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그리고 사람

090510 도봉산 선인봉 박쥐길

바람동자 2009. 5. 12. 21:39

1.

 이른 아침 잠에서 깨었지.
간 밤에 어떤 꿈꾸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지만
단지 기억에 남는 것은 전 날 느릿하게 이어졌던 술자리뿐.


 5시가 안되어서 날은 훤해지고 밀린 잠을 다시금 청하지만
마음은 이미 도봉산 선인봉으로 떠나 있었지.
30년대 박용철이 읊었던  "나두야 간다."
그 때 젊은 날의 우수와 비애는 사라지고
오늘 가보고 싶었던 산을 오른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앞섰지.




2. 

 등반하기 전 마음은 언제나 긴장 상태이다.
그 동안 운동을 못 했다는 것이 가장 큰 불안감의 요인이고,
그외 순조롭게 진행되야 할 등반이 나로 인해 흐름이 깨질까 하는 걱정.
목적지인 박쥐길까지는 도봉산 입구에서부터 약 1시간이 걸리고,
아침나절부터 움직이는 사람들 속으로 우리도 합류를 한다.


 오른쪽으로 위치한 김수영 시비를 지났지.
60년대 참여문학의 기수와 이론가로서 현실참여의 시작 활동을 했던
평소 義齒와 多病을 지닌 휑한 그의 부조상을 보면서
4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시대에 그가 꿈꾸어 왔던 세상이 되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인디언 추장 머리를 한 새 후투티를 보았지.
서울 근교의 산에서 이 새를 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바위와 어울워진 계곡물 속으론 잔 물고기들 움직이고 있다.


 석굴암 가는 길.
석가탄신일 지난 지금 각자의 소망을 적은 연등은 좁단한 길가로 이어져 오르고
석굴암 상부를 지나 박쥐길에 이르렀지.



3.

 출발지에서 위를 보니 우리가 가야 할
오른쪽으로 박쥐 날개 모양을 한 크랙길이 보이고
한 팀은 왼쪽의 표범길로 우리는 박쥐길로 올랐지.
1P에 도착하여 보니 가야할 2P는 보이지 않고 큰 크랙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지.

 40여 미터의 고도감에 아래를 보면 멀어져만 보이고
가야하는 길.
순서가 되어 올랐지.
크랙을 잡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 가고
발 디딜 곳 보면서 거칠한 바위의 느낌을 뒤로 한 채 분주하게 손이 움직였지. 




 구름 끼어 흐린 날.
낮은 "비올라 다 감바" 현의 음을 생각하면서
멀리 주변의 짙어져 가는 산과
바람을 타고 오르는 불경 소리를 들으며
내려다 본 석굴암 위로 천상에서의 불국토를 생각했었지 .







4.

 우리 등반로를 따라 다른 팀들이 오르고 있고,
다른 길로 또 다른 팀들이 보였지.
등반로 합류되어 서로 가로 지는 자일들을 보았지.






 첸카이거의 "황토지"
그리고 며칠 전에 본 장예모의 "집으로 가는 길".
물을 길어 오는 주인공의 반복되는 생활의 일상에서
그 길은 타인과의 만남 그리고 다시금 이별과 기다림이
주변의 황량한 혹은 아름다운 풍경과 어울려 길게 이어져 있다.
우수에 찬 애잔한 트럼펫 소리와 연결되어 있는 펠리니의 "길".
영화에서 본 길의 이미지를 나름 생각해 보지만 
등반로를 가로지는 자일처럼 생각은 뒤엉켜 있다.

5.

 오후의 시간.
많은 사람들로 인해 산이 술렁거리고.
하산하여 올려다 본 등반로.
길따라 많은 사람들이 이어져 등반을 하고 있고
주린 자 식사의 즐거움을 잊은 채 밥을 삼켰지.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른 것은 높은 봉우리의 한 부분일 뿐(김민기 "봉우리")
그리고 초등인 나의 입장에선 가장 젊은 나이에 올랐고,
커다한 나무와 같은 삶 속에서 잎사귀 하나 더 늘린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서울  "장수막걸리" 마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