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흔적

130531 잡문 - 5월을 보내며

바람동자 2013. 6. 12. 18:00

 # 146

 

 4월말이 다가 오니 밀린 책 읽느라고 끙끙거린다.

결국은 어제 다 끝내지 못하고 오늘 읽기를 마친

강준만의 <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

교양이란 커다란 글자가 맘에 들어 보기를 시작했건만

사전식의 지식의 나열에다가 650 여 쪽에 달하는

두꺼운 분량 때문에 지리하게 읽었다.

머릿 속에 남는 것은 알고 있던 몇 개의 사실들이

다시 읽기를 통해 강화가 되었을 뿐 새로운 것들은 들어오지 않고

책 제목에 나타난 <사전>이라는 나열식의 구성때문에 글 읽기가 자유롭진 않았다.

 

 이젠 선망후실의 서러운 나이가 되어

읽으면 앞의 것을 잃어버리는 전체의 흐름을 잡지 못하고

부분만 바라보는 근시안의 시선을 갖고 있음에 대해 탄식하다가

봄바람 속 살랑이는 꽃들이 손사래를 치는 날에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생각.

 

 존재에 대한 자위(自慰).

 

 # 147

 

 숲길을 걷다.

그리고 본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꽃들의 다툼과 시샘을.

 

                                            - 드름산에서.

 

 

 

 # 150

 

 1.

 

 정진홍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를 읽다.

조금만 남겨둔 마지막 부분을 내처 읽지 못하고

십 여일이 지난 뒤에 책을 다시 잡아든다.

생장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 스텔라까지 800여 키로미터의

길을 느릿하게 걸으며 존재에 대한 사유를 기록한 내용.

길 위에서의 생각은 길을 따라 이어지고

자신의 내면 세계의 바닥까지 내려간다.

 

 "천지간에 꽃이지만 꽃구경만 하지말고

나 자신은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한다."

                                                   (법정 스님 - 책 내용 중 재인용)

 

 

2.

 

 학생들 시험이 있었던 지난 주.

모처럼 찾아 온 자유로운 시간 속

연일 계속되는 음주행각에

몸과 마음은 이리저리 늘어져버린 시간.

 

 잔치가 끝난 이제는 마음을 다잡고

봄날의 아름다운 시간을 바라보기.

 

 보고 싶던 산빛들 점차로 빛을 더하여 가고

바닥에 깔린 지난 가을의 흔적들 누워 움직이며 사각이며 소리를 내고

새 잎들은 자신의 교태를 바람결에 흔들리고 자랑하며

자신의 독특한 색을 보이는 눈부심의 빛으로 가득한 날에 오르는 의암 리지길.

 

 그리움은 함께함으로 인해 더욱 가득하다.

 

 130511  의암리지길에서

 

 

 

 # 152

 

 오랜만에 읽는 시집.

직설적인 표현은 그 의미가 갖는 지시성으로 인해

단순해지고 즉물성을 가지는 반면

여러 의미를 갖게 되는 시의 표현은 추상적이다.

후다닥 거리며 읽어 내려가다가

시를 이렇게 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한편으론 삶이 이렇게 바쁜가를 자문한다.

둔한 머리를 굴리며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생각하다가

푸르러가는 5월의 하늘을 바라본다.

   

 

 # 153

 

 짙은 안개 속을 걷는 아침.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뻐꾸기의 움음 소리를 들으며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짧았던 봄날에 대한 추억을 떠올린다.

 

 알록달록한 신록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던 5월 초순

수목원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해설사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 맘때쯤의 산에서 볼 수 있는 녹색은 다양해서

녹색만 하더라도 80 여 가지의 색을 볼 수 있다고.

옅은 그리고 중간 색과 짙은 녹색의 삼등분으로 구분했던

나는 자신의 구분법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양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봄빛에

하나의 색을 삼분법으로 구분하는 단순 무지렁이가 되어 바라 보았던 지난 날과

지금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얼마나 바뀌었을까를 생각해 보지만

강변 길가로 노란 애기똥풀이 안개 속에서 색을 더하고

아카시아 흰 꽃망울 올망졸망하니 이어진 속으로 흐르는 시간 사이로

짙은 안개 속에서 들리는 뻐꾸기 울음 소리에

문득 봄날이 이렇게 지나 가는구나라는 생각에 미치자

애써 눈을 들어 모내기가 끝난 너른 논을 바라 본다.

 

 

130517  공지천(춘천)의 일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