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올렸던 짤막한 글들.

 

 

 # 138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 T.S.엘리엇 <황무지> 첫 부분

 

 대학시절 읽은 기나긴 시 <황무지>의 기억이 가물하다.

주지주의 시답게 설화와 신화 등이 이것저것 얽혀져 있고

흐릿하게 기억나는 내용은 재생설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

 

 그리하여 다가선 4월.

묵은 것들 던져 버리고 새롭게 일어서서

다스한 봄볕 아래

삶에 대한 열정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시간.

길은 언제나 마음 속에 있고

가볍게만 느껴지는 지난 시간들 지나

묵은 것을 넘어서 자신의 재생과 부활을 꿈꾸는 오후 나절.

말러 교향곡 2번을 듣는다.

 

 

 # 139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습관처럼 라디오를 켠다.

이른 시간이면 국악이 나오고 이후 생활 영어 그리고 이어지는 아침 음악

대개 아침 먹을 때면 "출발FM과 함께"가 나와(KBS 1 FM)

말수 적은 나에게 음악은 나에게 말을 건다.

고전음악에 대해 잘 몰랐던 시절.

반복된 FM 듣기는 고전음악에 대한 일단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고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CD를 사서 늦은 밤까지 듣고 했던

젊은 날이 주욱하니 비 내리는 아침 풍경처럼 지나간다.

차려진 식단은 편식이 아닌 고른 영양식.

그저 듣기만 하면서 상상력을 꿈꿔왔던 날들.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기억들이

즐거웠던 날들을 생각하며 배시시 웃게 만드는 아침.

그리하여 이 아침이 행복하다.

 

                                                                                           - KBS FM 개국 34 주년을 축하하며.

 

 

 # 140

 

 봄비가 살랑거리면서 내리는 날.

우산을 들면서 저 건너편의 산을 바라다본다.

비 내린 이후의 산은

봄이라는 새로운 계절 맞이에 본격적인 준비를 할 채비를 갖출테고

이젠 변한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야한다고 다짐을 한다.

 

 겨울의 흔적들은 사라져버리고

지나간 것들을 기억할 수 있는 물증이 사라지는 비 오는 날.

오가는 계절의 순환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아침부터 밀려온다.

 

 봄을 타나 보다.

 

 

 # 141

 

 3월 들어 이가 시린 증상이 심해져서 결국은 참다가 신경치료를 받는다.

이를 구멍 내고 그 속의 신경 다발을 긁어낸다는 치료 방법에 밀려오는 상실감.

덕분에 이 시린 어금니의 증상은 완화가 되었지만

예전의 시린 감각은 사라져버리고

한편으론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몸을 떨다가

급기야는 3월 말일에 허리가 찌끈하더니 거동에 불편함을 느낀다.

 

 봄이 되어서 예전에 안 하던 운동을 시작해서 그런가하고 생각을 하다가

이제는 조금이라도 무리를 하면 부실한 몸에서

바로 신호를 보내는 쉰 내음 세대가 되었다는 서글픈 자괴감이 밀려온다.

일단은 몸이 보낸 신호를 인지하고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자제하기로 잠정 행동의 결론을 내리고 쉬기로 한다.

 

 이른 아침에 CD를 고르고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잡는다.

날은 서서히 밝아 오고 음악은 거실을 타고 오르고

아주 느릿한 생활 속에 느끼는 다른 느낌.

신경치료 관계 혹은 침을 맞은 이유로 계속되는

금주에 몸은 맑아져 가는데 불빛 아래 반사된

글자는 의미를 잃은 채 혼미해져간다.

 

 4월 첫 주간.

영화 4편, 책 4권(산서에 끌려서 철원도서관에서 빌린 책 2권), 음반 여러 장.

육신의 삶은 평온했을지 모르지만 정신은 저 너머를 계속해서 헤매고.

한편 이게 쉼인가를 자문해보지만

얻은 것은 아침 시간이 훨씬 여유가 있어졌다는 것.

 

 비 내림 예보가 있는 주말.

휴일 중에 읽을 책 몇 권을 주섬거리며 싼다.

허리는 아직도 묵직하다.

 

 뮤지컬 - "CAT’S" 중 "MEMORY"

나는 묻는다. 지난 것들은 현재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즐거웠던 지난 날들이 지닌 기억에 대한 리콜.

