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8601 그해 겨울 도보 기행(고포-강릉)

바람동자 2008. 6. 17. 16:31

  묵은 사진을 보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지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시금 그 때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방법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이 글은 86년 1월 초 강원도와 경상도의 어름인 고포에서 강릉까지 도보 여행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적인 감상의 기록이다.

  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고포로 향하면서 여러 상념에 빠진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적과 과연 계획대로 저 강원도의 끝인 통일전망대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고포에 내려 배낭을 꾸리고 귀마개에다 마스크를 쓰고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응시하며 발길을 옮긴다. 계절 탓인지 주변의 풍경은 더욱 황량하게 다가서고 첫날의 긴장감으로 인해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원덕을 지나며 지난 날의 회상에 잠긴다. 과거 이곳에서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젊은 시절의 추억이 묻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치는 주변의 경치 하나에도 그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가을 날 가지 끝에 여기저기 매달린 탐스런 감, 주변의 집 담장 너머로 보이던 모과들은 이제 계절의 영향으로 보이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 주변으론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작은 웅성임만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호산 해수욕장의 커다란 해송은 바람에 웅웅 낮은 소리를 내고 철 지난 바닷가의 스산함이 함께 한다.

  임원항 주변을 낮게 나는 갈매기 무리. 어렵지 않게 예전에 묵은 적이 있는 여인숙을 찾아간다. 첫 면회 나와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이 술이었다. 그래서 맥주 여러 병을 사들고 가니 부모님이 놀라셨다. 이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마실 수 있느냐고. 호기를 부리며 나는 장담을 했지만 결국은 몇 병 마시지 못하고 이른 취기로 인해 취했던 기억과 다음 날 자식을 두고 마지못해 떠나가시는 부모님의 젖은 눈을 함께 기억한다. 방밖으론 밤바람이 지독하게 문을 두드린다.

  장호항, 용화 해수욕장 주변. 함께 한 오른 편의 바다로는 한 폭의 풍경화가 그려진다. 장호항을 통행하는 작은 배들의 분주한 움직임과는 달리 마음속으론 한편 한가하고 여유롭다. 주변의 풍광이 수려해서 일까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인다. 인접한 용화 해수욕장의 물은 맑아서 바닥의 모래가 환히 보인다. 이곳에서는 해안을 따라 북쪽 금강산으로 향하던 철길과 터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장호를 조금 지난 갈남리의 해신당. 원통하게 죽은 처녀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한 주술적 장치들. 거친 바다에서 풍어를 바라는 어민들의 기원이 이곳에 서려 있다.

  힘겹게 한치 재를 오른다. 오른편으로 늘상 함께 하는 바다와 왼편의 산자락이 죽 늘어 서 있는 재를 넘으며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배낭의 무게마저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죽서루에서 보냈던 한 때를 생각한다. 죽서루 주변의 바위에 붙어 있는 바다 생물의 흔적을 통해 먼 옛날엔 이곳까지 바닷물이 차올라 왔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바로 앞에 위치한 출렁다리 위에서 껑충 뛰면서 다리를 흔들리게 한다. 이내 흔들리는 느낌이 전해져 오고 아래로 흐르는 오십천의 물을 보니 어지럼증을 느낀다.

  북평 샘골(천곡동)에서 보냈던 원시의 여름 날. 자맥질하며 보았던 검푸른 물 속의 세계. 멀리 두타, 청옥산을 바라본다. 여름 내 훌쩍 커버린 나무들은 이제 성장을 멈추고 묵묵히 이 계절과 함께 한다. 시멘트 공장 주변은 흰 먼지만이 가득 내려앉아 있다. 묵호항 부근에서 사 먹어 보았던 고래 고기. 유리컵에 막소주 가득 담아 홀짝 마셔 버리고 우물거리며 씹던 그 고래고기의 맛이 다시금 생각난다.

