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다시 길 위에 서다.
수많은 사람들의 북새통 속에 서있는 나.
출발 지점을 알리는 전광판에선 작년에 마라톤 10회 완주를 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사람들이 소개되고
그 중 내 사진과 이름이 화면을 통해 나왔을 때
한 손을 번쩍 들며 스스로에게 축하를 한다.
흐릿한 아침 나절
의암댐 피암 터널을 지나며 내는 함성은 귀청을 울리고
먼저 출발한 사람들의 모습만이 눈에 보인다.
뜀뛰기를 대비해서 뛰기보다는 오히려 산에 열심히 다닌 나.
오랜만의 1박 배낭을 지고 힘겹게 올랐던 마등령
그 속에서 빛났던 흰 자작나무와 가을의 강렬한 색.
억새풀 사이로 지리하게 이어졌던 몽가북계의 능선
겹겹이 이어진 산의 실루엣
그리고 남이섬에서 보았던 노란색.
기억들은 서로 엉키고 풀어지며 주마등처럼 길 위로 흐른다.
15키로 넘어가며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해서 그만 뛸까를 생각하다가
20키로 넘어가니 나아지는 것 같아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보이는 결승점.
한 번도 앞서지 못했던 4시간 40분을 알리는
페이스 메이커 풍선이 저 앞으로 들어가고 있다.
십여 차례 이상 뜀뛰기를 하면서 기록은 나에겐 의미가 없고
가을 날 작성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이루어진 날
말없이 고생한 두 다리와 몸에게 찬사를 보낸다.
사진 자료 - 포토 스포츠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