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리고 사람

091025 다시 공룡능선에서

바람동자 2009. 10. 26. 19:08

 산행에 대한 기대감이 크면
그에 따른 실망도 큰 법.
전 날 운악산에서 보았던
화려한 가을의 빛깔들 가슴 속 잔상으로 남아 있었지.

 천불동 계곡을 오르며 보이기 시작하는
설악 주변의 단풍들.
그 단풍들 귀면암 지나면서 
다 떨어져 자취를 감추고
나뭇가지들만 앙상하니 이어져 있었네.

 머리 속으로 그렸던 설악 단풍의 이미지는
이미 찾아 볼 수 없고 
오늘 산행의 목적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었네.
어제 본 운악산의 단풍으로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고
계곡 길 오르며 내리 세 시간을 걸었지.

 오늘은 마라톤 뛰는 날.
일찌기 포기해버린 것에 대한 미련.
목적의 상실.
오르는 산에서 느끼는 황량함.
주변의 붉은 빛은 사라진지 오래인데다가
하늘마저 흐릿했고
오가는 등산객마저도 많지 않았지.
영악한 사람들은 이미 단풍철이 지났음을 알았는 데
늦게라도 남아 있을 산 위의 가을 풍경을 나만 꿈꾸었을까.
비선산장에서 헤어진 우리 팀들은 장군봉 기존길 등반에 나서고
나는 아예 장비를 가져 오지 않았으니 등반 생각은 이미 물 건너 갔고
공룡능선이 시작되는 희운각대피소 쪽의 들머리에서
빵 조각을 씹으며 잡다한 생각을 했었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섰었네.
신선대에서 보이는 공룡의 모습은 운무에 싸여 흐릿하고
저 멀리로 1275봉 , 범봉 등이 가야할 길을 알리고 있었지.
붉은 색이라고 찾아 볼 수 없는 
이 능선에서 겨울맞이가 끝이 났었지.
눈 앞으로 전개되는 황량한 풍경을 보면서
고독한 삶을 살았던 고흐의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했었지.
지중해 근접한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의.
노란색과 하늘색이 주가 되어 나타난 그림들.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고 실행하고자 했던
아를의 노란집에서의  창작활동이 행복했을까를 다시금 생각하고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을 떠올리며
저 멀리 가야할 길을 보았지.

산행 중 몇 사람 만나지 못하고
그저 내가 좋아서 가는 산이라 위로하면서
아픈 다리를 속였네.

 유선대를 지나면서
산은 다시 그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지.
금강굴 전망대에서 
저 아래편 비선산장 아래로 붉게 물든 주변 경치 둘러 보고
장군봉 기존길을 마치고 하강하는 후배들을 기다리고 있었네.

<시간 기록 >
(09:30) 비선산장 - (10:42) 양폭산장 - (11:28) 공룡능선 들머리 - (12:02) 신선대 - (13:23) 1275봉
- (14:44) 마등령 - (16:20) 금강굴 전망대, 하강팀 기다림 - (17:40) 금강굴 전망대 출발 - (18:00) 비선산장 - (19:00) 설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