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0. 10. 08. <시간기록>
(17:20) 속초 무정차 - (19:20)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석식, 버스이용 - (20:45) 설악동 매표소 - (21:15) 비선산장
설악으로 떠나기 전날 늦은 시간 뒤적거리며 짐을 싼다.
출발 전의 설렘은 언제나 남아 있고
날씨관계로 기상청을 확인해 보니
설악산은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작은 양의 비소식.
설악산의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놓고
창 밖을 보니 날 흐리다.
안 하던 운동 조금했더니 운동 후 허리에 통증이 오고
갈것인가 말것인가에 대해 잠시 고민을 한다.
마음 다잡고 서브카메라와 줌렌즈 삼각대 만지작 거리다 짐에서 뺀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삼각대를 어찌할 것인가를 놓고 또 고심한다.
기상청의 예보대로라면 날씨가 나빠서 노출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갈등을 하다가 부실한 허리를 탓하며 마음을 접는다.
속초로 가는 버스 차창으론 가는 빗줄기가 차창으로 부딪히고
연실 내다보는 차창 밖의 밤하늘.
가느단 빗방울 뿌리는 밤.
저멀리에 빛에 반사된 사물은 기묘한 형색으로 감각에 인지되고
그래서 불빛에 의지해서 근시안으로 길을 걷는다.
가는 길 주변에 물소리 따라 오르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옛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영화 "유혹의 선"의 한 장면을 생각해 내고
지나간 시간 곰곰히 생각하니 발걸음 저절로 바삐 움직인다.
2.
2010. 10. 09. <시간 기록>
(03:10) 비선산장 출발 - (05:33) 마등령 - (05:40) 마등령 안부, 조식 - (06:11) 마등령 안부 출발 - (07:46) 1,275봉 - (08:20) 신선대, 주변 경치보며 사진 찍으며 가을빛 완상 - (10:44) 신선대 출발 - (11:17) 희운각대피소 - (12:42) 소청, 중청 갈림길. 중식 - (13:20) 갈림길 출발 - (13:40) 중청 - (14:04) 끝청 - (16:00) 갈림길 - (17:22) 한계령휴게소
산장아저씨가 깨워서 일어나니 2시 45분.
다행이 비는 안 온다고 한다.
산장 밖으로 나서니 헤드랜턴 불빛이 꼬리를 물고
스틱소리에 맞추어 수많은 등산객이 어둠을 가르고 있다.
혼자서 호젓하게 하려던 산행은 이미 물건너 가버리고
한 무리의 등산객 속에 묻혀 바쁘게 발을 움직인다.
비에 젖은 떡갈나무 잎사귀
불빛 받아 반짝이고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장군봉 남서벽.
맑던 날씨 어느 순간에 산안개가 끼고
마등령 오르막 길.
길이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지루하다.
1,275 봉을 오르며
산안개가 가득 차서 시선은 멀리 나가지 못하고
터덕이면서 주변의 산군을 돌아다 본다.
산은 어느새 붉은 옷을 갈아입고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보이기 시작한다.
운무는 바람따라 산등성이를 넘으며 한 편의 진경산수를 보여준다.
산 안개에 가린 주변의 풍광들.
나아가지 못하는 시선 다시 근시안이 되어 퍽퍽한 발걸음을 옮긴다.
1,275 봉 오름길 다리를 더욱 퍽퍽하게 만들고
보이지 않는 봉우리 쳐다보며
산정에서 보낸 지난 날을 생각한다.
능선 길 앞만 보고 가다보니 홀연 신선대가 보인다.
신선대에 올라 오던 길 보았지만 운무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운무 걷힐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기로 한다.
40여 분 지나서 조금씩 거풀을 벗기 시작하는 운무.
산 안개는 아주 조금씩 산의 모습을 보여 주고
범봉 그리고 저 멀리의 울산바위.
이런 날에는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 밖에.
오랜 시간 지나서 1,275봉을 잠깐 보여주고 다시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갈 길이 먼 생각에 발길을 옮기며 다시 되돌아 보는 산자락.
아쉬움은 언제나 마음 속에 있고
그래도 두어 시간 이상 그리움의 가을 산을 보았으니
공룡능선에서 보낸 가을 날을 생각하며
그것으로 만족하며 몸을 움직이는 수 밖에.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OP.78 이 생각이 났지요.
햇살 강렬하고 따뜻한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느낀 정서.
정열과 밝음 속 저 밑바닥에 내재한 서정성을 띤 애수가 절절히 밀려 오고
가을 산을 보면 한편의 풍요로움과 함께
브람스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게 되는 가슴 한 켠에선 허허로움이 밀려왔지요.
범봉
산에 온 수많은 사람들.
능선 길 빠져 나오면서 마주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된비알.
바리바리 싼 20여 키로 무게의 배낭이 지구의 중력을 느끼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이 되다.
동계산행 때 아침나절 음주의 상태로 오르다가
두세 발자국 떼고 쉬곤하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나고
저 멀리론 지나온 공룡능선 신선벽과 범봉 1,275봉이 보인다.
세상에 어디 쉬운 일이 있을까를 생각하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과
주변에 알락달락하니 봄의 산빛과 맞닿아 있는
가을 산빛에 시선을 빼앗긴 채로 오른다.
다시 운무에 싸인 중청길.
길 왼편으로 있을 산장과 대청봉을 마음 속으로 그리고 내려 오는 하산길.
아쉬움에 뒤돌아 보지만 운무에 모든 것은 가려져 보이지 않고
가을 산이 주는 넉넉한 아름다움에 취해 다시 부르는 그리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