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025 추억제 -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때는 84년도 6월 말
복직 발령이 난 곳은 태백에 있는 모 중학교
춘천에서 9시 원주행 막차 버스를 타고 원주역에서
서성이다 11시 강릉행 기차에 몸을 싣고
새벽 두 시경 본 황지의 첫인상.
먼 산 너머로는 낮게 별들이 깔려 있었고(나중에 알았다
이것이 광업소 불빛인 줄을) 어둠에 묻혀 도시는 고요했다.
아이들과의 일과는 시작되고
거친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들어간 거친 고원의 도시에서
아이들은 긴팔입고 한여름을 보내고 있었고,
자신은 적응하지 못해 하숙생들과 함께
40여 분 떨어진 황지로 택시를 타고 나가서
굶주린 문화를 해결하곤 했었다.
그때 황지의 경기는 석탄산업이 사양화되기 이전이라
흥청망청이 여전했고 우리도 무슨무슨 정이라는 좋은 술집에
가서 술도 먹곤 했었다.
덧없이 가버리는 젊은 날의 시간을 안타까워하면서
시내에 내려와서 술을 마시다가
버스는 이미 끊겨 버리고 기다리던 택시는 오지 않고
새벽 2시가 넘어
차가 없어서 허위적 거리며 산의 중턱을 넘으며(지름길)
숨차오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피내재 정상에서
노래를 불렀지.
“흘러흘러 세월 가면 무엇이 될까. 멀고도 먼 방랑길을 나홀로
가야하나.”
한 편 그것은 무기력하게 보내는 자신의 감정 토로였을지도 모
르고.
노래 부른 후 담배 한 대 피고
가깝게만 보이는 시내와 꺼져 있는 하숙집 불빛을 멀리 보면서
젊은 시절을 박용철의 싯구처럼 “나도야 간다”라는 심정으로
보냈다.
황지에 “무랑루즈”라는 술집이 있었네.
무랑루즈에서 술을 마시고 못추는 춤 추다가
쑈타임이 되었지. 허옇게 분칠한 몇몇의 무희가 나와서
이 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추더군.
그 때 나는 생각했다네.
세상을 정조 잃은 밀랍인형이라고.
음악에 맞추어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무희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왜 그런 생각이 났을까.
같이 갔던 분에게 곡을 물어 보니
그 음악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이었고.
그래서 차이코프스키 피협 1번을 들으면
황지의 음습했던 골목길 바람과 젊은 날의 내 방황이
함께 섞여 나오고 그것은 시간과 함께 엉켜져서
추억제를 만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