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리고 사람
1007310801 지리산에서
바람동자
2010. 8. 3. 21:23
<시간 기록>
7. 31(토)
(04:20) 성삼재 - (05:00) 노고단대피소 - (05:40) 조식 후 출발 - (07:28) 노루목 - (07:47) 삼도봉 - (10:00) 연하천대피소 - (11:45) 벽소령대피소 - (12:45) 선비샘 - (13:30) 중식 후 출발 - (15:20) 세석대피소 - (17:05) 장터목대피소 (도상거리 23.8Km 12시간 45분 소요)
8. 1(일)
(03:40) 장터목대피소 - (04:30) 천왕봉 - (07:30) 일출 감상후 장터목대피소 - (08:16) 조식 후 백무동으로 하산 - (09:33) 참샘 - (10:24) 백무동 (9.2Km 9시간 45분 소요) 총 33Km
1.
산이 그리워서 불쑥 떠나는 것일까.
아니면 혼자 있는 것이 무료해서일까.
용산역.
배낭을 맨 한 무리의 사람들.
밤기차를 기다리며 지도를 펼쳐 든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지루한 지리산길.
오랜만에 매는 대형배낭.
등판엔 이미 땀에 젖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얼굴엔 땀이 번들거린다.
휴가기간이라서인지 구례구가는 임시열차 기차표를 간신히 구했다.
기차간은 소란하고 MP3에 의지해서 열차 내의 시끄러움을 피한다.
오페라 아리아 몇 곡 복사해왔는데
반갑게도 벨리니의 "청교도" 중 "결혼식 광경"과 관련한 아리아가 들어 있다.
아리아를 들으며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그려지고
파바로티의 고음이 힘겹게 들린다.
벨리니 오페라에서 테너는 가엾고 불쌍하다.
이에 화답하는 존 서덜랜드의 음성.
아름다운 소리. 벨칸토오페라.
그리고 어울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올해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를 공연한다고 한다.
2.
성삼재를 운행하는 택시 기사의 말이 맞았다.
여름에는 날씨 관계로 해 뜨고 나서 바로 운무가 차 버린다고.
노고단에서 나는 잠깐 보았다.
일출의 광경 뒤 바로 흐려지는 주변의 산들을.
그리고 목적의식의 상실.
하나 더 가져온 광각렌즈와 대형배낭이 그 순간 어깨와 목을 누르기 시작한다.
문득 반야봉에서 본 천왕봉의 겹쳐진 산자락이 보고 싶어서
훌쩍 산행을 떠난 것도 한 이유인데.
주변이 화이트 아웃된 시계 불능의 상태에선 그것은 불가능한 일.
마음 속으론 이미 반야봉은 물건너갔다는 생각.
노고단 일출
090815 지리산 반야봉(1732M)에서 천왕봉 조망
3.
주변 경치는 보이지 않고 내리 두 시간을 걸었지요.
노고단에서 잠시 보여준 일출을 머리 속으로 그리며
날 좋아지기를 기대해 보지만 마음뿐이었지요.
질퍽한 산길.
지리산의 여름은 원추리의 노란색이 지배를 하지요.
땀은 얼굴을 타고 내리고
바람 불지 않고 주변으로 시선은 나아가지 못하고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적막한 산.
반야봉의 들머리인 노루목을 지나쳐 갔지요.
연하천을 거쳐 벽소령지나 선비샘에서 점심을 먹었지요.
13년 전 이곳에서 지리산 종주 첫날 야영을 했던 곳이지요.
지리산 첫 단독 종주 때인 1997년 7월 20일의 기록(7.20 - 22)
15:30(선비샘 도착: 1 박) 오늘의 일정은 여기에서 그치기로 하였다. 세석, 장터목에 늦은 시간에 간다고 해서 남들이 알아 주는 것도 아니고 또 야영장비를 준비해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야영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텐트 칠 곳을 선정하고 텐트를 쳤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가져 온 팩소주 하나를 마셨다. 산에서 마시는 술은 언제나 달작지근하다. 식사 후 주변에 텐트를 치는 사람이 소주나 한 잔하자고 해서 참치캔 들고 같이 마셨다. 칠선계곡 쪽으로 왔는데 힘이 들어서 오늘은 더 이상 갈 수 없어서 쉰다고 했다. 내일 하산예정지인 칠선계곡 쪽의 정보도 좀 듣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흐미, 이 때는 2박3일 산행인데 팩소주 2개 가져갔네.)
4.
세석대피소로 향하는 산길.
슬금 거리며 양쪽 다리에 통증이 찾아 온다.
세석대피소 지나 촛대봉에서 비박을 할까 생각을 하다가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생각에 더 가기로 한다.
장터목까지의 두 시간 소요되는 길.
점점 무거워지는 몸과 지친 마음.
고사목과 구상나무 보이기 시작한다.
날은 조금 개어서 천왕봉이 보이는 듯하다가 숨는다.
장터목.
많은 사람들.
공터에 비박준비.
누워서 하늘을 보니 구름이 몰려 다닌다.
고추잠자리 무리지어 날아다니며 아무데나 앉는다.
무수히 많은 고추잠자리의 비행이 하루살이와 같다는 생각.
가져온 봉지삼계탕에 소주 한 잔 마시며 밤하늘 쳐다 본다.
비박지로 타고 오르는 밤바람 쌀쌀하다.
5.
새벽녘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천왕봉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인다.
이어지는 랜턴의 행렬 속에서
오르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
스틱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한 시간여의 기다림 속에서 일출을 보았다.
아침나절의 부드러운 햇살이 퍼지는 때
천왕봉 주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오늘은 어제보다 시야가 훨씬 낫다.
6.
지리한 산길 가면서 시간을 분절했었지.
결국 분절된 그 시간 속으로 길들은 이어지고.
참샘 지나면서 계곡 물소리 크게 들리고
마음 급한 자 주변 돌아 보지 못하고 퍽퍽한 발걸음 움직였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