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러 철원 가는 날.
어둠은 먼저 따라와 가는 이의 발길을 더디게 한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둥실하니 뜬 섬처럼 보이는 동송.
지난 3년 반을 지내다가 떠나온 시간을 어둠 속에서 생각한다.
새우젓, 고추가루, 마늘 등 몇 개의 재료를 제외하고는
손수 재배한 것들이 오늘 김장의 주재료.
배추는 철원을 떠나면서 관리가 소홀해졌는지
끝부분이 마른 아내의 걱정어린 사진이 보내왔지만
그 해의 여름과 가을의 정취와 기억은 고스란히
배추에 남아 있을 것임을 생각하며
마늘을 빻고 무 채를 썬다.
아침 나절
쇠기러기는 무리지어 끼룩거리며 날아가고
쌀쌀한 북쪽의 날씨를 실감하면서
이제는 직접 재배한 재료를 갖고하는 김장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며 절인 배추 꼭지를 딴다.
- 김치를 먹으면 재배했던
도창리의 햇살과 바람소리를
마음 속으로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