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마신 술로 인해 아침 뒤척이고 있을 때
집사람이 어디를 가잔다고 한다.
창 밖을 보니 눈은 폴폴 내리고 있고,
눈 내리는 날 어디를 가냐고 해도 가잔다.
따라 나서는 수 밖에.
광주준 초부면 마현리.
현 행정구역상으로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소재 다산유적지.
과거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유적지 간판을 언뜻 본 적이 있기때문에
그 지역을 알 것 같았다.
청평 고갯길을 넘어서부터 눈발을 어지럽게 더 휘날리고
쌓이진 않았지만 설설거리며 차들이 고갯길을 내려간다.
대성리 전 갈림길 철길을 넘어서면서 부터 보이는 호수와 눈 덮힌 산들.
인근 산의 모습은 언제나 보아도 둥글하다.
산과 길 거리의 나무들은 백색의 경보 발령 중.
언덕 길 올라가는데 차들이 많이 밀려 있다.
몸 속으로 느끼는 전날 주취의 흔적.
전 날 먹다가만 노가리를 다시금 질겅이면서 기다리다가
10분이상 지체가 되면 다시 돌아 가자고 얘기를 하고
기다림.
반대 편 지나가는 차에 물어 보니 언덕길을 트럭이 올라가지 못해서
정체 중이라나. 그래서 차를 돌리고 나니 때는 점심 밥 때.
눈은 점점 어지럽게 날리고.
한옥 비스므리하게 해 놓은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눈 소복히 쌓인 항아리들.
과거의 일을 생각하는 매체가 되어
입가에는 미소가 나오고 한편 친근감이 앞선다.
밥을 먹고 나니 본전 생각이 나서 다시 차의 방향을 다산유적지로 돌린다.
利 農, 重農, 便農의 3대 농정 실시를 주장했던 학자.
나이 23세때에 정조 앞에서 "중용"을 강의 했던 그의 패기 넘쳤던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해
본다.
순조의 등극과 함께 행해진 신유박해 그리고 남인의 몰락.
이른바 끈 떨어진 뒤웅박의 신세로 전락한 그는 18년간의 유배생활을 겪는다.
긴 유배 생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 아니 학자로서의 명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
을까?
10여 년간 보낸 강진 다산초당이 그의 외가 해남윤씨 본가와 지근거리에 있다는 지리적 조
건과 그리고 외증조부에 해당하는 윤두서가 소장했던 많은 책들.
유배지에서의 외가 댁 장서의 탐독.
백련암의 고승과 초의 선사와의 종교를 넘어서는 대화.
500여 권에 해당하는 많은 저작들이 과거 관리로서 본 백성들이 처한 궁핍한 현실인식과
이러한 독서를 바탕으로한 그 끊임없는 사유의 결과이리라.
퇴락한 여유당에 들러 처마 위에 쌓인 눈을 보고
다시 발 걸음은 그의 묘소로 향한다.
눈 앞을 가로막는 시린 눈으로 인해 저멀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함께 합치는
팔당호의 수면을 보지 못했다.
돌아 오는 길.
다시금 뒤돌아 보면서 오르는 언덕.
차 안 테이프에선 베토벤의 "첼로쏘나타 3번"이 흘러 나온다.
30세 때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이랄 수 있는 귓병이 악화되어 연주가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작곡가로서의 길을 들어서야했던 베토벤의 고뇌를 생각한다.
그 고뇌가 정약용의 백성의 삶을 위한 고뇌와 동류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32세 때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고 이후 30대 후반에 보여 주었던 정열적인 작품들.
교향곡 5번, 피아노 협주곡 5번.
로스트로비치의 첼로음은 낮게 웅웅 거리고
이에 화답하듯이 피아노는 응답하고
서로 이끌고 밀고 당기고 배려를 하고 있다.
그 고뇌의 시대에 이렇게 뛰어난 작품을 발표한 악성에 경의를 표하며
창 밖으론 바람 웅웅거려도
우리같은 무지랑인 음악을 주의깊게 듣는 것이 예의일 것.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이다.
그러나 더 불행한 것은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영웅이 없다는 것.
단편의 자잘한 생각들.
차창 너머 휘날리는 눈 속으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