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만난 명욱.

사내들의 만남이란 것이 고작 몇 마디 물어 보고는 침묵 속으로 빠져 드는 것.

한 잔의 술이라도 놓으면서 지난 일들 떠올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청암길 등반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짙어져 가는 산색의 가을 날 표범길에서 영길을 오르는 너를 본다.

그리움은 곳곳에 숨어 있구나.

 

 선인봉 영길

 

 

 

 2.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그 길을 바라 보았지.

박쥐길.

길게 뻗은 박쥐 모양의 날개를 잡고 올랐던 그해의 기억은 생생하고

작년 도봉산 산행하면서 신선대 전망대 바로 앞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봉우리인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을 보면서

우리가 올랐던 길들은 큰 봉우리의 한 부분이었음을 느낀다.

 

 길은 이어지고 얽혀서

표범길에서 1, 2를 오르는 모습이 잠깐씩 보이다가

드디어는 4P에서 만난다. 

 

 옛날엔 그 곳에 박쥐들이 많아서

저녁 나절이면 떼지어 날아가고해서

길의 이름이 그렇게 되었다는

하산하면서 병태형에게 들은 길에 얽힌 이야기.

 

 그 많던 박쥐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생각하면서 뒤돌아 보는 산.

어디 변한 것이 하나 둘일까.

 

  표범길에서 본 박쥐길 등반 모습

 

 

 

 

3.

 선인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길.

캠과 제대로 된 암벽화가 없었던 지난 시절에 

이 구간(표범길)을 선등 섰다면

암묵적인 클라이머스로 인정을 받았다고 병태형은 이야기를 한다.

지난 시절보다 장비는 더 좋아지고 있는데

옛 사람들이 지녔던 마음의 기운을 따르지 못함을 오늘 이곳에서 느낀다.

 

 짙푸르렀던 나뭇잎들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며 색색의 빛을 발한다.

흐린 하늘 어느 틈엔가 걷히고

뒤로는 서울이라는 낯선(정태춘 - 북한강에서) 도시가 눈 앞에 펼쳐진다.

저멀리 남산 타워가 보이고

내가 있는 곳이 어디쯤일까를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1P를 오르는  선등자의 모습을 지켜 보다가

긴장된 탓인지 요의(尿意)를 느낀다.

 

 둔한 몸을 탓하며 오르는 표범길.

나도 주변에 펼쳐진 자연을 노래하고

날렵한 표범의 동작처럼 오르고 싶었지만

미끄러지는 신발을 탓하며 서다 가다를 반복하고

석굴암을 타고 오르는 불경 소리 들으며 호흡을 가다듬다가

이렇게 낯선 도시까지 성큼 내려와 앉은 가을 빛을 본다.

 

 바로 옆의 청악길을 가뿐히 오르는 등반자를 보면서

무지랭이인 나는 그저 선망의 눈으로 가벼운 경탄을 보낸다.

바위에 가려 산은 보이지 않고 힘들게 오른 표범길.

 

 선등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표범길 1P 트래버스(등산이나 스키에서, 비탈면을 횡단하는 일) 구간

 

  2P를 향하여

  3P 트래버스 구간

 4P를 향하여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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