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흔적

131025 가을애 # 2

바람동자 2013. 11. 4. 20:55

 # 1

 

 오후 시간.

해가 지는 것을 보기 위해 뒷산에 오른다.

아랫녘은 그나마 울긋불긋한 가을의 색을 띠고 있지만

오를수록 계절의 끝자락에서 느낄 수 있는 황량함이 밀려온다.

 

 

 무수히 떨어져버린 떡갈나무 잎을 밟으며

고즈넉하게 걷는 오후의 산길.

정상에 오를 무렵 붉은 해는 산너머로 넘어가고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의 보드러운 감촉을 기억하며

길게 드리워진 산 그림자를 바라본다.

 

 

 나무 끝에 걸린 어둠은

자신의 시간이 되었음을 알고 스멀거리며 내려오고

흐릿한 불빛에 의지하여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이는 가을 날 .

 

 

 - 금학산에서

 

 

 # 2

 

 아침 먹거리 뜯으러 나갔다가 시퍼렇게 얼어버린 상추를 보고 작은 혼돈에 빠진다.

다른 곳의 너른 뜰은 그 전에 서리가 내렸다는 소식을 남을 통해 들었지만

가을의 깊은 시간은 이젠 내가 사는 곳까지 내려와 몸을 움추리게 만든다.

 

 

 기상청의 예보는 올 초겨울부터 쌀쌀할 것이라고 알리고

성급한 아이들은 이미 오리털 파카를 입고 창가에서 꾸벅대며 존다.

영하의 날씨인 오늘 아침 긴 옷 짧은 옷에 대해 잠시 고민하다가

평상시처럼 반팔을 입고 집을 나선다.

아침의 한기는 피부로 스며들며 둔한 감각을 일으킨다.

 

 

 맨발의 디바 이은미.

온 몸이 울림통인 그녀의 열정적인 노래는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이어지고

이 울림을 느끼고자 그녀는 지금도 맨발로 노래를 한다.

가을이라는 계절에 다가서기 위해

그리고 그 계절의 미묘한 변화를 느끼기 위해

혹은 내려쬐는 햇살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반팔 셔츠를 아직도 입고 다니는 자신의 우둔한 변명.

 

 

 여름 나절의 한 마리의 베짱이가 가을을 노래할 수는 없지만

가을 시간의 흐름 속에 가까이 가서 온 몸으로 느끼고

풀벌레의 울음소리로 노래하고 싶은 시월 하순의 날.

 

 아침나절 나는 무서리를 보며 서서히 몸을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