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울산바위기(나드리길)

  첫째 날(2005.08.07. 토, 춘천-서석-구룡령-양양-설악동-울산바위 가는 길 중간 쉼터)

   8월 7일 저녁 20시 실내암장에서 동행인을 만나다. 실내암장에서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점검하고 빠진 부식거리 등을 확인하고 코렉스마트에 들려 필요한 것을 사서 출발하니 21시. 휴가철인 점을 고려하여 홍천 서석을 경유하여 구룡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는 노선을 택하였다. 고속도로를 타고 홍천에서 우회도로를 타니 작년까지 다녔던 길들이 눈에 익숙하다. 서석까지 조금 차가 보이더니 구룡령 들어서는 길이 널널하다. 마음은 이미 등반 대상지인 울산바위에 가 있고, 그곳에 대한 긴 사념에 잠긴다.

  우리나라 거대 암벽등반 대상지로 89년도 록파티 산악회에 의해 개척된 곳. 3박4일 소요되는 돌잔치길, 2박3일의 하나되는 길, 1박2일의 나들이길 등의 크게 3개의 등반루트를 가지고 있는 곳. 미시령 길을 오르면서 차창 너머로 비추는 바위들의 우뚝 솟은 모습은 암벽등반을 하는 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곳. 우리는 설렘을 안고 지금 그곳을 가는 것이다.

  막히지 않은 길을 선택한 덕분에 밤 23시 30분 조금 지나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차시키고 주섬주섬 정리하고 짐을 싸들고 울산바위가 있는 신흥사 쪽으로 이동한다. 출발 전에 헤드램프를 점검했건만 밧데리가 소모되었는지 흐릿하다. 그리고 얼마만의 야간산행인가를 생각해 보니 불빛은 가물거리고 결국은 동행인의 손전등 하나 빌려 오른다. 길 왼쪽의 신흥사 문은 닫혀 있고, 외등만이 환하게 비추며 지나가는 이들을 인도한다. 조금 지나 다리 위에서 물가 쪽의 비박지를 살피다가 물소리가 시끄러울 것 같아 조금 더 오르기로 한다. 숲 주변이여서인지 밤길 어둡고 한 편으로는 별들이 총총하다. 첫 상가지점에서 시간 관계 등 을 고려하여 비박하기로 결정하고 메트레스 깔고 침낭커버 꺼내서 잘 준비를 한다. 코렉스마트에서 장 봐두었던 튀김과 순대 꺼내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가 잠이 든다.

  둘째 날(나드리길 릿지 등반: 지옥문 동굴-전망대 철계단-누운 바위 동굴)

  아침 일찍 지나가는 탐방객들로 인해 눈이 떠지다. 햇반 2개 데우고 우거지 봉지국을 먹으니 눈앞이 환해진다. 짐 정리하고 다시 오르면서 본 아침 울산바위의 위용. 가벼운 흥분이 일면서 다시 가슴이 설레임을 느낀다. 계조암 밑의 상가에서 1.5 패트병과 날지 물병에 물을 채우고 들머리를 찾는다. 상가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사람 기척이 난다. 그래서 가보니 스님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등반 대상지의 들머리인 지옥문을 물으니 지옥문에 가서 무엇을 하느냐며 반문을 한다. 바위에 접근해서 우측으로 트래버스해서 내려 오니 제1지점인 지옥문이 떡하니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울산바위 동남쪽 가장 끝 부분에 있는 큰 동굴인 지옥문은 3개의 등반루트가 시작되는 곳이다. 지옥문 이 이름을 돌이켜 생각하건데 울산바위 등반 자체가 지옥에서 겪는 갖은 고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동행인 출발 들머리를 찾지 못해 책을 보고 찾고 있던 중 굴을 지나 돌잔치 길을 등반 중인 여성 두 사람에게 물으니 나들이길의 출발은 우측 숲지대 입구로 가야한단다. 클라이밍 다운을 할까 생각을 하다가 배낭의 무게를 고려하여 나무에 로프를 걸고 하강을 한다. 좌우를 둘러 봐도 출발지점 표시는 없고 다시 책을 꺼내 놓고 주변의 지형을 확인하고 오르기 시작한다. 경사는 진데다가 밑의 바위는 푸석하고 잡을 홀드조차 없고 간신히 오르니 큰 동굴이 앞을 막는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어둡고 습한 상태로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몹시 두려워 할 것이다. 동굴을 통과하니 또 다른 우측으로 40도 정도 경사진 좁은 동굴이 기다리고 있다. 동행인 먼저 안 나오는 자세에 끙끙거리며 먼저 올라가고 나는 밑에서 배낭 집어 올리고 습한 동굴 습도와 열기로 인해 안경에 김이 서리고 닫힌 좁은 동굴에서 숨은 턱턱 막혀 온다. 간신히 동굴을 빠져 나오니 우측에 반 침니가 기다리고 있고 동행인이 선등을 하여 오르고 줄을 내려서 배낭을 끌어올린다. 중간쯤 가다 바위 턱부분에 걸려서 힘 주어 잡아당기니 아이고 내 배낭 멜빵 사이 연결고리의 실밥이 툭하니 터지면서 배낭이 허공 중에 내동댕이 쳐진다. 한편 사람 손이 안 미치는 곳에 떨어진 것이 다행이라며 위안을 삼는다. 가로로 묶은 빨래판 메트리스는 양쪽이 서서히 닳고 있고 손바닥도 거친 화강암 때문에 아려온다. 결국은 쥬마를 이용하여 등반하는데 배낭의 무게로 인해 숨이 턱턱 막힌다. 전망대 전까지의 루트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길 찾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동행인이 나중에 다시 갈 때 스프레이 들고 가서 우리가 길 찾지 못해서 헤매이던 곳에 표시를 하자고 제안을 한다. 결국은 3봉과 4봉 사이의 안부 지점에 도착하여 초코렛에다 양갱 먹으며 점심을 때운다. 이때 동행인이 더덕주 한 잔 하자며 꺼냈고 향그런 술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배낭 속을 뒤지니 암장에서 가져왔던 복숭아 4개가 갈라지고 터져 있다. 양호한 것만 먹고 나머지는 산짐승들을 위해 보시한다. 멀리 속초 시내의 정경과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미시령 쪽으론 도로 공사가 한창 중이다. 햇볕은 내려 쬐이고 모자를 쓰고 안 쓰던 헬멧까지 쓰니 갑갑하다. 다시 오름짓하는 중 결국 동행인 신발이 밀려서 왼쪽 창을 뜯어내고 오르다보니 대형 촉스톤이 보이고 그 아래 울산바위 철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하강하기 위해 로프를 던지고 동행인이 먼저 하강하고 완료 후 하강하려 하는데 오버행이어서인지 자세가 영 안나오고 배낭 무게로 인해서 뒤로 홱 제쳐진 어정쩡한 상태에서 하강을 마쳤다.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멀리하고 보니 수많은 선남선녀들이 이곳을 오르고 있다. 전망대까지 철계단을 오르다가 등반하고 하산 중인 두 팀을 만나 서로 수인사하고 다시 돌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오른다. 전망대에서 암벽장비를 착용한 우리의 모습에 관광 왔던 외국인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칡즙 두 잔 사서 마시며 다시 우리가 가야할 곳을 응시한다. 하늘을 푸르고 맑으며 멀리 중청과 대청봉은 구름에 가려 희미하다. 우리가 전 번에 갔던 천화대 쪽을 찾아보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권금성 쪽으론 케이블카가 오르내리고 있다.

