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보길도 - 땅끝(전망대) -대흥사 - 월출산(천황봉) - 온천욕 - 강진
배시간에 대기 위해 아침부터 몸을 뒤척인다. 밤새 불던 바람은 이제
지쳤는지 잠잠 하기만 하다. 어제 밤중에 도착했던 예송리의 해변가를
아침에 나가 볼 요량이었으나 날은 어둡기만 하다. 그래서 포기하고 주
섬주섬 짐을 싸서 선창으로 나간다.
아침나절부터 선창은 완도로, 노화도로, 땅끝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하
고 다들 섬에서 나온 사람과는 다르게 말쑥하다. 여객선에 오르니 바닥에
담요가 깔려있지 않은 관계로 엉덩이가 차다. 모자를 깔고 앉아서 멍하니
텔레비를 본다. 전압과 전파 관계로 화면은 종종 일그러지고 그래도 사람
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무 말 없이 보고 있다. 선실 밖으로 나가니 아
침바람이 맵다. 멀어지는 주변의 섬들. 언제 다시 올 것인가 ?
토말에 도착하여 주위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른다. 바다의 색이 탁하다. 비
앞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후 가고파"라도 부르려고 했지만 배가 등가죽에
붙은 관계로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다 본 토말 선창의
모습이 아침 햇살과 함께 한가롭다. 아침을 먹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았
으나 결국은 포기를 하고 대둔사(대흥사)로 향한다.
대둔사에서
산문에서 경내로 들어 가는 긴 길은 운치가 있어서 좋다. 주변의 가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일주문을 지나 입구에서
본 부도밭. 많은 부도들을 통해서 이 절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한편으로
생각한다. 서산대사의 부도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살핀다. 아, 찾았다. 역
시 다른 부도보다는 수려한 외형을 하고 있다.
사찰의 남원 쪽에 도착. 가허루 앞쪽으로 공사관계로 자재를 쌓아 놓은
것이 어지럽다. 북원의 대웅보전 앞에서 현판 글씨를 보고 아침 예불 시
간인 관계로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에 생동감을 느낀다. 오랜만에 들어 보
는 불경소리. 천불전 내의 옥돌로 만든 천불상을 보고 나의 소원도 빌어
볼거나.
아침 시간이어서 인지 두륜산(672) 산행을 위한 등산객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띤다. 유명한 사찰치고 주변의 산이 수려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이 오늘의 깨달음일까 ?
부자 절을 뒤로하고 터덜터덜 내려오다 유선장 앞을 지나간다. 여관의
그 흰둥이는 어떻게 됐을까 생각을 하다가 답사기 3편의 후기 내용이 생각
나서 여관의 거죽만 둘러보았다. 방 앞에 붙은 각각의 이름이나 액자에
걸려진 그림 등이 옛 냄새가 많이 풍긴다.
월출산을 오르며
ㅇ 매표소- 천황사 - 구름다리 - 매봉 - 사자봉 - 통천문 - 천황봉 -(하
산)
바람폭포 - 천황사 - 매표소
통천문 - 경포대 - 야영장
전 날 본 월출산의 모습에 다들 긴장하고 있는 것일까 ? 하긴 같이 간
대부분의 사람이 1 년에 두세 번 정도 산행을 하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관
계로 많은 신경이 쓰였다. 아침을 늦게 먹은 관계로 점심은 산에서 먹기
로 하고 라면 좀 사고 물병에 물을 넣고 준비를 마치니 오후 1시가 가까
워 온다.
매표소에서 천황사까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다. 곰곰이 생각하니 오늘
은 일요일. 가족과 같이 아이의 손을 잡아끄는 가장의 모습을 보니 한없
이 부러워진다. 어떤 사람은 양념통닭 들고 올라가고. 가지각색이다. 그늘
진 곳에는 눈들이 보이고 같이 간 일행 중 한 분은 아예 아이젠을 착용하
고 오른다.
구름다리 도착. 건너편 바위 봉우리의 모습을 보고 얼마큼 올라 왔는가를
확인한다. 반듯하게 경지정리가 되어 있는 농토들. 그리고 붉은 색의 향토
가 고향주변의 내음을 환기시켜 준다. 구름다리 위에서 다리 힘이 점점 빠
져 가고 있음과 함께 털썩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100여 미터 이상
이 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다시 앞으로 향하고.
아이구, 다시 다리를 건너서 바람골로 향해야 하는데 별생각이 없이 가다
만난 하산 중인 등산객에게 물으니 이 쪽으로 오르면 빙 돈데 나. 이 설명
을 듣자 일행의 일부는 벌써 내려가자고 하고. 우여곡절 끝에 수많은 철계
단을 넘어 천황봉에 올랐다.
시간은 4시를 향하고 있었고 서둘러 준비해 간 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정상에서의 잠깐 동안의 조망. 먼 곳에 보이는 구정봉의 봉우리에 내리 비
치는 햇살이 주변의 풍광과 어울려 따사롭다. 올라오면서 이렇게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는 처음이다. 정상에서도 바람은 정지해 있고. 서둘러 하산.
다들 이런 산행은(아마 상당히 고됐나 보다.) 처음해 보았다면서 내려 가
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을 바람골로 하산하게 하여
차를 경포대 쪽으로 가져오게 하였고 나는 나이 든 분을 따라서 내려 가기
수월하다는 경포대 쪽으로 갔다. 계곡 길의 내리막. 지리하다. 주변의 경치
를 볼 수 없다.
하산. 대기한 차에 올라 월출산 관광 호텔로 향한다. 단지 온천욕하기 위
해서. 목욕 후 곰곰이 생각하니 목욕요금이 6,000원이 너무 비싸다. 시설면
이나 수질도 좋은 상태가 아닌데 4,000원 정도의 요금이면(설악산 호텔의
온천욕 요금) 적당할 것이라고 다들 이구 동성으로 말한다.
강진으로 내려가면서 "해태식당"에 전화를 했다. 영암에서 출발시간이
늦은 관계로(20:30 이후에는 손님을 받지 않음) 가까스로 8시20분 경에 도
착하였다. 한정식 1인분 15,000원 2인분35,000. 5년 전에 이곳에 들렀다는
일행 중 한 분의 말에 의하면 그 땐 8,000원. 고물가 시대를 다시금 절감한
다.
알이 굵은 꼬막(이렇게 굵은 것은 처음 본다), 대하, 가오리, 굴비 그리고
육회 등에 이르기까지 20여 종에 가까운 찬이 나오고 술과 함께 둘째 날도
지나간다. 먹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