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선산장으로 가는 밤길.
느릿하니 걸었지요.
저 멀리 등성이로 오르는 보름달을 보며
그 밝음으로 눈이 부셨고
한 달여 남지 않은 대보름을 생각했었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어울린
밤 바람 소리를 들으며 피아노곡 떠올렸었지.
낭만을 상실해 가는 둔한 시대에
다시금 낭만에 대해 생각해 보았네.
2.
오랜만에 등반을 했었네.
장군봉 기존길.
들머리를 찾지 못해서 서성이다가
앞에선 커다한 바위산을 보고 가슴은 뛰었지.
짧게 깍은 손톱에다
운동 부족으로 믿고 의지할 것은 없는데
마지막 등반자(말자)가 되어 올랐지.
첫 슬랩에서부터 긴장을 하여
숨은 헐떡이고 흘러 떨어지는 땀들.
1P 끝날 때마다 가쁜 숨 몰아 쉬고
가야할 길은 일곱 마디.
산장에서의 물갈이 등으로
급기야는 배까지 아프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몸.
그걸 잊기 위해서 바위산 중턱에서
수십 곡의 노래를 불렀지.
3.
금강굴 아래 전망대에서 나는 들었네.
젊은 등산객이 가져 온
휴대용 소형 스피커에서 나는
쇼팽의 피아노 곡이
여름 산과 어울려 짙은 녹색의 음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지.
장군봉과 인접한 적벽에서는
아직도 등반하는 사람들이 벽에 붙어 있고
팔등을 좌우로 돌리면서
그해 늦여름의 흔적을 찾고 있었네.
장군봉 기존길 1P (WITH G10)
선등자의 고독
비선산장 주변 소경
장군봉 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