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여정: 춘천 - 광주 - 무위사 - 녹우당 - 땅끝 - 보길도
 
  떠나기 전 날 나는 당신에 대해 긴 꿈을 꾼다.
 떠나는 자의 들뜬 마음. 일상 생활에서의 탈출. 잘 다녀오라는 아내의 말에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전원 7명이 차량 3대에 나누어 타고 춘천을 출발하
였다. 가다가 졸리면 자고 깨다 하니 차는 벌써 광주를 지나 나주에 와 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

  무위사에서(소재: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무위사로 가는 길에 본 월출산의 위용이  일행의 마음을 억누른다. 월출산 정도
야 가볍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일까 ? 그도 그
럴 것이 호남의 평야에 우뚝  솟은 바위산의 모습을 보니 내일의 산행이 슬금슬
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세상의 일들이 힘이 들 때, 이곳 무위사에 오라.
절의 이름과도 같이 소박함 속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단청을 다시금 칠하지 않은 자유로움.
화려함 자체를 멀리한 극락보전을 보면서 풍상의 세월을 이겨 낸 우리네 부모님
의 모습을 읽는다.
 퇴색한 나무 기둥의 빛.
바람은 풍경소리를 통하여 그 흐름을 알리고 한가로움 속에서 느끼는 마음의
평화와 정겨운 풍경 소리.
바람마저도 정지해 가는 이곳에서의 시간.
 벽화보존각에 따로 모셔져 있는 불화들. 둥근 인자한 벽화의 상호.
가식이 없는 따뜻한 순수함 ― 무위사.

  녹우당(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해남 윤씨의 종가로서 전남의 민가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집이라고 한다.
입구에 서 있는 가지가 앙상한 500년 가량 묵은 은행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지탱
하면서 힘들게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윤선도의  후손이 살림을 하고 있기에 녹우
당 내부는 들어가질 못하고 발걸음은 인접한 유물 전시관을 향한다.
 윤선도와 증손인  윤두서의 작품을 모았고, 몇  년 전에 도둑이  들어와서 많은
자료를 분실했다고 한다.  윤선도가 직접 쓴 가첩을 보고 윤두서의  자화상을 본
다. 가느다란 털끝  하나 하나에도 신경을 써서 표현하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
인다. 18여 명의  첩자를 시켜 그들로부터 수집된 내용을 토대로  하여 그렸다는
일본여도를 보면서 사실성 여부에 혼란을 느꼈다.
 전시된 많은 자료들.
일반 인문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음양, 의학 등의 선인들의  넓은 학문에 대한
욕구에 경외감을 느낀다.
 명문 거족의 집안에  태어난 윤선도. 생의 대부분을 귀양으로  일관하지만 풍류
를 잃지 않고 산 문인. 결국은 경제적인 바탕이  되어야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서글픈 결론을 도출해 낸다.

 첫날의 대흥사 관람 계획을  내일로 미루고 보길도로 가기 위해 부랴부랴 땅끝
으로 향한다. 군데군데에서 언뜻 보이는 바다와  섬들이 살갑게 다가선다. 아, 남
해에 내려온 지가 언제였을까를 머리 속으로 떠올리며 시선은 바다를 향한다.
 땅끝 선착장 도착.
 더 가고 싶은데  갈 수는 없고 우리네 땅덩어리는  왜 이렇게 좁을까 ? 비릿한
갯내음과 함께 바람이 찾아  든다. 지프 차 한 대를 태우기로  결정을 보았고 배
타기 전 구멍가게에서 보해골드랑 골뱅이, 꼬막 통조림을 몇 개 샀다.
 배의 출발과 함께 술이 몇  순배 돌았고 일몰의 시간이 되어 밖에 나가 보았으
나 노을 빛이 흐릿하다.
 1시간 후 보길도에 도착.
 7명이 차에 꾸겨 타고 세연정으로 이동.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세연정에서 고산의  삶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본
다. 자신이 지은  어부사시사를 연주하게 하고 다른 쪽에서는 무희들이  춤을 추
고 그것을 감상하며  지내는 나날의 일상들. 이러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
나 많은 섬사람들이 동원됐을까 등등의 잡생각이  앞선다. 세연정 주변에 인접한
보길초등학교 담장이 눈에  거슬린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져 가고 있고  다시 차
를 타고 예송리  해수욕장 쪽으로 간다. 해수욕장에서 검고 둥근  돌을 찾겠다고
했지만 날이 이미 어두워져 버려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예송리 해수욕장 앞 한옥 집에 민박하기로 정하고 일부는 포구 쪽으로 회를 사
러 나가고 방이 더워지기를  기다리며 주인 집 방에 들어 가  텔레비를 본다. 과
년한 딸들이 손님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누워서 텔레비를 본다.
 밤은 깊어 가고 취기는 오르고, 문 밖으로 들리는 지천의 바람소리.
상록수 방풍림 사이를 지나는 가여운 울음소리.
오랜만에 밤새 듣는다.

Posted by 바람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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