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0911 지리산에서 # 1
130109(수) <일정> (07:04) 노고단 - (11:10) 연하천대피소 - (14:12) 벽소령대피소
1.
모친의 부음을 듣고 열차에 오른 아주머니.
장례이후 삼오제까지의 긴 시간때문에 전화기를 통해 집안 정리를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동생에게 부탁한다.
거실의 외부에서 안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물건들에 대한 건사의 부탁.
"그것은 치우고 저것은 남김없이 가져가고....."
이런저런 아주머니의 통화에 야간열차에서의 잠은 이미 달아나 버리고
옛날 구례구까지 조금 편안하게 가보려고 특실(그때는 무궁화호에도 특실이 있었다.)에 탔다가
밤새도록 질펀하게 나누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잠을 설첬던 기억이 되살아 나고
일상에서 훌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애를 야간열차에서 읽는다.
2.
노고단 오르는 길.
밤하늘 별들 보이지 않고 바람이 거세다.
결국 방풍의로 갈아 입고 오르니 앞선 등산객이 보인다.
스틱의 팁을 보호하기 위한 고무도 빼지않고 연실 미끄러지는 한자루의 스틱에다가
봄가을에나 신는 리지화 게다가 스패츠도 착용하지 않고 가는 젊은 날의 초상.
지리산행 경험은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두운 하늘처럼 불안해진다.
취사장에 들러 아침을 먹고 일출 시간에 대기 위해 잠시 몸을 녹인다.
노고단에서의 일출이 아름 다웠던 지난 산행을 생각하며 조금 일찍 취사장을 나선다.
바람을 피해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일출 기다리지만
거센 바람은 구름을 몰고 다니고 하늘은 흐려서 일출에 대한 기대를 접고 몸을 움직인다.
바람은 불어 눈보라를 일으키고 반짝이는 눈의 결정들 어지럽게 앞길을 막고 웅크린 채로 노고단에서 발길을 옮긴다.
계속해서 부는 바람.
바람은 산행하면서 추웠던 단편적인 기억들을 불러 일으키고
그래 지리산 바람쯤이야 하면서 마음을 위무하면서 가지만
매운 바람과 시린 눈으로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 앞은 보이지 않고
얼어 붙은 방풍의 안으로까지 들어와 몸을 떨게 만들고
바람으로 인해 길은 눈에 덮여 보이지 않고 때로는 길 멈추고 흔적을 찾는다.
피아골을 지나면서 이번 산행의 목적을 되묻는다.
"겨울 지리산 동계 솔로 종주" 등등을 생각하다가 아무런 명분을 생각하지 못하고
급기야는 지독한 바람때문에 탈출할까를 생각한다.
탈출로를 지나치면서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지만 몸은 이미 앞을 향하고
임걸령에서 노루목으로 이어지는 오름길뒤 만나는 반야봉으로 가는 길.
원래의 계획은 반야봉을 가기로 했으나
흐린 날씨와 추위 등등의 명확한 이유 몇가지를 생각해내고
보이지 않는 반야봉쪽을 쳐다보다가 아쉬움을 간직한 채 발길을 돌린다.
그 뒤 화개재에서의 다시금 탈출에 대한 갈등이 일고 지나온 길 되돌아 보며 다시 지리하게 오른다.
오름이 이어져서 힘들게 오른 토끼봉 너머로
끊임없이 부는 바람은 구름을 밀어 부처 급행열차로 달리게하고
명선봉 휘감아 돌아 눈물 쏙 빼면서 가는 연하천대피소까지의 길.
반야봉을 지나쳐서 조금 이르게 도착한 벽소령대피소.
세석까지의 진행을 생각해보다가 원래의 2박 3일 계획대로 느긋하게 가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대피소 안에서 할 일 없이 앉아 있다가
석양 빛이 그리워 밖에 나가 바람이 덜 부는 곳을 찾아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바람의 움직임을 응시하며 산중 상념에 잠긴다.
노고단의 여명
연하천대피소 앞 눈사람
멀리 보이는 주봉인 천왕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