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31 그리하여 12월 보내기
바람의 흔적
111231 그리하여 12월 보내기
바람동자
2011. 12. 31. 09:19
1.
어둑해져서 다시 철원으로 돌아 오는 날.
사창리를 지나면서 흰 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오는 겨울 고개를 넘어다닐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컴컴한 하늘 아래 빛을 발하는 두 눈.
2.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를 읽다.
상업 가이드등반대의 일원이 된 필자가 경험한 에베레스트 등정과 이후 닥치게 되는 눈폭풍 속에서의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들은 돈으로 해결되고 신들의 영역인 8천미터 이상의 고산인 에베레스트 캠프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해 자연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박범신의 <촐라체> 이후 오랜만에 읽는 산악 도서.
12월 바쁜 일과로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했음을 슬퍼하면서.
3.
드뷔시의 "La Mer"(바다)를 듣는 아침.
관현악으로 그려보는 마음 속 바다의 풍경.
바다 물결 잔잔하게 일렁이더니 드디어는 바위에 부딪혀 흰 포말이 눈 앞에 떨어진다.
겨울 바다를 꿈꾸지만 추운 날씨에 꼼지락 않고 있는 자신의 게으름이 더 큰 적.
4.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시시피 지역 흑인 가정부의 애환을 다룬 영화<the help>.
여성의 시각과 입장에서 본 흑인과 백인이 처한 삶이 서로 얽히면서 전개된다.
"착하고 예쁘고 소중하다"는 말로 정성을 다해 백인 아이를 돌봐주는 에이빌린.
그리고 미니.
그녀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의 삶에 가슴 한 켠이 아려오고 언젠가 보았던 <미시시피 버닝>이 떠오른다.
마지막 장면.
에이빌린은 이제까지 걸어왔던 길은 버리고 앞으로 가야하는 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흐르는 음악.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조적인 삶.
전반부에 형이상학적인 영상이 전개되고 급기야는 공룡까지 나온다.
성장 과정에서 보이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
나레이션을 통해 전개되는 영상.
동생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하는 거다. 사랑하지 않으면 인생은 휙 지나갈 것이다." 영화 중 나레이션.
브람스와 스메타나의 음악이 바탕에 깔리고 마지막은 작가를 알 수 없는 진혼곡.
초반부터 철학적인 영상에다가 인과관계로만 사건을 이어가는 둔한 머리 덕에 역시나 고전했던 영화 <The Tree of Life>.
5.
술 한 잔 마시고 들어온 날. 말러의 "대지의 노래" 중 6번 "고별"을 페리어의 음성으로 듣는다.
가사의 내용을 알면 감상에 도움이 되련만 밤은 깊어 가면서 마음도 착하니 가라 앉는다.
모노 녹음에서 들리는 음성의 둔탁함.
밋밋하니 음악은 퍼져 나가고 페리어의 음성은 공허한 가슴 속으로 파고 든다.
철원 겨울 밤의 막막함이 내려 앉고 이별의 마지막 부분에선 가슴이 먹먹해진다.
디스카우가 노래한 "고별"을 이어서 듣는다.
스테레오의 분리도가 명확하며 거침없는 딕션 그리고 노련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음성을 들으며 모노반과 비교 청음을 한다.
모노반이 비록 소리는 명확하지 않고 뭉개져 나지만 아련한 향수와 알 수 없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고.
페리어나 말러나 대지의 노래가 결국은 백조의 노래가 되어버렸음을 슬퍼하고 기억한다.
아침, FM을 통해 들은 말러 2번 "resurrection " .
어제는 정명훈의 베토벤 9번을 라디오 실황 중계를 통해 잠깐 듣고.
올드랭싸인에다가.
편성시간 관계상 부활 4악장의 일부분만 나왔다.
과거 신년음악회 실황 중계로 듣고, ABC 트레킹 중 산을 오르면서 내내 들었던 음악.
지난 날은 환희로 그렇게 보내고, 오는 해는 다시 살아나기를 꿈꿔야 하는 것일까?
말러 2번은 질긴 인연으로 따라다닌다.
환멸의 70년대(정태춘 건너간다 중)가 이미 가버리고 또 한 해가 가는구나.
(12월 페이스 북에 올린 것 정리)
110118 추운 날 소양강변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