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흔적

000404 어느 날에

바람동자 2008. 6. 17. 16:35

1.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것 같아  쑥스럽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옛날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네. 이미 두터워질대로 두터워진 뱃살을 보면서 감히 꿈 꿀 수 없는 살 빠짐의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의 한 방편이 아닐까 하네. 각설하고  최근에 읽은 시 한 편을 올리네.
  바람맞은 자의 궁상거림이랄까 그렇긴 해두.

 태풍을 위한 연가
                                                               이경교
 우리 흔들릴까 흔들리며 뿌리도 뽑히며  단 한 번만 사랑해볼까 밤새  우리의 꿈을 적시던 저 하얀 선율은 무엇일까 사랑은 흔적  때문에 두려운걸까 선율을 따라가다 불협화음 우리가 잠에서  깨어난 새벽 새벽의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릴지 않는 불협화음을 너는 듣는지 슬픈  마음으로 스위치를 더듬거리나 성냥갑을 더듬는 손끝에 만약 불협화음의 한 소절이 문득 잡혀 있다면 새벽은 송두리째 조각나고 세상이 흔들리고 있는 걸 목격했다면 연인이여 너도 함께 흔들려 줄 수 있는지 내 가슴을 베는 너의 손을 본다 너울의 손 나의 가슴이 성큼 얇아진다 아른거리는 너의 잔영 나는 무섭다 발자국 의 지문 한 잎 내 가슴에 크게 남기고 가는 구나 가고 마는  구나 하얗게 떨던 내가 그 지문 하나 더듬을 무렵 연인이여 문 밖에 서 있는 내가 젖는다 소리도 없이 혼자 흔들린다.

 결국은 시를 읽으면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경교의 경우에서처럼 불협화음이었을까 ? 아아, 그 불협화음의 한 조각이 삶의 조각조각의 편린이었을까 ? 자신의 내면이 흔들리고 있음을 서서히  생각한다. 아,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폴 고갱의 유명한  화제를 뒤로 한 채로 그렇게만 현실에서의 가녀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

 2.
 방태산엘 갔었네. 과거에 보이던 아주머니의 따스한 웃음은  없었네. 보이는 것은 계절을 잊은 때늦은 눈들의 무더기가 삶의 거친 면을 감싸고 있었네. 지지하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삶의 한  습관처럼 그렇게 더덕더덕 붙어 있었네. 이 봄 날에.
 과거에 지나갔던 나의 발자국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생각하며 문득문득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삶의 흔적이란 이렇게 쉽게 지워 지는 것을.
 그리고 오늘 창암산엘 올랐네. 어제의 내리던  봄 눈 빛들은 이미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가깝고도 먼 산을 다시 오르네. 가슴 속에 실재하는  산. 가을 산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계절의 신산함도 있지만 진달래 꽃 무덤 속에서 봄은 오고 있음을 다시금 느끼네.  상대적으로 답답하게 우리가 느꼈던 계절의 실체는 이렇게 수군수군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면서 진달래 꽃 덤불 속에서 봄날의 기쁨을 미리 느끼는 것도 상상 속의 즐거움일까 ?

3.
  에구, 술기운이 오르네. 몇몇 사람들에게라두 이야기를 적어  보내려고 했던 것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슬퍼 해야만 하는 것인지 ?
  커피 스푼처럼 되새김한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