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전범의 재판을 다룬 영화 <뉘른베르크>를 보다가
문득 바그너의 악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메트로폴리탄오페라, 레바인 지휘, 2001 DG) 가
떠올라서 DVD를 주문해 놓고 주말에 시간을 내어 공연시간만 5시간이 훌쩍 넘은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네 번에 걸쳐서 나누어 본다.
그러는 사이 한 달이 훌쩍 넘어가 버리고
그 전의 장면들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며 열심히 보지만
집중력은 이전만 못하여 문득 고개를 가로젓고 꾸벅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는 16세기 뉘른베르크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노래경연대회를 소재로 하여 경연대회 우승자가 금 세공사의 딸 에파와 결혼한다는 내용으로
마이스터징거의 존재와 의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
메트의 지휘자 레바인은 극중 음악을 통해 객석과의 거리를 좁히고
바그너는 문학과 음악의 완전한 일치를 추구한다.
자국의 언어인 독일어로 직접 대본을 쓰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소재를 택한 것이 아니라 북유럽의 신화, 전설, 역사에서
소재를 택한 이 작품은 독일인들이 지닌 자랑스럽고 면면한 예술의 전통을
악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노래한다.
노래경연대회를 소재로 한 또 다른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순결을 상징하는 엘리자베트와
환락과 육욕의 세계를 나타내는 베누스의
두 세계에서 방황하는 탄호이저.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경연대회에서 금단의 세계인 육욕의 세계를 찬미한 탄호이저는
추방되어 순례자 일행들과 함께 로마로 가서 교황에게 사면을 받으려고 하지만
받지 못하고 결국은 엘리자베트가 죽음으로써 탄호이저의 영혼은 구원된다.
카라얀이 지휘한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듣는다.
24분 여의 긴 서곡.
도도했던 바그너의 풍모와 악극을 향한 나름의 열정을 생각하면서
메트판의 DVD "탄호이저" 앞 장면을 떠올린다.
안소니 퀸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25시>를 보다가
전반부의 영화의 장면이 옛 기억들과 겹쳐진다.
그 기억은 중간 부분까지 이어지고 그 뒤는 가물가물해서
선망후실(先忘後失)의 서러움이 밀려오고 다시금 영화를 본다.
8년동안 영문을 모른 채 이곳저곳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주인공이
마지막엔 미군포로가 되어 뉘른베르크에서 전범 재판을 받는 광경이 나온다.
아, 이 영화에서도 전범재판에 관한 것이 영상화된 것을 늦게사 알게 된다.
기억은 희미하게 사라지고 다시금 이어지는 가을날.
영화와 음악은 소재를 달리하며 기억을 넘나든다.
설악산 귀때기청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