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리고 사람

09060607 내 마음의 풍경 - 설악산에서 # 2

바람동자 2009. 6. 9. 10:26


090607  (05:20) 희운각대피소 - (07:28) 1275봉 - (09:32) 마등령 삼거리 - (10:30) 오세암 - (11:45) 영시암 - (13:00) 백담사

대피소 자리가 없어서 간밤 취사장 찬 바닥에서 잤었지.
피곤한 몸에 비해 정신은 오히려 맑아지고
대피소 밖 여기저기에 널부러진 사람들을 피해 몸을 움직이며 하루를 시작하네.

 어제 본 중청 갈림길에서 본 운해가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있고
오늘도 습관적으로 하늘을 쳐다 보니 흐렸지.
카메라가 갑자기 무거워지고
겨울날 눈위에서 야영을 했던 장소를 지나면서 신선암으로 올랐네.

 "설악에 이렇게 숨은 경치가 있는 것을 몰랐어"
공룡능선 상에 펼쳐 진 운해를 보면서
계속해서 어떤 여자 전화에 대고 그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었지.
또 다른 이는 전화기 영상으로 보내고 있고.

 아름다운 당신.
짧은 시간의 만남이기에 이토록 황홀해지는 것인지요.
가을날 보았을 때는 운무에 휩싸여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니
아래 모든 구름들을 휘어 감고
그렇게 천상에 우뚝하니 서 있는 것인지요.

 도도한 그녀.
용아장성.
운무에 싸여 그 자태를 보여 주지 않고
속물인 나는 그저 카메라 셔터만 열심히 눌러 대면서
메모리카드에 기록이나 하는 수 밖에.

 1275봉 정상에 올라
범봉 운해와 우리가 지나 왔던 길을 눈으로 따라 그렸지.
아련한 그리움이 다가오고
운무 속에 홀현홀몰하는 봉우리의 여러 모습들.
구름 속에 있으면 나도 신선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고
베토벤 교향곡 6번을 생각했었지.
청력을 잃은 상태에서 마음 속으로 존재하는
전원 풍경의 모습을 음악으로 그려낸 베토벤의 위대함을 기리며
찬찬히 운무에 싸이는 범봉을 바라 보았네.

 설악의 운무를 마음 속에 담고
그 바람소리, 새소리를 기억하며
다시 그 산을 그리워할거나.

 다시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능선 곳곳의 돌계단이 이어지고
가장 높이 나는 새 까마귀 울음소리
야생동물로 기본 개념을 상실한 무단횡단하는 다람쥐
예전에 많이 보이던 보라빛의 망초는 어디에 있을까
산라일락 내음 짙게 풍길 즈음 공룡의 길은
마지막에 접어 들고 있었지.

 오세암.
아침 공양시간.
어제 오르며 먹었던 영시암의 죽.
이곳은 김 주먹밥에 미역국 그리고 오이절임.
식탐있는 중생을 위한 사찰의 배려가 아름다웠지.
결국은 영시암에서 다시 죽먹고
거사님만이 할 수 있는 장작패기 보시를 했었네.

 계곡에서의 탁족.
차디찬 물의 기운이 
발끝으로 전달되고
경쾌한 물의 움직임처럼
그렇게 산중의 하루가 갔었네.



                                              신선암에서 본 공룡능선


운무


 1275 봉에서의 조망


범봉 주변



                                                      
                                                 영시암 공양(죽)


                                               기록은 기억보다 앞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