 

 

 # 142

 

 최근에 읽기 시작한 이주헌의 <지식의 미술관>.

영국 빅토리아조의 회화가 어쩌구저쩌구.

언제나 새로운 것에 대한 지식은 끝없는 탐구심을 유발한다.

한편으론 그간 몰랐던 것에 대해 다시금 개념을 잡기도 하지만

미술 작품의 감상이라는 것이 개별 지식을 통한 이론의 확충보다는

실제의 작품을 보면서 경험을 확대하고 자신의 감각을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한 것.

논리성보다는 주관적인 인상과 직관이 감상에서 때로는 필요하고

더 많은 관심과 시선으로 미술작품을 대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텔레만의 관악협주곡을 들으며 지나가는 아침 시간.

자신의 주관없이 무지하고 어수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서 어느 땐가는 두려움을 느낀다.

세상은 넓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머리 속에 든 것은 얼마 없고 남 하는 대로 앵무새처럼 따라하기 바쁘구나.

 

 

 # 143

 

 허리 아픈 관계로 십 여일 넘도록 방콕하고만 있자니 답답하다.

그저께 잦은 기침이 나더니 어제는 머리에서 살살 열나고 기운이 없어지기까지 한다.

부실한 몸에 보내는 신호를 인지하지 못하고

아둔한 자 운동 부족이려니 하고 넘긴다.

 

 4월 들어 아침의 인사가 온통 날씨 얘기로 이어지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란 구절이 딱하니 들어맞고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 있는데

우리들은 외적인 상황에만 탓을 돌린다.

 

 오늘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삼짇날.

옛날부터 홀수 자가 겹치는 날을 길일로 보았던 조상들의 삶.

그리하여 마음 속의 봄을 느끼며

오늘은 참꽃으로 찹쌀가루에다가 참기름을 둘러 꽃지짐은 못해 먹어도

가까운 산에라도 나가 참꽃이 얼마나 피었고 그 꽃 하나 따

입으로 쭉쭉 빨면서 지나간 봄의 기억을 되살려 보는 것이 어떨까.

 

 

 # 144

 

 아침 신문을 읽다가 "지리산 호랑이 함태식씨 잠들다"라는 부고를 접한다.

물질 위주의 가치관 사회에서의 높은 관직의 저명인사만은 못하지만

지나 온 고인의 삶은 지리산과 함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산장의 명칭이 대피소로 바뀌어 버린 이즈음

지난 산행에서 산장에서의 추억은 가물거리며 피어난다.

물리적, 기계적인 통제 위주의 행정적인 산행정책은

그만큼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산을 위해 헌신적으로 내 청춘을 다 바친

자신의 일에 뜻을 굽히지 않은

그야말로 고집이 센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세상을 달리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불에 타 이젠 화장실만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양폭산장,

옛 자취는 사라지고 현대식의 건물을 올리고 있는 소청산장을 지날 때면

겨울 날 2박3일을 오롯이 소청산장에서 보낸 일을 생각하고

두리번거리면서 옛날의 자취를 찾지만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기억마저 일어설 수 없음에 대해 탄식을 한다.

                                                                                           - 함태식씨의 생전의 행적을 기리고 추모하며

 

 

 # 145

 

 교정에 목련꽃 하늘 향해 긴 그리움의 목을 쳐드는 날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한 당신을 향해 눈을 돌립니다.

이어지는 봄추위 속에서

몸속의 감각은 깨어나지 못하고 계속 웅크리고 있었어요.

아마도 먼 산머리에 희끗하게 내려앉은 겨울의 흔적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일상의 변화에 자꾸만 둔해져 가고

가슴 속의 감흥을 잃어버리고 있어요.

지난 기억들은 그렇게 지나갔고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금의 시점인데

가슴이 텅 빈 사람이 되어 주변의 다른 것들을 탓하며 나를 변호하고 있지요.

 

 푸른 하늘을 가득 담은 오랑캐꽃.

봄을 알리는 여러 들꽃들이 건성으로 지나가는 날에

다시금 시린 눈 뜨며 주변의 것들을 바라보아야겠지요.

 

 아침나절 추적이며 내리는 비는 시간의 진행을 재촉하고

일상의 풍경에 가슴시린 눈빛을 보냅니다.

 

 당신에 대한 그간의 소원함에 너그러운 용서를 빌면서.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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