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후배가 부탁한 곽성삼의 "길"이라는 엘피판을 걸고,
카셋트 데크 끄집어 내어 선 연결하고
녹음을 준비한다.
프리 앰프 뒤로 다닥하니 어지러이 물려있는 선들.
신호의 흐름이 좋고 어쩌구 해서 선에두 투자를 해야하고
소프웨어인 엘피판도 사야했고
그리고 밤늦도록 음악을 들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칙칙이는 엘피판의 스크래치 속에
고스란히 살아 돌아 온다.
MM형 카트리지를 쓰다가 MC형 카트리지로 바꿨을 때
나오는 소리의 미묘한 섬세함.
기기의 바꿈질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생각했었고
소리의 황홀 속에 빠져 들었던 시절이 아스라니 밀려 온다.
재킷에서 엘피판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 놓고
브러쉬로 먼지 털어 내고 수전중증의 손을 들어
긴 숨 내쉬며 카트리지를 얹는다.
골따라 가면서 나는 둔탁한 소리들.
10여년 전의 엘피판을 보면서 구입하면서 재킷 뒷면에 쓴
감상적인 글들을 읽으며 옛 상념에 빠진다.
지금은 옛날의 열기가 식어 버린 것은 아닐까?
턴테이블 위로는 먼지만 켜켜이 쌓이고
오히려 시간이 없음을 탓하며 변명과 자위를 하는 일상들이
늘상 전개되고 있는 요즈음의 삶.
하는 일이라곤 학교 컴터에 씨디나 넣고
이어폰을 통해 간혹 음악이나 들으며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혹이나 열정(passion)을 잃어 버린 것은 아닐까?
5월 눈부시게 맑은 하늘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