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흔적

030110 강운구 사진집 마을 삼부작을 보면서

바람동자 2008. 6. 17. 19:43

  사진은 작가가 인식한 것 중 어떠한 것을 기록하고 확인하는 수단이다. 강운구는 신문사의 사진기자를 거쳐 75년 언론사태로 해직된 이후 가장 한국적 질감의 사진을 남기는 사진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제목에 나타난 것처럼, 세마을의 모습을 찍은 흑백사진이다.
이 세 마을은 강원도 원주군 소초면의 황골, 인제군 북면의 용대리와 전북 장수군 읍의 수분리이다. 대체적으로 사진에 나타난 시기는 1970년대 초 부터 말기까지의 풍경이다. 

  작가는 앞의 글에서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갈등, 혼란, 불화는 바뀜 보다는 급속하게 바뀌는 속도가 야기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군대 명령처럼 하달되는 "새마을 운동"의 영향아래 과거의 것들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버려야만 한다는 논리아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실정에서 보면, 사진은 사진으로서 남아 있는 화석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한 편으로 생각한다.
소위 근대화라는 것을.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지만, 이 땅에서 급작스럽게, 아니 상명하달의 70년대 군대식의 도시화는 전통적인 것마져도 잃어 버리게 만들고 방향성 없는 시대의 삶을 초래해 버렸다. 개화기 시대 이광수류의 사고와 다를 것이 없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그 뿌리가 같음을 느낀다. 

  유교라는 낡은 도덕율에 반기를 든 이광수는 과거의 것은 낡은 것이며, 또한 전면적으로 완전 부정의 대상이며 따라서 이 땅위에 있는 젊은이는 과거의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종족이어야 함을 역설하고 결국 그러한 논리는 창씨개명, 징병강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친일을 했다는 자가당착의 논리쪽으로 연결된다. 

  기억한다.
아침 여섯시면 동회 사무실 확성기를 통해서 잠든 자들을 억지로 깨웠던 "새벽 종이 울렸네..." 하는 거친 노래 가사를.
그리하여 전통의 남향집 가옥들은 어느 날, 찻길을 중심으로 배치되는 기이한 가옥의 방향 구조를 갖게 됐고 초가 걷어 내고 슬레이트 얹고, 그 위에다 붉고 푸른 색의 뼁끼칠 하는 것이 그 시대의 모습이고 꼭해야만 하는 살풍경의 모습이었을까? 

  황골 풍경들,
돌담 위로 널려 있는 겨울의 빨래들.
포대기에 싸여 누군가를 기다리며 흙벽에 서있는 아이들.
처마 끝에 걸려 진 종자용 옥수수, 시레기, 기름병, 대바구니.
생업과 관련된 엿을 고는 광경,
  그리고 그들의 고된 삶의 한 징표인 터지고 갈라진 두 손, 갈라진 손톱.

  용대리,
  깊은 골짜기의 너와집. 주변 집 앞 텃밭의 도라지, 수수대가 있는 풍경.
한 편의 나무를 세우고 묶어서 그네를 타는 아이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기를 등에 업은 어머니의 모습.
아마도 어머니의 다사로운 체온은 아이에게 전달되리라.
토담집 부엌을 통한 음습한 내면 풍경. 서정주의 "자화상"이 연상이 되고 그리고 수분리의 초가들.
벽으로 스며드는 찬바람과 봉창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군불 지피는 매캐한 연기가 어울려 한 편의 옛모습을 재구하여 본다.

  기억은 언제나 체험의 구속을 받지만 그것이 문화적인 함의를 지닐 때는 시공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 

  오히려 사진에 비친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넉넉함을 느낀다. 오래된 미래에서 원시의 자급 공동체로서 라다크 마을이 그들의 생활을 유지했던 것처럼.

  잃어 버린 과거의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한 장 한 장의 사진을통해 나도 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작자는 또 이야기 한다. 사진은 슬프다고.
그것은 사진은 언제나 현재를 찍는다지만 어떤 것이나 저장하려고 필름에 영상을 비추는 순간에 과거가 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진은 슬프지 않다. 다만 사진에 화석같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것들이 슬플 따름이다.

  언젠가, "시선"을 냈던 후배에게서 들은 이야기,
양양 피사체가 되었던 그 공간이 엄청난 폭우로 인해 그 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의 것을 찾을 수 없는 도시화된 시대에서 과거의 것을 그리워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