  묵호 시내를 가다가 경찰 임시 초소 앞에서 우리는 불심검문을 당했다. 그 이유는 배낭 뒤에 꽂고 돌아 다녔던 빨간 깃발 때문이었다. 이 깃발은 눈 올 때를 대비해서 국도 옆에 쌓아 둔 모래 위에 꽂혀진 적사장을 표시하는 깃발이었고, 별다른 생각 없이 이 기를 꽂고 다녔던 것이다. 빨간 깃발을 꽂고 복장이 단정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닌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들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행했던 한 분은 경찰 초소 안에서 배낭의 내용물을 모두 꺼내 일일이 확인을 하는 과정을 거쳤고 나는 버티기. 몇 가지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주민등록증 보이고 나니 배낭 확인 없이 그대로 통과. 길을 다시 걸으면서 경직된 사회의 한 단면을 생각하고 마음은 오히려 착잡하다.

  바람이 계속 분다. 겨울철의 시린 기운을 실은 이 바람은 우리의 앞길을 방해한다. 바람으로 인해 눈물마저 찔끔 나오고 귀도 시리고 손은 아예 호주머니 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허리를 숙이며 바람의 저항을 최소로 하며 나가려 하지만 불어오는 칼바람 때문에 바람을 등지고 걸어 보기도 한다. 발도 시리고 해서 잠시 바람 피할 곳을 찾아보지만 마땅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계속해 불어오고 다시 바람결에 휘날리는 젊은 날의 꿈을 안고 걷는다.

  옥계로 향하는 길은 두 가닥으로 앞에 섰다. 한 쪽은 쭉 뻗은 고속도로였고 다른 쪽은 산중턱을 오르는 비포장의 길. 고속도로는 터널이 뚫려 있어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저 편의 길이 뻔히 보였고 더구나 시간상 1시간도 못 걸릴 것 같았다. 바람 불고 날씨도 추워서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터널을 통과하자고 약속을 하고 도로에 접어들었다가 순찰 중이던 순찰대에 잡혀 쫓겨났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재차 진입했다가 또 잡혔다. 결국은 터덕이면서 흙길을 걷는다. 흙먼지를 폴폴 내면서 트럭이 올라간다. 편리함이 현대사회의 한 특성인가. 점점 더 편리해지는 것이 근대화 혹은 현대화일까. 편리함의 추구로 인해 우리는 추억과 낭만을 점점 더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힘들여 걷는 것보다 차를 타는 것이 훨씬 편한 반면 걷기를 통해 얻어 지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소나무를 지나는 바람소리, 새 소리, 바다의 파도 소리 등이 머리 속에 인식되어 그것은 기억의 저 편에 저장되고 어느 한 때 추억으로 재생되어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올 것이다. 한편으로 무조건적인 편리만을 추구했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산길을 걷는다. 아직도 고속도로 통행에 대한 잡념을 떨치지 못하고 힘들게 걷는다. 인위적이고 퍽퍽하게 다리를 울리는 아스팔트 길보다는 산길이 훨씬 운치가 있어 좋다. 오르막 내리막 길. 인생 길. 우리가 걸었던 길. 가지 말았어야 하는 길. 실재하지 않은 길. 여러 생각을 하면서 옛길을 넘어 간다. 과거 이곳을 다녔을 보부상의 모습을 상상하며 삶이 시작되고 하루의 삶이 마쳐지는 이곳 길에서 그들의 삶을 조용히 반추해 본다.

  명주군 옥계면의 팻말이 보이고 산길을 넘어 걸린 시간이 3시간 반이나 넘었다. 빠른 터널 길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걷는다. 정동진에 오면 군 시절이 생각난다. 부대에서 사격측정이 있어서 자동화 사격장이 있는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부대 내에 자동화 사격장이 없었던 관계로 처음의 사격율은 저조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기합을 받기도 했다. 또한 사격을 잘 하면 포상휴가를 보내 준다는 말에 헛된 욕망을 꿈꾸었던 그 초입의 이등병 시절의 모습이 어슴푸레 떠오르며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흘러나온다. 조그마한 어촌이었던 정동진의 희미한 기억. 이후로 변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동행한 분이 관절염으로 인해 다리의 통증을 호소한다. 계속 진행을 한다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이 되어 결국은 강릉에서 우리의 일정을 접었다. 안인 바닷가의 횟집을 지나 멀리 보이는 대관령. 팽팽했던 긴장감은 이제 해체되어 버리고 우리들의 꿈은 더 나아가고 싶다. 언젠가 다시금 강릉을 기점으로 하여 출발하기로 하고 갈 수 없음에 대한 빛 바랜 노래를 부른다. 잃어버린 기억의 저 편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