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04월의 잡문(Facebook에 올린 글 발췌)
120403
"태양은 가득히"에 이어서 본 영화 "리플리". 120406 춘천에서 장례식장엘 가려고 양복을 찾으니 여름 옷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들어 온 날. 120409 지독한 바람 속에서 더디오는 봄. 120413 절.규. 120417 꽃들이 다투어 하늘을 향해 시샘하여 오르는 시간. 120419 120423 120426 아침. 오랜만에 보는 푸른 하늘과 구름. 사실주의에서 획득되는 비장미. 120428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관람하는 장면 중 들리는 렌스키의 아리아.
"어디로 가버렸나, 황금같은 나의 청춘이여."
죽음을 예견한 그의 목소리는 구슬프게만 들리고 이것을 보고 있는
극중 주인공 리플리 눈가에도 눈물이 떨어진다.
류준하의 책 "너 음악회 가봤니?".
질질 끌다가 이제사 읽기를 마친다.
3월 책 읽는 것보다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음악 듣는 것보단
아침 나절에 FM만 잠깐씩 들으며 지냈다.
퇴근 후에는 이제 막 눈 그친 금학산에도 올라가야겠고,
또 음악도 들어야 하고.
마음 여유롭지 못한 자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흐린 날씨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산자락.
그거라도 입고 가려고 바지를 입고 허리를 채우는 순간.
겨울 동안 놀새의 시간들이 배 주위로 기름대(帶)가 형성되어 허리를 압박해온다.
몸이 무거우면 움직이기 어려운 법.
쇠기러기들 때가 되어 무리지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몸 가볍게 해서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몽상을 꿈꾸는 아침.
취기는 어둠의 바닥 저편까지 퍼지고
조금 남은 영화 "고스포드 파크"를 본다.
지리하게 일상의 날들을 보여주고 후반부 사건은 전개되는 듯하더니 맥없이 영화는 끝이 난다.
늘상의 일이지만 이렇게 침주(侵酒) 상태에서 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
이틀에 걸쳐 읽은 김정운의 "남자의 물건".
내 물건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단순무식하게 사는 삶의 방향에 위배되는 것 같아서
혼곤한 잠의 나락으로 빠진다.
아아, 덧없이 하루가 갔구나.
꽃들은 이미 피어 그 봄을 알리고 있었네.
드름산. 현호색.
하.는.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아.침.
- 금학산에서
주변 환경의 변화는 벌써 시작이 되었건만
계절에 아둔한 자 먼 산만 그저 쳐다보면서
내 가슴 속에도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단일 구성과 사건이 주는 단순함 속에서
시간이라는 인자에 의해 과거는 아름답게만 채색된다.
그리고 나도 지난 대학시절 되돌아 보기.
비는 추적이며 내리고,
영화를 보다가 문득
며칠 전에 본 "로맨스 조"가 구성 및 내용 전개에서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픈 추억 속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내포하기도 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보슬비 내리는 아침.
어디갈까를 생각하다가
밀려 오는 허기.
배고프다........
길가엔 산괴불주머니 군데군데 피어 흐린 날 밝은 봄색을 알린다.
그 외의 봄꽃들 보이지 않고
흐릿한 안개 속을 느릿하게 걷는다.
대룡산 안개 속 풍경.
신문을 읽다가 박완서 선생의 젊은 날 사진을 본다.
시어머니와 함께 찍은 젊은 날의 사진.
기록은 기억을 넘어 서고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마음마저 훈훈해지는 날.
벨리니 오페라 청교도 중 “A te, o cara(그대, 오 사랑하는 이여)”
아리아 한 대목을 떠올리고 지난 행복한 시간들을 반추해 본다.
사진 출처: 중앙일보(12.04.25.)
밀려 다니는 바람 속에서 벚꽃은 우수수 꽃비가 되어 어지럽게 날린다.
이런 날엔 지중해 바다를 끼고 있는 시칠리 섬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베리스모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생각난다.
풍성하게 울리는 선율의 흐름 속으로 느끼는 바다의 내음 그리고 봄꽃 열매들의 향기.
죽음을 예감한 투리두의 아리아 " 어머니, 이 술은 독하군요."
다시 하늘을 오르는 벚꽃의 잔해.
마음마저 가볍게 따라 하늘을 오르는 아름다운 날.
계절의 변화를 모르는 둔감한 자가 되어
변화하는 산의 모습에 가벼운 탄식을 하는 하루.
- 삼악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