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후 나절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명성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으로 향하는 동네 마을엔 "화장장 설치 반대"라는 플랭카드가 곳곳에 걸려있고,
걸려진 플랭카드의 숫자만큼이나 나빠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걱정한다.
이곳 철원 지역에서도 "대형 양계장 설치 반대"를 알리는 플랭카드가 만장처럼 치렁이며 펄럭이고
다른 한 편의 목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가을 날 억새에 대한 추억을 세우기 위해 찾은 곳.
호수 한 켠으론 관광객들 드문드문 보이고
계절로 인해 주변의 스산함이 더해진다.
복사한 지도를 꺼내 갈 곳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책바위 목조 계단을 오르며 들리는 국적불명의 음악 소리.
여러 소리들이 서로 섞이어 소음을 유발하고
옆으로 보이는 매끈한 바위길.
오후 느릿하니 시간은 흐른다.
잎들 떨어져 하늘 가리지 못하고
나뭇가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겨울 산.
팔각정으로 향하는 능선 길은
눈으로 덮여져 겨울이라는 계절을 실감한다.
억새 대궁만 남아 있고
저 너머 하늘 중턱에 널린 반달.
사격 훈련 중이라고 그곳에 있던 군인이 더이상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
멀리 흰 눈 덮인 삼각봉이 보일 듯한데
오르고자 했던 명성산정 머릿 속에서만 맴돈다.
산정에 서서 궁예봉과 궁예능선을 보면서
지난 날의 이야기를 반추하려고 했지만
오후 햇살은 길게 늘어지고 바람도 불어
스산해지는 시간에 결국은 발길을 돌린다.
오르지 못한 산.
마음 속에 그려 넣고 옛날 궁왕처럼
나도 큰 소리 내어 오르지 못함에 대해 울어나 볼까를 생각한다.
오후 햇살을 받은 호수면이 반짝하며 눈이 부시고
자인사 쪽으로 내려 가는 계곡 하산길 가파르다.
2.
집에 들어와 지네트 느뵈가 연주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다.
모노반으로 듣는 음악 소리는 뭉개져서 둔탁하지만
그 속에서 빛나는 연주자의 정신을 느낀다.
핀란드 겨울의 황량함이 흐릿하니 펼쳐지고
점점 더 추워질 이곳의 날씨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서른 젊은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요절한 연주자의 못다한 꿈이 다가오고
흐린 음원에서 느끼는 전설이 주는 서글픔.
오르면서 본 산정호수
팔각정 주변 경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