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리고 사람

120512 공룡능선에서

바람동자 2012. 5. 17. 16:15

 

<시간 기록>

 (06:30) 춘천 - 속초행 버스 - (09:06) 설악동 산행 시작 - (10:00) 비선산장 - (11:11) 양폭 - (12:22) 희운각, 공룡능선 갈림길 - (12:46) 신선대 - (14:22) 1275봉 - (15:51) 마등령 -

(17:16) 비선산장 - (17:53) 설악동  (9시간 소요)

 

 

 1.

 산불 관계로 인한 통제가 풀리는 날

오랜만의 설악산행을 계획하며

따스한 공룡의 봄빛을 그리며 짐을 꾸린다.

 

 아침 속초행 버스를 기다리며 익지도 않은 우동을 먹는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서성이고 있다.

지친 모습의 사람들.

서로간의 대화는 없고 각자의 전화기만 쳐다 보는 이제는 일상화된 풍경들.

당일치기 산행이라서 되도록이면 짐을 줄이기 위해

삼각 김밥 두 개와 군계란을 산다.

삼각 김밥이 허기를 메울 수 있을까를 마음 속으론 내심 고심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버스에 올라 타서 이번 산행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입산 통제 관계로  가 보지 못했던 설악산에 대한 그리움일까

혹은 바다 보기 등등 생각해 보다가 스틱을 안 가져온 것과

파일 자켓을 전날 배낭 속에 미리 넣어 두었는데

아침 나절에 나오면서 다른 자켓을 입고 온 것을 알게되고

갈수록 가물거리는 기억력을 탓하며 무력해진다.

 

 

 2.

 속초. 

수복탑 앞 버스 정거장으로 보이는 바다.

역광의 햇살을 받아 푸른 빛이 반짝일 때 파도가 겹겹으로 빛난다.

밀려 오는 허기.

비스켓 하나 꺼내서 먹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잡견.

한 조각 떼어 주지만 개는 냄새만 맡고 주변 배회한다.

오늘은 나 홀로 산행의 낯선이가 되어

아침의 주변 사물을 건너다 보기.

그리고 말걸기.

온다던 버스 오지 않고.

 

 

 3.

 정겨운 새소리와 물소리가 따라 오르는 비선대 가는 길.

야트막한 곳에선 연한 녹색의 이파리들이 점점 짙어만 가고

저 멀리 보이는 산에 봄의 기운이 올라가고 있다.

나도 봄을 찾아 나선 많은 사람 무리 속 일원이 되어

발걸음 가볍게 녹색의 봄 터널을 걷는다.

 

 그래 작년 겨울엔 눈이 많이 왔지.

양폭 가기 전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보면서

지난 겨울 귀때기청, 마장터, 옥수골 등지를 헤매며 다닐 때

허리 춤까지 차올라 왔던 눈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버린 겨울의 감촉을  느끼기 위해 한 웅큼의 눈을 잡는다.

 

 쉼 없이 양폭까지 오르려니 힘들다.

불에 탄 대피소의 잔해는 깨끗이 치워지고

지나는 사람들 이곳이 대피소였던 자리라는 것을 기억이나 할까.

보이지 않으면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지는 것.

그것은 보는 것, 듣는 것 혹은 이야기를 통하여 의식의 이 편으로 돌아 오는 것.

하여 기억하기 위하여

보고, 듣고 그리고 상대에게 끊임 없이 이야기 하기.

 

 전날 내린 비로 계곡의 물소리 더욱 크게 들리고

천당 폭포로 이르는 철계단의 둔탁한 울림 속으로

연한 녹색의 봄 풍경이 하나  둘씩 이어진다.

무너미 고개 오를 즈음에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군계란 하나 까먹으며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시린 물의 감각 발을 타고 오르고 전해지는 시간의 흐름.

다시 오름길에 서서 가파른 오름길에 힘이 부쳐 사탕을 물고 쉬면서 생각을 한다.

전 날의 음주 혹은 스틱의 부재 또는 체력의 저하 등등.

나름의 원인을 생각하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4.

 신선대에 다시 서다.

가슴 툭하니 터지면서 감춰어 두었던 설악의 비경들이 한꺼번에 나선다.

날이  흐려 흐릿하게 산봉우리들 보이지만

흐린 풍경은 마음으로 따사롭게 다가와 함께 하고

지난 날의 풍경들이 겹쳐지면서

"그대 잘 있었는가"를 서로에게 묻는다.

 

 진달래꽃 붉은 색 더해가고 바위 틈의 바위나리 흰 꽃이 하늘로 오르고

새 울음 소리 함께하는 봄날의 아름다운 능선 풍경.

삼각 김밥 꺼내 우물거리며 주변을 응시한다.

산 골짜기 그늘진 곳엔 아직까지 겨울의 흔적들이 보이고

멀리 저 산을 향해 오르는 연한 녹색의 봄의 기운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오후 인적이 끊긴 산.

까마귀 울음이 적막을 깨우고

1275봉 산정에 올라가 주변 산 둘러보며 먹으려고 했던 캔막걸리는

흐린 날이라는 나름의 이유와

산행의 피곤함에서 이어진 귀차니즘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남은 길 걱정하며 옮기는 무거운 발걸음.

마등령이 보이는 곳에서 산을 타고 오르는 오세암의 불경 소리.

가까워진 석가탄신일을 생각하며 미천한 중생인

자신의 제도(濟度)를 기원한다.

저멀리 귀때기청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다가 오고

마등령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을 만난다.

 

 

 5.

 옛날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으로 들어 가는 들머리에

지천으로 피었던 붉은 앵초에 대한 기억.

긴 목위의 붉은 자주색 꽃이 이뻤던 앵초.

 

 꽃에 대한 흔들리는 기억들 일으켜 세워보지만

이제 그 꽃들 보이지 않고

대신 군데군데 별꽃들 무리지어 자잘한 흰 꽃을 피우고 있다.

 

 

비선산장 가는 길

삼형제봉

천불동 계곡

 

 

 

 

 

 

 

 지난 겨울의 흔적 - 잔설

화재로 소실된 양폭대피소 자리

 

천당폭포 가는 길

 

 

신선대에서 조망

 

이름도 아름다운 범봉

 

 

능선 주변 봄꽃 

 

 

 

 

 

뒤돌아 보기

 

 

용아장성

 

 

1,275 봉

 

 

 

 

천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