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흔적
131030 가을애 # 3
바람동자
2013. 11. 4. 22:17
# 1
카메라를 새로 구입하면서 묵혀 놓았던 옛날 카메라를 아들에게 준다.
한동안 분신처럼 산행을 같이하며
그 일상을 기록했던 카메라를 만지작이며 지난 사진을 들춘다.
잃어 버린 과거의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한 장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내 눈에 비친 세계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기억보다 앞서는 것은 기록이라고 이야길하고
주변의 사물들을 담았던 지난 기억은 폴폴거리며 날리고
더 새로운 기종의 카메라가 나오면 쉽게 옛것을 버리는 단순한 삶을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서가 한 켠에 처박혀 있는 팬탁스 스포매틱을 보면서
기억은 흑백으로 오버랩되어 지나간다.
이제 그 카메라는 아들 손에 쥐어져서
따스했던 날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매체로 자리잡기를 소망하면서
손때가 묵은 카메라를 만지작 거린다.
# 2
한 마리의 베짱이가 되어 노래한 가을.
따슨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가을의 풍경은 살갑게 와닿고
내 눈에 비친 가을날의 풍경은 어떠했는가를 묻는다.
이제는 반팔의 옷을 벗어 던지고 긴팔의 옷으로 바꿔 입으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긴 가을 밤에 브람스와도 만나야 하고
또 다른 작곡가의 음악을 들으며 부족한 상상력도 채워야하고
영화도 꼼지락거리며 봐야하고
몸은 하난데 생각은 오만 가지로 길게 이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