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나와 차를 타고 생각하니 메트레스를 빼먹고 왔다.
산에 갈 때 만큼은 조신해서 물건을 챙긴다고 평상시 생각을 했
는데 이젠 하나씩 둘씩 잊어버리는 것이 서서히 다반사되면서
한편 이것이 삶의 순리일까.
겨울철엔 메트리스가 없다면 한데서 잠자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원통에 들러 메트레스를 찾았지만 깔개만 있어 그것으로 대용하
기로 한다.
말없는 발.
밤길 낮보다는 시원하니 1시간 조금 넘은 시간에 백담사 주변에
도착.
멀리서 보니 백담사 주차장 주변의 자판기와 화장실의 불빛이
환하다.
일단은 도착해서 비박지를 정하는데, 물가보다는 백담사 승강장
서 자기로 한다. 깔개의 부실함과 과거 물가에서 잤을 때 그 어
지러운 물소리 때문에 밤새 뒤척이던 기억때문.
자판기 불빛에 의지하여 밤12시 넘은 시간에 술을 마신다.
마트에서 사온 닭꼬지와 번데기를 안주삼아서.
밤하늘 조금씩 맑아 온다. 지역에 따라 비 올것이란 얘기에 조금
은 긴장을 했었는데.
그런데 술을 마시다가 자판기를 씌운 천정의 기와를 보니 불제
자들이 성금을 내고 발원의 내용을 적은 기와였다.
재미있다. 그 이름모를 선남선녀들은 사찰 불사의 기와가 되기를
소망하며 발원의 마음을 적었을텐데, 어쩌다보니 백담사 자판기
를 보호해 주는 기와가 되었구나.
알 수 없는 쓴 웃음만 나오고, 날은 어두워진다.
두어 시간이나 잤을까?
3시 30분 넘어서 새벽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
진다. 맑은 종소리보다는 오늘의 산행을 위해서 좀 더 자야하는
데 하는 생각과 동행인의 강가에서 비박하자는 말을 들을 껄하는
뒤늦은 후회감이 밀려온다.
으으으, 처음에는 맑게 들리는 것 같더니
이 잠을 더 자야하는 비천한 중생에겐 고역이다.
봉정암서 비박할 땐 종소릴 못들었는데, ( 그 땐 가을이어서 그
랬나? )
에잇, 다신 절 옆에선 안잔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을 하지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과거에도 알았더라면.
김영동의 "선"
종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예불문 소리를 좋아 여러 번 들었었는
데, 이 무지랭이 중생은 자기 불편한 때는 다른 것에 대해 안중
에도 없으니.
과거의 어진 마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40 넘어서는 자신의 내면의 모습이 얼굴에 다 나타난다고 하는
데, 이기적인 모습. 큰일이다.
깊은 지난 밤
오세암으로 간다던 그리고 혼자서 봉정암까지 간다던 사람들
다들 한밤중 길 잃지 않고 잘 찾아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