앞을  지나간다. 여관의
그 흰둥이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을 하다가 답사기 3편의 후기 내용이 생각
나서 여관의 거죽만 둘러보았다.  방 앞에 붙은  각각의  이름이나 액자에
걸려진 그림 등이 옛 냄새가 많이 풍긴다.

  월출산을 오르며

 ㅇ 매표소- 천황사 - 구름다리 - 매봉 - 사자봉 - 통천문 - 천황봉 -(하
산)
      바람폭포 - 천황사 - 매표소
      통천문 - 경포대 - 야영장

 전 날 본 월출산의 모습에  다들 긴장하고  있는 것일까 ? 하긴 같이 간
대부분의 사람이 1 년에 두세 번 정도 산행을 하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관
계로 많은 신경이 쓰였다. 아침을 늦게  먹은  관계로 점심은 산에서 먹기
로 하고  라면 좀 사고 물병에 물을 넣고 준비를 마치니 오후 1시가  가까
워 온다.
 매표소에서 천황사까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다. 곰곰이 생각하니 오늘
은 일요일. 가족과 같이 아이의 손을  잡아끄는  가장의 모습을 보니 한없
이 부러워진다. 어떤 사람은 양념통닭  들고 올라가고. 가지각색이다. 그늘
진 곳에는 눈들이 보이고 같이 간 일행 중 한 분은 아예  아이젠을 착용하
고 오른다.
 구름다리 도착. 건너편 바위 봉우리의 모습을 보고 얼마큼 올라 왔는가를
확인한다.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되어 있는 농토들. 그리고 붉은  색의 향토
가 고향주변의 내음을 환기시켜 준다. 구름다리 위에서 다리 힘이 점점 빠
져 가고 있음과 함께 털썩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100여 미터 이상
이 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다시 앞으로 향하고.
 아이구, 다시 다리를 건너서 바람골로 향해야 하는데 별생각이 없이 가다
만난 하산 중인 등산객에게 물으니 이 쪽으로 오르면 빙 돈데 나. 이 설명
을 듣자 일행의 일부는 벌써 내려가자고 하고. 우여곡절 끝에 수많은 철계
단을 넘어 천황봉에 올랐다.
 시간은 4시를 향하고 있었고 서둘러 준비해 간 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정상에서의 잠깐 동안의 조망. 먼 곳에 보이는 구정봉의 봉우리에 내리 비
치는 햇살이 주변의 풍광과 어울려 따사롭다.  올라오면서 이렇게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는 처음이다.  정상에서도 바람은 정지해  있고. 서둘러 하산.  
 다들 이런 산행은(아마 상당히 고됐나 보다.) 처음해 보았다면서  내려 가
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을  바람골로 하산하게 하여
차를 경포대 쪽으로 가져오게 하였고 나는 나이 든 분을 따라서 내려 가기
수월하다는 경포대 쪽으로 갔다. 계곡 길의 내리막. 지리하다. 주변의 경치
를 볼 수 없다.
 하산. 대기한 차에 올라 월출산 관광 호텔로 향한다. 단지  온천욕하기 위
해서. 목욕 후 곰곰이 생각하니 목욕요금이 6,000원이 너무 비싸다. 시설면
이나 수질도 좋은 상태가 아닌데  4,000원 정도의 요금이면(설악산 호텔의
온천욕 요금) 적당할 것이라고 다들 이구 동성으로 말한다.
  강진으로 내려가면서 "해태식당"에  전화를 했다.  영암에서 출발시간이
늦은 관계로(20:30 이후에는 손님을 받지 않음) 가까스로 8시20분 경에  도
착하였다. 한정식 1인분 15,000원  2인분35,000. 5년 전에 이곳에  들렀다는
일행 중 한 분의 말에 의하면 그 땐 8,000원. 고물가 시대를 다시금 절감한
다.
 알이 굵은 꼬막(이렇게 굵은 것은 처음 본다), 대하, 가오리,  굴비 그리고
육회 등에 이르기까지 20여 종에 가까운 찬이 나오고 술과 함께 둘째 날도
지나간다. 먹는 즐거움.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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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여정: 춘천 - 광주 - 무위사 - 녹우당 - 땅끝 - 보길도
 
  떠나기 전 날 나는 당신에 대해 긴 꿈을 꾼다.
 떠나는 자의 들뜬 마음. 일상 생활에서의 탈출. 잘 다녀오라는 아내의 말에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전원 7명이 차량 3대에 나누어 타고 춘천을 출발하
였다. 가다가 졸리면 자고 깨다 하니 차는 벌써 광주를 지나 나주에 와 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

