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0507 방태산엘 갔었네
방태산엘 올랐네.
항상 가까이 있었지만 멀게 느껴지던 산을
이곳에 온지 1년하고도 수개월이 지난 오늘에
오르다가 시간이 부족하여 내려왔네.
현리 이 지역을 감싸고 있는
푸근하고 넉넉한 산.
1 시간 여 계속되는 오름짓을 하다보면
어느새 1,000여 미터를 훌쩍 넘어 버리고
검푸른 혹은 짙은 녹색으로
형형의 색들로 단장하는
멀리서 다가오는 봄날의 산.
몇몇 사람들을 만났었지.
대부분이 이 산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50대 후반의 아저씨와 60이 훌쩍 넘어 버린 아주머니들.
오늘도 힘든 삶만큼의 무게를 지고
등이 굽은 눈으로 내려오는
그들을 보았네.
나물은 아직 철이 아니고,
고비나 뜯어서 가지고 온다고
나도 나물하러 가느냐고
웃으며 그들은 물었다.
양말이 얇아서인지 아니면 신발이 잘못돼서 일까
뒤꿈치가 아파 오더니 쉬면서 보니
발이 사람 잘못 만나서 홀랑 까졌네.
가야 할 길은 저렇게나 많은데
훌훌 털며 다시금 일어선다.
폐막사를 지나며
녹슨 철조망, 주변의 불타다 남은 나뭇조각
을씨년스런 바람에 펄럭이는 비닐 잔해
멀리서 봄의 진행을 알리는 새의 울음.
봄은 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아무렇게나 뒹구는 과거의
삶의 잔해들 속에
내가 있었다.
그해 봄날.
오르다 보니 움막이 있었네.
비닐로 얼기설기 엮은
아직은 철이 아니어서인지
옛 흔적 - 냄비, 페트 소주병, 헌 옷가지, 국사발 등이
주변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네.
이곳도 나물을 하는 때가 오면
이곳까지 쌀 등을 들고 와
열흘이고 보름이고 기거하면서
아침, 낮으론 나물 뜯고
해거름 무렵엔 나물 삶고
그후 비닐 깔고 말리곤
걷고 말리고 하는
봄날 일상의 삶이 시작되겠지.
사진 좀 찍어 보겠다는 생각에
카메라에다 그 무거운 삼각대까지
가지고 올라왔는데
황사 현상 탓인가 날이 흐리다.
대신 봄꽃의 무더기를 보았다.
꽃으로 위안을 삼으며
1,000미터 이상 올라가면서는
얼레지가 떼를 지어 살고 있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앵초, 제비꽃, 벌깨덩굴, 용담, 민들레, 할미꽃, 현호색,
노오란 동의나물, 뱀딸기, 산괴불주머니, 피나물 등
꽃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책을 뒤적였다.
오히려 봄꽃은 야트막한 곳에 더 많이 무리 지어 있었다.
오름 기록
15:18 (산행 시작 425 미터) - 16:08 (깔닥고개 정상, 855) - 16:45 (폐막사 주변 1,015) - 17:30 (비닐 움막 주변 1,230) - 17:40 (멀리 보이는 방태산 정상을 보며 시간 관계상 하산 결정) - 18:18 (폐막사 주변 1,045) - 18:39(깔닥고개 860) - 19:12 ( 원점 하산 415)