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331 잡문 - 3월 보내기
- 3월 <다음 카페>에 올린 글들을 다시 올린다.
# 124
어제 영화 "아르고"를 내려받기해서 보았다.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다큐를 제외하곤 아카데미 수상작은 모두 다 보았는데
여러 편의 영화를 보다보니 머리 속은 이런 저런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단편적인 기억만이 혼재한다.
캐슬린 비글로우 감독의 "제로 다크 써티".
민감한 정치적인 소재로 인해 음향편집상 하나에 그친 것이 아쉽다.
흐린 날.
가까운 금학산이 보이지 않는다.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탄 앤 해서웨이(레 미제라블).
빼어난 연기력에다가 호소력 짙은 목소리까지 듣다보면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얼굴에 연기에 노래에 그래서 신(神)은 능력배분에 있어서 불공평하다.
# 125
미국에서 토종 피아노 교육을 받은 반 클라이번이 냉전시대 소련에서 열린
차이코프스키 콩클 피아노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자
피아노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열등감에 젖었던 미국인들은 온 몸을 흔들며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졸지에 그는 국민의 영웅이 되었고 이후 피아니스트로서 뚜렸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작고했다는 뉴스를 듣는다.
한 쪽에선 죽고 또 다른 곳에선 태어나고 하는 것이 삶의 순환인 것.
-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을 추모하며
# 127
묵은 지난 겨울의 것들 털어내기 위해 나선 길.
해빙기를 맞이한 계곡은 물소리만 드높아가고
지난 겨울의 흔적은 올라갈수록 겹겹이 쌓여져 있다.
능선상 골짜기 사이의 흰 눈이 듬성하니 보이는 날.
이젠 또 산은 봄날을 맞이하여 입산 통제를 하려하고
지난 겨울의 흔적들 눈에 담고 오면서 내려오는 길.
물소리만 요란스레 들린다.
# 128
사찰은 문화재보호법상의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통해 별도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국립공원에 편입된 토지를 소유한 일반 국민과의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찰이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사유재산권을 행사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일반 국민이라도 국립공원구역 안이든 밖이든 혹은 다른 곳이든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으면 당연히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습니다.)
- 문화재청 사찰문화재 관람료 징수 관련 부분
엊그제 다녀온 설악산 문화재 관람료(신흥사)가 2,500원에서 3,500원으로 오른 것(사전 예고 된 것도 그리고 인상에 대한 안내의 글도 없음)에 대해 분노하다가 문화재청에 전화를 한다.
다시 할 말을 잃어버리고(하긴 지리산 천은사는 차량 통과만 해도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고 있으니) 만다.
문화재 보호 명목으로 예고도 없이 그렇게 막 올려도 되는건지.
가진 자의 횡포는 아닌지 모르겠다.
# 129
오랜만에 책을 읽다가 중간쯤 넘어 가니 그전에 읽었던 책이다.
읽고 난 뒤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이제 선망후실의 서러운 나이가 되어
좀 전 시간에도 "아첨할 유"란 한자가 생각이 안 나서 결국은 담에 알려주기로 하고 슬금 넘어간다.
창 밖의 풍경은 눈 시릴만큼 환한데 기억력은 가물가물.
봄날의 기운은 아른아른.
# 130 아침 신문을 읽다가
영화에 나타난 ‘정치 9단’ 링컨의 리더십 (자료출처 : 중앙일보 03.14.)
① 최고의 라이벌을 내 편으로 만들어라
② 남의 얘기에 귀 기울여라
③ 너그러움으로 충성을 이끌어내라
④ 목적을 위해 때때로 양보하라
⑤ 나의 고통, 남과의 공감으로 극복하라
수정헌법을 통과 시키기 위한 지도자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삶을 살아가는데 위의 요소들은 살면서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들.
영화 전개상 다소 대사가 많아 전반적안 분위기를 흐트리기도 하지만
링컨의 고뇌에 중점을 둔 내면의 연기를 하고 있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리얼한 연기에 찬사를 보낸다.
세상의 일들은 쉽게 되는 것은 없는 법.
시대가 흘러가며 일들은 더더욱이나 얽히고 설키는 복합의 양상을 보이지만
과거의 시대가 그리워지는 것은 다만 단순함은 아닐 것.
아침 신문 읽다보니 신문에 날자가 그 다음 날인 3월 15일로 되어 있다.
무슨 일일까 ?
# 134
토요일 오전.
모처럼 시간을 내서 밀린 음악 파일을 정리한다.
받아 놓은 압축파일 풀고 쟝르별로 옮기고 하다보니
그저 파일들을 받아만 놓고 오래동안 묵혀 놓았다는 생각에
시간을 내어 정리를 해보지만
이 많은 음악 파일들을 언제나 다 들을까하는 기우((杞憂).
단지 개인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같은 취미를 가진 남들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저기 나누어 주면서 일어나는
"혼자 잘 살면 뭐 할까?" 라는 생각.
창밖의 봄날 풍경은 따스하게 다가오는데
집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자의 잡다한 생각.
# 136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듣는 아침.
분덜리히의 음성은 나직하니 깔리고
대상에 대한 무언가에 걷잡을 수 없는 끌림이라는 것을 느낀
젊은 날 슈만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의 고백과도 같은 노래.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던가를 생각해본다.
봄이 오는 3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 없이 후딱하니 간다.
시간은 3월 하순으로 넘어가고 우둔해지는 감각과 상상력.
젊은 날의 열정은 점점 사그라지고
아 아, 그저 쏜 살처럼 시간이 흘러가는구나.
# 137
작년에 읽다가 끝까지 다 못 읽은 메스너의 <죽음의 지대>를 다시 펼쳐든다.
처음부터 다시 읽기.
그전에 읽었던 기억은 파편화되어 어렴풋이 떠오르고
내친 김에 끝까지 읽기.
깊어가는 밤.
형광등 불빛에 반사된 종이의 흰 빛은 내 기억처럼 아롱아롱.
젊은 클라이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기과시의 스포츠정신을 넘어선
등반이라는 행위가 자연의 품에 안기고 그것을 이해하고 협력하며
온갖 생명있는 것과 일체감을 느끼는 행위이며
책의 제목에서 밝힌 바와 같이 죽음의 문제를 주제로 하고 있다.
산서(山書).
다른 쟝르에서 볼 수 없는 사실성을 기초로 한 책.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의 확충과
산을 바라 보는 시선의 폭을 넓혀주고
한편 우리가 가야할 길을 잠시 생각하게 해주는 길라잡이의 역할.
책을 멀리하는 것은
산서의 많은 책들이 절판되었다는 이유를 떠나서
일단은 자신이 게으르고 현실 안주의 편안한 삶에 빠져서가 아닐까?
3월 슬금거리며 지나가는 날.
마음의 개안(開眼)과 사고의 균형감각을 위해
흐린 눈 부비면서 다시 책을 잡는다.
130331 동면 솔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