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밤길을 걷는다.

달은 보름으로 향하고 있고. 랜턴 불빛에 의지하지 않아도 길은

흐릿하게 보인다.

간혹 숲 아래의 길을 가다보면 온통 컴컴하다.

보이는 길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

앞이 보이지 않음으로 인한 마음 속의 불안과 한편의 두려움.

다시 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걷는다.

밤하늘의 별이라도 보여야 마음 총총할텐데.

보이는 건 흐릿한 달과 물소리에 어우러진 바람소리.

 

 대학시절 우리 2학년때 설악산 간다고 용대초교 앞에서 내려서

잠시 화장실 갔다왔더니 내 배낭엔 재분배된 감자며 기타등등의

무거운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더운 여름날.

비질거리며 무거운 것을 첨 맨 어깨는 끊어질듯이 아파오고, 잠

시라도 쉬면
땅바닥서 가볍게 뛰면 그저 2메타 정도는 가볍게 공

중부양될 것같은 심정.

그 때의 고통과 함께 두 다리로 전해져 오는 백담사 가는 흙길의

부드러운 쿠션을 잊지 못한다.

 퍽퍽한 시멘트 길. 옛길의 운치는 이미 사라지고

백담사길을 갈 땐 두다리의 고단함만이 밀려 온다.

그나마 낮에는 계곡이라도 보는 시선의 빼앗김도 있지만,

밤은 그래서 바람 소리로, 물소리로 위안을 삼으며 걷는 수 밖

에.

두런두런 옛일을 나누면서 걷는 오랜만의 한적함.

반복되는 일상들.

 머리 속으론 텔레만의 "풀륫, 현, 바소콘티뉴오를 위한 협주

곡"의 1악장이
반복적으로 맴돌고 있었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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