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0607 가을 공룡능선에서
<시간 기록>
- 12.10.06(토) (13:17) 설악동 - (14:03) 비선대 - (15:44) 양폭 - (17:36) 공룡능선 신선대. 한뎃잠
- 12.10.07(일) (07:20) 신선대 출발 - (09:20) 1,275봉 - (13:20) 비선대 - (14:00) 설악동
1.
설악의 가을 빛이 아름다운 날을 생각한 날.
오랜만의 1박 산행에 필요한 짐들을 펼쳐 놓고 마음은 부산해진다.
그전엔 딸랑 카메라만 한 대 갖고 갔었는데
이 번엔 사진 찍을 욕심에 광각, 줌렌즈에 삼각대까지(나중 재 보니 6.8kg) 배낭에 넣으니
보조 카메라 한 대 더 갖고 가려던 생각을 접는다.
가을의 알락달락한 빛들과 변해가는 산색이 그리워 다시 찾는 설악산행.
어떤 빛과 색으로 펼쳐질까를 그리는 즐거움 속에
들뜬 마음은 이미 설악에 가있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키스 자렛의 "퀼른 콘서트"를 들으면서 잠을 청한다.
설악동 입구 시내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급기야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땐 차에서 내려 걷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기사 아저씨는 안된다고 하고 결국은 맥없이 기다리며
사온 김밥을 우물거리며 먹으면서 창밖 흐린 하늘을 쳐다본다.
2.
수많은 등산객들이 하산을 서두르고 나는 반대로 오후의 시간에 천불동 계곡으로 오른다.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하는 붉게 물든 나무들.
천당폭포로 가는 철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입가엔 가을의 미소가 가득하고
예전 혼자만의 산행시 텅텅거리는 계단의 울림은 사라지고
가을 경치에 취한 등산객들 곳곳에서 자신의 삶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무너미 고개 오르기 전 흐린 날씨 탓에 잠깐 비가 내린다.
그리하여 다시 찾은 신선대에서의 조망.
흐린 날씨 탓에 이미 산그림자는 운무에 가려 버리고
오후 일몰 때의 늘어지는 햇살 속의 공룡능선을 찍겠다는 생각은 사라진다.
날씨 탓으로 사진 찍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용아장성 쪽으로 넘어가는 흐린 햇살을 느릿하게 바라본다.
어둠 속의 적막 속에 홀로 선다.
오늘은 바람 소리 들리지 않고
계절의 깊어감을 알리는 풀벌레의 울음소리만이 들린다.
따뜻한 사람이 사는 쪽으로 내려가야할 밤안개는
몰려내려 갔다가 몰려 오며
나를 감싸고 내 입김과 겨루다가 물러간다.
추적이면서 다시 비가 내리는 별이 보이지 않는 밤.
비닐 아래 짐을 정리하면서 비가 긋기를 기다린다.
어둠과 적막에 익숙하지 않은 자.
헤드랜턴 불빛에 몸을 기대고
MP3 플레이어를 통해 나오는 음악이 밤의 적막을 가른다.
깊어가는 밤 산에서 듣는 김광석 "서른 즈음에" , "거리에서" 등
고즈넉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수가 밀려온다.
어디선가 불빛을 따라온 청과뢰(딱정벌레류) 바삐 움직이고
벨리니 청교도 중 " 아 테오 카라"를 들으며
행복한 날에 대한 생각과 반추를 통해 마음은 다시 고양된다.
다시 날은 맑아져 밤하늘 별 잠깐 빛나다가
날 흐려지더니 또 가는 비가 내린다.
이현우 "떠나 간 다음 날"
브람스 교향곡 1번.
다시 키스 자렛의 피아노 음악을 듣는 사이 밤은 점점 깊어 간다.
2012.10.06(토)
2012.10.07(일)
3.
첫새벽부터 들리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음성 속에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고 다시 잠을 청한다.
일출 한 시간쯤 전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역시 흐리다.
어둠 속 운무는 능선을 넘어가고 있고
여기저기에 진사님들이 운집하여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있다.
그들이 운무가 산봉우리 아래로 깔리기를 바라고
예전에 비 온 뒤에 그런 경치를 본 나는 별다른 감흥없이 하늘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
일출 전의 능선의 모습은 흑백의 수묵화로 다가오고
해가 뜨면서 빛을 받은 산은 감춰둔 붉은 색을 내보인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 2악장 "가을에 고독한 자".
자연에 취한 자가 되어 부르는 허무한 노래.
변해 버린 능선의 붉은 색들에 취해서 몇 장의 사진을 찍다가
쉬이 걷힐 것 같지 않는 흐린 날을 응시하면서
가을 풍경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공룡능선 신선대의 아침(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