  잠깐의 휴식 후 아래 전망대로 출발한다. 이곳부터는 나들이 길을 알리는 노란색 화살표 표시가 나 있어서 앞부분보다는 길 찾기가 수월하다. 8봉 쪽 좌측 침니 쪽으로 클라이밍 다운하고 슬랩 쪽을 클라이밍 다운을 하니 넓은 테라스 지대가 나타난다. 하강하는 지점에서 살피니 하강용 볼트와 와이어를 새로 설치해 놓았다. 그전 신문 지상을 통해서 보니 처음 이곳을 개척한 록파티 산악회에서 볼트 정리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개척한 곳에 다시 와서 주변의 확보물들을 다시 정비하는 그들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좌측으로는 깊이 10여미터 이상이 되는 크레바스가 보이고 동행인 크랙에다 프랜드 설치하고 건너가서 로프를 픽스하여 배낭 먼저 보내고 나중에 내가 통과한다. 좁은 동굴을 통과하고 나니 안내 방향을 알리는 노란색 표식이 안 보인다. 동행인이 앉아서 또 책을 들여다보고 좌우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등반해야 할 길만 보이지 릿지길은 보이지 않는다. 좌우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은 노란 표식이 머리 위에 있음을 알고 서로가 실소하며 오른다. 하늘은 흐려 있고 드디어는 약간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천둥이 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바람이 일고 먼 곳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들린다. 마땅히 비 피할 곳도 없어서 계속 진행하다가 약간의 처마가 진 바위 밑에서 비를 피한다. 나중에 생각하건데 이때 캠프싸이트 및 오아시스 지점을 지나친 것 같다. 바람을 타고 비는 줄줄 내리고 가깝게만 보이던 속초 시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비는 점점 거세어진다. 한편으로는 오늘밤 숙박지와 비가 계속될 경우 내일의 등반에 대한 걱정이 마음 앞에 선다. 비가 조금 약해지자 동행인 비박지 찾아본다며 먼저 나서고 나는 내리는 비나 보면서 빨리 멎기를 기원하는 수 밖에 별도리가 없다. 조금 지나 동행인이 돌아 왔고 비박지를 찾아 우측 숲지대를 지나 누운 바위 동굴에 도착하였다. 배낭을 풀고 메트리스를 깔고 긴 바지에다 오버복 상의를 입고 앉아서 밖을 바라보니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바람은 위와 아래에서 불고 바람소리가 귀에 따갑다. 빗물이 고여서 밑으로 떨어져서 물통 들고 가서 빗물을 받았다. 바람이 너무 심하여 개스 버너에 불을 붙이지 못하고 바람 잦기를 기다리며 그저 비 내리는 설악산의 정경이나 하염없이 쳐다보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반찬 봉지에 보니 아까 추락먹은 것으로 인해 라면 봉지가 터져 있어서 생라면이나 씹으며 허기를 달랜다. 햇반과 봉지 카레를 아까 받은 빗물에 데워서 저녁을 먹는다. 동행인이 깔개를 꺼내 놓고 앉았다가 잠시 일어선 사이 부는 돌개바람으로 깔개는 하늘 위를 날며 춤을 추고 우리는 어어어 소리만 내고 어쩌지 못한다. 남은 더덕주를 마시며 가는 여름을 생각한다. 식사 후 별 할 일도 없어 침낭 커버 속으로 들어가 뒤적이다 눈을 잠깐 붙였을까 다시 바람 불고 그 바람소리는 우우우하며 우는 소리인것도 같고 하강기류가 올라와 우리를 공중부양 시키는 것도 같고 또 아까 먹다만 라면봉지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자꾸 나서 신경을 쓰게 만든다. 아마 조그만 들쥐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다시 짐정리하여 배낭 안에다 넣고 잠을 청하지만 밤새 들리던 밤바람 소리에 서로 몸을 뒤척이고 급기야는 침낭 안으로 들어와 귀를 감싸도 지독한 바람 소리는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아침나절 바람이 잦아들어 조금 잠을 청했다.

