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018 가을애 # 1
# 1
철원으로 가는 이른 아침
대중가요라고 적힌 십 여년 전의 씨디를 집어든다.
차 안에서 들으며
십 여 년전의 그 때의 일들이 눈 앞으로 펼쳐지며 갑자기 행복해지며
아름다웠던 그 시절이 오버랩된다.
한 편의 노래가 잃어버렸던 감각을 일으키고
그 노래에 얽힌 사연을 더듬거리며 기억하고
반짝이는 추억에 기쁨은 밝게 빛난다.
아름다운 계절 시월.
봄날의 한 순간과 같이 그렇게 짧은 시간이지만
다시금 둔한 감각을 일으키며
이 계절과 시간에 대해 나는 찬양하련다.
그리하여 그 시월의 기억들이 오롯이 살아나는 날.
또 즐겁게 노래를 부르련다.
시월 버킷리스트
- 하늘 향해 두 팔 벌리며 오후 나른한 햇살 즐기기
- 설악산 홀로 산행 비박하며 가을의 정취 느끼기
- 시간 내서 음악 더 듣기
- 마라톤 즐겁게(?) 뛰며 완주하기
- 오가는 길에 동물들 차에 치이지 않게 하기
- 주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 나누기
- 카파 사진전시회 구경하기
- <노틀담 드 파리> 가족과 함께 구경하기.
# 2
고구마를 캔다.
하늘 맑은 날 오후의 햇살은 등뒤로 밀려오고 가면서
푸른 하늘 속으로 길게 늘어지고
올망졸망 따라 오르는 고구마를 보면서
한 몸으로 젊어서 늦둥이(8남매 중 막내)를 낳아 키울때까지
다산의 짐으로 평생 얽매여 살다간 어머니를 떠올린 마누하님.
붉은 색을 띤 고구마는 지난 여름의 강렬했던 더위를 담고있다.
가을걷이 후 초촐하게 차려진 술상을 함께한다.
고기도 굽고 갓 수확한 고구마와 산에서 따온 작은 밤도 불위에 올려 놓으며
아름다웠던 지난 일 생각하며 한 해가 풍요로웠음에 대해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 3
철원으로 향하는 아침.
차창 밖으론 안개가 가득하다.
카라인드로우의 <MUSIC FOR FILMS>음반을 씨디에 걸고
아다지오를 들으며 앙겔로폴로스의 영화 <안개 속의 풍경> 한 장면을 떠올린다.
흐린 시야로 앞이 보이지 않은 삶의 길.
가을은 저 구석에 내려 앉아 침묵하고 있다.
# 4
아침 텃밭에서 이슬에 젖은 상추와 가지 그리고 고추를 딴다.
간밤 시간의 흔적은 상추 이파리나 열매의 끝에 이슬방울로 매달려 있다.
스산한 한기가 밀려 오가고 몸 속에 GPS를 장착한 쇠기러기 무리가
일정한 방향을 잡으며 가벼운 날개짓으로 푸른 하늘을 이어서 난다.
아침 햇살은 멀리 있는 커다란 산을 넘어서지 못하고
금빛으로 타고 올라와 주변의 구름을 채색하는 시간.
아기 손바닥만한 가을 상추 쌈을 싸고
고추 한 입 베고 구운 가지를 먹으며
가을의 시간들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아침
한 해가 풍성스러웠음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를 표한다.
# 5
어둠 가시는 시간에 산을 오른다.
젖은 풀섶의 길은 밤 시간 이후의 흐름을 알리고
산 중턱에 올라 뒤돌아 본 내가 사는 곳.
해가 오르기 전 불그스레해진 산너머 보며
마음 속으로 길게 울려 퍼지는 호른소리
브람스 교향곡 1번의 4악장을 떠올리며 본
늘상으로 개벽(開闢)하는 가을 아침 풍경.
131017 철원 동송의 아침 - 금학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