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흔적

020916 아침 황동규 시를 읽다가

바람동자 2008. 6. 17. 17:11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 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 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

 

시냇가에 앉아 구두와 양말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느닷없이 만나 새긴

화끈한 문신(文身) 들 !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

                                                            황동규 “탁족(濯足)”

 

  아침 신문을 보다가 2회 미당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출된 황동규의 시를 읽는다. 그리고 평이하게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그리고 지난 여름의 삼악산이 생각난다.
이른 아침에 삼악산에 도착했을 때의 시각이 6시를 못미치고 있었고비 온 뒤라서인지 풀빛은 연한 녹색의 반짝임을 숨기고 있었고 늘상처럼 주변 경치 한 번 보고 그렇게 올라갔다. 의암댐 쪽으로 올라가면서 이곳저곳에 설치해 놓은 보조 밧줄을 보면서 무용성을 느끼기도 했고 한 때 상원사 공사할 때 나도 벽돌 석 장인가 날라다 주는 보시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진 화장실은 급할 때 가보면 언제나 열쇠로 굳게 잠겨 져 있다. 변해 버린 세태를 탓할 수 만도 없다.
  정상에서 잠시 새소리를 듣고 멀리 덕두원 쪽과 중도 방면의 푸른 숲을 보고 흥국사 쪽으로 내려 오면서 올라오는 불경 소리, 물 소리.산은 언제나 물을 머금지 못하고 바로 토해 내는 것인지 ?

  물소리가 귀를 어지럽힐 무렵이면 산행이 어지간히 끝이 나있고 그래서 물가에 앉아 양말 벗고 발에 물을 끼얹고, 하루 시작을 알리는 상념에 빠진다.

  올 여름은 비가 너무 왔어. 주변의 사물들도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을까 등등을 머리 속으로 생각하면서 시린 발을 다시 물 속에다 담그며 팔 다리에 난 여름의 흔적을 본다.
  황동규는 “화끈한 문신”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여름나기의 통과의례 같은 것일까 ? 피부가 약하여 벌레에 물렸다하면 부어올라 여기저기에 상처를 남기고 몸의 곳곳에 남아 있는 이 것이 지난 여름을 보낸 삶의 흔적일까 ? 차라리 흔적이라도 있다는 것에 자기위안이나 삼을 수 밖에. 

  여름 산에 가면 흐르는 계곡물에 몸이라도 던져 계절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