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목주를 마신다.
지난 여름 속초에서 보낸 일들과 함께 설악산 봉화대리지 길이 생각이 난다.
마가목 향을 맡으니
그해 여름 한낮 청량감을 주었던 그 설악의 바람 소리가
솔솔거리며 찾아 온다.
그리고 클라이버의 베토벤 교향곡 5 & 7 씨디를 듣는다.
5번 1악장은 넘겨 버리고
2악장 부터.
또 생각한다.
이렇게 한밤중에 닭날개를 잡아 뜯는 나는 누구인가?
먹다가 식구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음악을 들으며 베토벤 생전의 그 고단했을
고뇌가 함께 밀려 오는 시간.
설악의 향기도 같이 있어 즐거운 시간.
술을 마시며 전 번 날 올랐던 봉화대 그 바위길을 생각해 본다.
흐린 날씨 탓인가?
술은 느릿하게 그대로 들어가고,
흐린 불빛 아래서
나는 왜 이 곡을 택했을까
지휘자 클라이버.
4악장으로 들어 가면서
지독하게 몰아간다.
그 정점을 향하여.
즐겨 들었던 곡.
지금은 가고 없는 클라이버를 흠모하면서.
식구들, 다들 보니 없네.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하여
베토벤 교향곡 5번은 불손하다.
어디론가의 향함에 대한 느낌을 받아서 였을까.
베토벤과 그의 시대.
하인리슈타트 유서.
이후 지속적으로 다가 오는 청각에 대한 불안과 공포.
불안. 그 알 수 없는 불안.
대화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에 대한 자문자답.
반복에서 오는 주제부의 강조.
마가목 향.
아직도 남아 있는 시간.
술의 향에 어리는 과거의 일들.
이것처럼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매체가 있다면
과거의 기억들은 언제나
기억의 저편에서 서성이고.
결국 나는 그해 여름날 기억의 끝부분까지
다 마셔 버리고 말았네.
떠 오르는 생각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상상력을
키우는 하나의 조건인 것.
크라이버스는 음을 조율하고 강약을 조정한다.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늦은 밤.
귓가에서 들리는
마음 속의 그해 여름 바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