  셋째 날(누운 바위 동굴-침니-동굴 통과-크랙등반-숲지대 워킹-하산)

  밤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은 날씨에 따가운 햇살. 햇반에 북어 봉지국. 서로의 패트병에 남은 물을 물병에 넣으니 각자 2/3 정도가 된다. 동행인 더운 날씨 때문에 물 걱정을 하고 한편으론 책자를 열심히 들여다보니 오늘의 출발은 이 누운바위 동굴을 출발하는 것이 시작인데 빠져나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동행인이 아침에 깔개 날라 간 지점 배회하다 깔개 찾아 돌아오고 다시 보니 침낭주머니가 안 보인다고 한다. 짐을 정리하고 출발. 배낭을 벗고 태고적 인고의 출산을 생각하며 한편으론 덩치가 큰 사람이 이곳을 빠져 나올 수 있을까도 생각해본다. 좁은 침니가 앞으로 보이고 침니를 통과하니 그 아래 좁은 동굴이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매우 좁은 바위 틈을 빠져 나와 보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책을 보고 주변에 위치한 좁은 침니를 넘어 살펴보지만 그곳엔 조그마한 공터만 있고 아래로는 빽빽한 숲 지대이며 위로는 등반해야될 지점이 보여서 다시 원점으로 향한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위로 올라가서 보니 아래의 커다란 바위에 가려서 못 봤던 하강볼트가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위치한 곳에 슬링이 하나 매어 있었는데 그것은 결국 확보용이었던 것이다. 하강을 하고 다시 주름바위 및 넓은 크랙이 나온다. 넓은 크랙에서 동행인 결국은 오른쪽 릿지화 밑창마저 떼어버리고 이젠 완전히 양 발이 릿지화 창이 없는 상태에서 선등을 선다. 입구에서 프랜드를 설치하고 오르는데 나무 등걸이 보이는 중턱에서 배낭 무게로 인해 끙끙거리며 애를 쓴다. 불쌍해라. 우리의 선등자. 손등과 팔목은 프랜드 설치하느라고 긁힌 자국이 역력하고 게다가 바닥 창이 없는 릿지화로 등반을 하려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나무 등걸에 확보를 하고 다음 위의 테라스 큰 나무쪽으로 등반한다. 작은 바위들이 겹쳐진 지대에 크랙 등을 이용하여 15미터 정도 오른다. 그리고 루프 아래 쌍 볼트에서 10미터, 큰 소나무에 줄 걸고 20미터 하강을 하니 좌측의 숲지대가 나타난다. 날씨가 덥다. 숲지대 벽면으로 혹시나 간 밤 내린 빗물이 벽면에 흐르지나 않나 살펴보지만 물기만 머금은 바위 벽면만 보고 달랑대는 물통을 바라본다. 덮다. 바람이라도 불면 좀 나으련만 훅하니 오르는 여름 열기에 몸은 움추려 들고 숲지대를 지난다. 가까이 보이는 봉오리들이 나드리길의 마침을 알리고 있었고, 한참이나 숲지대를 우회했건만 등반로는 보이지 않고 잡풀만이 정강이를 스친다. 결국은 숲지대 우회로를 찾아서 크랙 및 슬랩을 트래버스를 해야하는데 노란 표시는 보이지 않고 내원골 족으로 하산을 결정한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찌하랴. 산은 늘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우리가 다시금 시간을 내서 찾는 수 밖에 별반 도리가 없다. 남겨둔 물로 목을 축이며 한편 여름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잡풀 속 헤매다 길 찾고 골짜기 시원한 물 마시며 나오니 다시 덥다. 한편으론 우리가 올랐던 울산바위 쪽으로 계속해서 시선이 가고 2박3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다음에는 하나가 되는 길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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