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지털카메라에서 CF카드(저장장치)를 꺼내서 PC본체로 옮기는 일련의 디지털화 작업을 한다. 전번 날 서울서 산 렌즈를 테스트 겸해서 100여장 찍었는데, 나온 결과는 참담하다. 노출오버에다 연곷 접사 사진을 찍은 것은 수전증으로 인해서 초점이 정확하게 맞은 것이 없다. 한편으로 실망하면서 나름의 생각을 한다. 상급 기종과 좋은 렌즈를 갖고 있으면 사진이 나아질 것이라는 평소의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간다. 능서불택필이라는데, 못난 자 자신의 실력보다는 다른 것을 두고 탓하며 이유를 대며 합리화 하려 한다.
내공 증진 좀 해야 겠고, 견문도 좀 쌓아야 할 것 같다. 순간포착을 한 브레숑의 경우 삼각대 없이 손각대만으로도 1/4초까지 찍었다던데, 피나는 연습의 결과이리라.
2.
날은 더워지고, 산길은 짙은 녹음으로 덮여 있어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엊저녁에 내일의 산행에 필요한 장비를 점검하면서 계획대로의 산행이 될까를 생각한다.
미시령에서 공룡능선을 거쳐, 희운각대피소서 1박하고, 다음날 대청봉을 거쳐 한계령을 넘는 한여름의 개혓바닥 엄청 나오는 산행. 아침부터 일행이 오후에 비온다고 연기하자고 한다. 그래도 간다. 필드테스트하러. 그동안 나뒹굴었던 몸이 얼마만큼 적응하고 반응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또 간다. 한편 주인을 잘 못 만난 몸이 가엾다.
비까지 온다고 하는데 산에는 왜 가는지 모르겠다. 산이 있으니까 가는 것인지, 아니면 홀릭상태가 되어서 습관적으로 가는 것인지. 설악산 지도를 보면서 가야할 마룻금을 긋고하니 마음은 벌써 설악의 한자락에 와있다. 황철봉서 저항령거쳐 미시령 구간은 처음이고 그외는 이미 몇 번씩 가 본 길. 곳곳의 지명을 보면서 과거에 산행했던 추억이 눈 앞에 겹쳐 떠오른다. 그리움은 언제나 반복되는 것. 그리고 그 설레임으로 인하여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하여, 한 낮의 오후 꿈꾸는 설악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