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추억을 안은 자는 이곳에 오지를 말라.
월정사엘 갔었네.
매표소를 지나 그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로 언뜻 보이는 계곡을 옆으로 하면서. 대학시절 노교수님께서 하신 탄허스님 이야기, 여름 날 진부에서 만원 버스를 타고 들어갔던 일, 춘천의 여학교 있을 때 애덜 델고 오대산 수련원에 야영을 들어 왔다가 다음 날 몰래 빠져 나와 상원사를 거쳐 비로봉까지 올랐던 일, 겨울 비로봉 정상의 석탑에서 인간에 의해 나태해진 다람쥐를(겨울 잠 자지 않고 등산객이 흘린 부스러기를 주어 먹던 그 다람쥐) 보면서 찍었던 사진 한 장. 바닥이 아득하게 먼 산중의 해우소. 눈 덮인 흰 산의 모습들. 하늘 향해 솟은 전나무들의 내음.

 월정사의 경내는 좁다.
주변의 부속 건물 증축으로 인해서 경내가 더욱 좁아 보인다. 나중에 조성된 석조물, 입구 한 편에 위치한 기암 등으로 인해서 과거 사찰의 호젓한 맛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다시금 지었으니 과거에 느꼈던 사찰의 모습과 지금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은 차이가 있을 런지도. 더 많은 물질적인 것으로 치장을 함으로써 절의 위의가 드러나는 것일까?

 충남 수덕사에서 본 물량공세의 불교 석조물. 그것은 오히려 그 절에서 수행을 했다는 경허와 만공 스님의 행적과 그들이 남긴 유물들을 무색하게 한다.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 하여 과거의 추억을 가진 자는 늘상 새로운 시선을 갖지 못하는 법. 그리하여 한 때 추억이 어린 장소에 가지 말것. 흐릿한 날씨 속. 우산을 접었다 다시 펴고, 전나무 숲으로 한 줄기햇살을 통해 내려 비춰진 빛이 그리워지는 오후.
 도니제티. 남 몰래 흐르는
눈물.
 마침 듣고 있는 씨디 샘플러에서 흘러 나온다.

 월정사 경내의 8각9층 석탑 앞의 석조보살좌상은 어디로 갔을까?

 이런 날에는 내친 김에 상원사까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먼지 풋풋한 그 길을 떠올리면서. 마음 속으론 문수보살도 만나고, 고양이도 만나고, 소신공양의 의지로 상원사를 화마에서 구한 방한암 선사도 함께 하며 계곡의 하늘을 향한 전나무로 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이라도 보면서 그렇게 걸을 일이다.

 과거의 추억을 가진 자 더 이상 그 추억 속에서 전진하지 못하리.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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