  무위사에서(소재: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무위사로 가는 길에 본 월출산의 위용이  일행의 마음을 억누른다. 월출산 정도
야 가볍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일까 ? 그도 그
럴 것이 호남의 평야에 우뚝  솟은 바위산의 모습을 보니 내일의 산행이 슬금슬
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세상의 일들이 힘이 들 때, 이곳 무위사에 오라.
절의 이름과도 같이 소박함 속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단청을 다시금 칠하지 않은 자유로움.
화려함 자체를 멀리한 극락보전을 보면서 풍상의 세월을 이겨 낸 우리네 부모님
의 모습을 읽는다.
 퇴색한 나무 기둥의 빛.
바람은 풍경소리를 통하여 그 흐름을 알리고 한가로움 속에서 느끼는 마음의
평화와 정겨운 풍경 소리.
바람마저도 정지해 가는 이곳에서의 시간.
 벽화보존각에 따로 모셔져 있는 불화들. 둥근 인자한 벽화의 상호.
가식이 없는 따뜻한 순수함 ― 무위사.

  녹우당(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해남 윤씨의 종가로서 전남의 민가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집이라고 한다.
입구에 서 있는 가지가 앙상한 500년 가량 묵은 은행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지탱
하면서 힘들게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윤선도의  후손이 살림을 하고 있기에 녹우
당 내부는 들어가질 못하고 발걸음은 인접한 유물 전시관을 향한다.
 윤선도와 증손인  윤두서의 작품을 모았고, 몇  년 전에 도둑이  들어와서 많은
자료를 분실했다고 한다.  윤선도가 직접 쓴 가첩을 보고 윤두서의  자화상을 본
다. 가느다란 털끝  하나 하나에도 신경을 써서 표현하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
인다. 18여 명의  첩자를 시켜 그들로부터 수집된 내용을 토대로  하여 그렸다는
일본여도를 보면서 사실성 여부에 혼란을 느꼈다.
 전시된 많은 자료들.
일반 인문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음양, 의학 등의 선인들의  넓은 학문에 대한
욕구에 경외감을 느낀다.
 명문 거족의 집안에  태어난 윤선도. 생의 대부분을 귀양으로  일관하지만 풍류
를 잃지 않고 산 문인. 결국은 경제적인 바탕이  되어야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서글픈 결론을 도출해 낸다.

 첫날의 대흥사 관람 계획을  내일로 미루고 보길도로 가기 위해 부랴부랴 땅끝
으로 향한다. 군데군데에서 언뜻 보이는 바다와  섬들이 살갑게 다가선다. 아, 남
해에 내려온 지가 언제였을까를 머리 속으로 떠올리며 시선은 바다를 향한다.
 땅끝 선착장 도착.
 더 가고 싶은데  갈 수는 없고 우리네 땅덩어리는  왜 이렇게 좁을까 ? 비릿한
갯내음과 함께 바람이 찾아  든다. 지프 차 한 대를 태우기로  결정을 보았고 배
타기 전 구멍가게에서 보해골드랑 골뱅이, 꼬막 통조림을 몇 개 샀다.
 배의 출발과 함께 술이 몇  순배 돌았고 일몰의 시간이 되어 밖에 나가 보았으
나 노을 빛이 흐릿하다.
 1시간 후 보길도에 도착.
 7명이 차에 꾸겨 타고 세연정으로 이동.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세연정에서 고산의  삶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본
다. 자신이 지은  어부사시사를 연주하게 하고 다른 쪽에서는 무희들이  춤을 추
고 그것을 감상하며  지내는 나날의 일상들. 이러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
나 많은 섬사람들이 동원됐을까 등등의 잡생각이  앞선다. 세연정 주변에 인접한
보길초등학교 담장이 눈에  거슬린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져 가고 있고  다시 차
를 타고 예송리  해수욕장 쪽으로 간다. 해수욕장에서 검고 둥근  돌을 찾겠다고
했지만 날이 이미 어두워져 버려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예송리 해수욕장 앞 한옥 집에 민박하기로 정하고 일부는 포구 쪽으로 회를 사
러 나가고 방이 더워지기를  기다리며 주인 집 방에 들어 가  텔레비를 본다. 과
년한 딸들이 손님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누워서 텔레비를 본다.
 밤은 깊어 가고 취기는 오르고, 문 밖으로 들리는 지천의 바람소리.
상록수 방풍림 사이를 지나는 가여운 울음소리.
오랜만에 밤새 듣는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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